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딱 그만큼
폭설이 내린 날,
남편이 운전하며 내게 이른다.
속도가 0으로 떨어지면 안 돼.
천천히 조금씩 나가야 해.
속도가 3,40을 넘어도 안돼.
그럼 멈출 수가 없어
차가 미끄러져서 방향이 흔들리면
브레이크를 잡지 않고 핸들로 방향을 잡아야 해.
남편은 내게 운전을 가르치며 화낸 적이 없다.
신호에 제 때 가지 않는 차보다
신경질적으로 크락션을 눌러대는 차를
더 이해하지 못했다.
대학생 때,
부모님의 일을 도와 트럭을 운전하다가
빙판이 된 다리 위를 뱅그르르 돌았던 적이 있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남편도 무사했다.
그 이후로 25년이 넘도록
운전하면서 어떤 일도 만들지 않았다.
승용차가 와서 트럭을 박으면
몇 번이고 괜찮다며 그냥 보내주었고,
길을 걷던 분이 코너를 도는 트럭에
혼자 놀라 넘어졌을 때도
보험처리를 해주었다.
베푼 만큼이나 받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나쁜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인수받은 지 9개월째에 들어선 트럭은
부품이 하나씩 하나씩 삭아서 쇠를 드러낸다.
마치 인간의 연골이 닳아 뼈끼리 부딪치며 끼긱거리거나
두둑 거리는 소리는 내는 것 같다.
삭은 것은 대개 9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정직하게, 일하는 만큼 버는 일이다.
여유가 있으면 돈으로 받지 못하고
밥 먹을 틈 없이 일하면 돈으로 받는다.
목돈이 없어 중고차를 샀으면 정비비를 월세처럼 내야 하고
목돈이 있어 새 차를 샀으면 다음 차를 위해 월세처럼 저금해야 한다.
두 눈 똑바로 뜨고,
직각으로 세워진 운전석 위에 허리를 곧추세우고,
오늘도 캄캄한 새벽을 달린다.
운전이 쉽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해?
Picture by Erik Mclean i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