우리보다 낫다.
아이들이 내게
“이걸 왜 배워야 해? 이걸 배워서 쓸 데가 있어?”
라고 물었을 때 나는 항상 같은 대답을 반복했었다.
“너네가 뭘 할지 모르니까 전반적인 걸 배워두는 거야.
누군가는 커서 큰 다리를 건설하는 설계사가 될 텐데 그럼 하중을 분산하는 계산을 잘해야 할 테고, 누군가는 커서 인공위성 발사를 돕는 우주인이 될 텐데 그럼 궤도 계산을 잘해야 하잖아? 또 누군가는 커서 외교관이 되어 나라를 대표해 도움을 구하는 연설을 하게 될 텐데 그럼 영어를 잘해야 할 테고.
그 누군가가 누가 될지 모르니 전반적인 걸 다 가르쳐 두는 거야. 이건 기본이고 기본을 숙지해야 다른 걸 할 수 있게 돼. “
나는 내 대답이 적절하다 믿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2차 함수나 등비수열등이 새로 나타날 때마다 같은 질문을 해댔다.
“이걸 어디다 써? 이걸 쓸 데가 있는 거야? “
어느 날, 중학생 아이가 말했다.
“공부는 우리에게 일인 거야. 회사원이 회사에서 일을 하듯이 우리도 하는 일이 공부인거지. 지식을 넓히려고 공부한다? 그런 생각은 버려야 해. 그냥 일인거지. 일을 하면서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는 걸 배우고,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걸 배우고, 매일매일 일을 하는 방법을 배우는 거지. “
머리가 두웅하고 울렸다.
아이가 하는 표현이 맞다. 맞는 정도가 아니라 정확하다. 아이의 말처럼 학생에게 공부는 일이다.
해야 하고 해내야 하는 일. 싫어도 해야 하고, 좋아도 해야 하고, 그저 그래도 해야 하는 일.
회사를 다니면서 보너스를 받고, 여행도 가고, 회식도 하고, 승진도 하는 것처럼 아이는 공부를 하며 아빠가 건 상금을 받고, 친구들과 놀이동산도 가고 , 학원에서 성적에 맞춰 나뉜 반을 한 단계 올라가기도 한다.
아이는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일과 여가를 적당히 분배할 줄 안다. 어른보다 훨씬 현명한 대답을 찾아낼 만큼 요즘 아이들은, 특별하다.
얼마 전 어른이 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는 걸 들었다. 어른들이 초등학교보다 중학교가 더 힘들고 중학교보다 고등학교는 더 힘들고, 고등학교는 대학을 가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하고, 대학교에서는 직장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른이 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많이 생겨났고 이를 막기 위해서 어른들이 즐겁게 사는 모습을 많이 보여줘야 한다고.
나는 아이들이 말하는 ‘어른이 되기 싫다’라는 말을 그저 그런 걱정과 투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갈수록 더 많은 책임이 생긴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우리는 그 가치를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시절을, 아이들은 지나면 다시 못 올 값진 시간이란 걸 이미 알고 있으면서, 훨씬 현명하게 자신의 학창 시절에 정성을 기울인다.
함께 시험공부를 하고, 서로 화장품 정보를 교환한다. 열심히 체육대회 피켓을 만들고, 서로의 헤어스타일에 대해 조언한다.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취향을 공유하고, 생각을 주고받는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시간을 아끼는 만큼, 흘러가는 것을 아까워할 줄 아는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적합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한다. 혼자서 양말을 신을 수 있게 되면 스스로 양말을 고를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아야 하고, 스스로 신발 끈을 묶을 수 있을 때는 찍찍이가 아닌 끈 달린 신발을 고를 정당한 기회를 받아야 한다. 삶의 도장 깨기처럼,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늘면 그에 따른 선택의 자유도 주어져야 한다.
중학생이 화장을 하고 염색을 하는 게 말이 되냐고? 말이 된다. 중학생쯤 되면 화장도 잘하고 염색도 잘한다. 나쁘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지도 않는 일이다. 그저 예뻐 보이고 싶은데 그 기준이 자기 또래라서 어른이 보기에 화장은 웃기고, 염색도 과해보일 수 있다. 자기들끼리는 화장이 너무 잘 되었느니, 머리색이 너무 예쁘다느니 하면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올리브영에 가서 염색약을 고르며 고민하고 서있었더니 직원이 먼저 다가와 말했다.
“염색은 하고 싶고 학교에서 걸리긴 싫고? 이거 가지고 가서 하면 잘~ 나와봤자 자연 갈색 정도? 색 거의 안 나와요. “
머리칼이 자연 갈색이 된 아이는 너무 기뻐했고, 너무 만족하며 내게 고맙다고 했다. 선생님들은 아무도 모른다며 더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니까 아이가 “나 염색했어”라고 얘기한 친구들만 아이의 염색을 알게 된 후, 그제야 염색했다는 걸 알아보고 “너~무 이쁘다”를 연발했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이기적이라고 했던가? 아이들에게 마라탕이 유행하는 이유는 마라탕의 맛뿐 아니라, 그 음식이 주체적이고 개별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릇에 각자 원하는 재료를 넣고 각자 계산을 한다. 혹시 배가 고프지 않은 이가 있으면 그저 옆에 앉아있기만 해도 된다. 저녁 6시에 3명이 와서 2명은 마라탕을 먹고 1명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만 한다. 저녁 8시쯤에 앉아서 이야기만 하던 아이가 전과는 다른 친구 3명과 함께 와서 마라탕을 먹는다. 이 때도 한 명은 먹지 않고 앉아 있을 수도 있다. 아이들은 각자 먹고 싶을 때 음식을 먹고 자신이 먹은 만큼 계산을 한다. 이런 식당이 마라탕 말고는 없는 걸로 안다.
붐비는 식당에서 메뉴를 시키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식당에 민폐를 끼치는 일이라고? 물론이다. 우리가 아는 걸 아이들이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 사이에 마라탕이 유행하는 것이다. 충분한 자리가 있고, 어른들은 잘 오지 않는다. 보통 아이들이 가는 마라탕 가게는 만원을 넘지 않는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메뉴를 고르고, 먹기 싫은 음식을 참고 먹던 우리와는 다르다. 체면을 차리기 위해 비싼 음식을 시키던 허세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아이들은 실용적이고 간단명료한 것을 추구한다. 끈적이는 사회관습에 붙잡혀 있는 우리와 달리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표현할 줄 알며 당당하게 말할 줄 안다.
“요즘 아이들은”이라는 어쭙잖은 투정은 그만 부리고 진짜 어른답게 아이들을 인정할 때다.
그들은 우리보다 낫다.
p.s
그들의 솔직함으로 인해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었을 테지만 그들 덕분에 좋았던 점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꼰대가 되지 않게 더 노력해야 한다.
나는 아이들의 특별함을 인정하고 존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