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를 키워 본 사람들은 아이가 감탄하는 모습을 본 적이 많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아이는 처음 겪으면서 매번 감탄사를 쏟아내고, 박수를 치고, 무서워 주저앉기도 한다.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올랐을 뿐인데도.
그런 아이를 보며 우리는 잠깐이나마 함께 감탄해 본다. “우와" 하며 아이의 감탄사를 따라 해 보기도 하고 더 큰 반응을 이끌어보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신기해?" 하고 물으며 감탄하는 아이 자체에 감탄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성장하면서 많은 능력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습득하기도 한다. 아는 게 많아지고 신기했던 일들이 당연한 일들로 바뀌면서 감탄하는 일이 줄어든다. 감탄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감탄하는 것이 무슨 능력이냐고? 감탄하는 것은 모든 지식 습득에 있어서 하이라이트로 밑줄을 치는 효과를 낸다. 명확하게 기억에 남길 확률을 높여 주는 것이다.
중2 아이가 내게 말한다.
"엄마, 오늘 사회쌤이 진짜 신기한 얘기 해주셨는데 엄마, 희소성이 뭔지 알아?"
"응, 알아."
"아니, 엄마는 어떻게 알아? 근데 에어컨 1대랑 선풍기 10대랑 뭐가 더 희소성이 있는 거게?"
"에어컨?"
"아니, 그건 지역에 따라서 다른 거라서 상품만 보고는 알 수가 없대. 신기하지 엄마?"
나는 학교 다닐 때 저런 사실에 감탄해 본 적이 없다. 그저 똑똑한 어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이론을 끊임없이 외우며 '이런 건 왜 만든 거야'하는 불만을 가졌던 것 같다. 과학은 신기하긴 한데 뭐 이렇게 까지 실험을 하는지, 수학은 푸는 재미가 있긴 하지만 뭘 이렇게까지 증명해 내야 하는지, 영어는 어려운 데다 평생 쓸 일 없을 것 같은 이 단어는 왜 외워야 하는지, 진득한 테이프를 온몸에 감고 불만의 구덩이에 몸을 굴려서 온몸에 덕지덕지 불만을 붙이고 다니던 때였다.
그때 나는 ‘알게 되는 것’에 대한 기쁨을 몰랐다.
아이는 학교에서 배운 작은 사실에도 크게 감탄한다. 퍽이나 신기해하며 “이건 이렇대!”하며 말해준다.
아이는 ’ 알게 되는 것에 대한 기쁨’을 감탄으로 표현한다.
얼마 전, 지인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서 아이들 학교, 학원 이야기가 나왔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아파트단지에 신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생긴 동네라 그런지 학군이 좋지 않다며 이사 가는 이들도 많고 아이들 수준이 낮다며 걱정하는 이도 많은 분위기라 내게 중학교가 어떠냐며 물어왔다.
나는 딸의 학교 생활을 응원하고 있고 오롯이 공부만을 하지 않는 것에 별 불만이 없다. 아이는 중2에 월, 수, 금은 수학, 화, 목은 영어 학원이라는 단출한 스케줄을 가지고 있으면서 여유 시간에 야구도 보고, 기타도 치고, 친구들과 마라탕도 먹으러 다닌다.
하지만 숙제를 밀린 적 없고, 쪽지 시험 하나도 준비하지 않은 적이 없다. 학교 시험 때는 정리한 것을 타이핑해서 반 친구들 인원만큼 프린트해서 나눠주기도 한다.
나는 은근히 아이의 중학교를 무시하는 말투에 기분이상했다. 그래서 아이의 영어학원이 시에 몇 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는데 정작 1등을 한 아이는 우리 동의 아이인 데다 상위권에 꽤 많은 아이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내 말에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동에서 잘하는 아이들은 다른 학군 도시로 빠지니 우리 동네 아이들이 그 동네 아이들보다 잘하는 게 아니라고.
그분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끝이 없지 않을까? 세계의 중심이 되지 않는 이상 더 잘하는 사람들은 계속 나타날 텐데. 학교 시험에서 5등 안에 들었다고 아이가 기뻐하면, 옆 동네 학교 가면 넌 20등 안으로 밀려날 거라고 말할 건가?
아이가 이뤄내는 작은 성취 하나하나에 감탄하며 함께 기뻐할 기회가 이렇게나 많은데 고작 다른 지역과의 비교에 이 기회를 날려야 할까?
어른들이 감탄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성적을 상대평가로 매기지 말고, 아이의 말과 행동, 생각에 감탄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찾아야 한다. 절대평가는 부모가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아이의 시험지를 잘 알지도 못하는 다른 아이 때문에 구겨지게 하지 말자. 다시는 시험지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숫자로 된 점수가 아닌 아이의 애쓴 흔적이 담긴 시험지를 말이다.
결과가 아님 과정을 봐야 하는 이상적인 평가는 부모여서 가능하다. 부모로서 아이에게 감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Picture by June O i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