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에 대해 알아가는 중.
대형 화물차에 앙증맞은 눈이 달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생긴 것부터가 귀여운 경차도 아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타요에 나오는 차는 더더욱 아니고,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는 네모반듯하게 생긴 화물차에 박힌 두 눈은.. 조금 우스꽝스럽다. 이 눈을 왕눈이 스티커라 부른다.
처음에는 그저 운전자의 취향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대형 화물차 사고를 막기 위해 도로 교통 공사가 내놓은 방안이었다. 대형 화물차가 사고가 나면 그 덩치 때문에 무척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나 또한 운전을 배울 때부터 큰 버스나 트럭 뒤는 따라가면 안 된다는 말을 종종 들었던 기억이 난다.
대형 화물차에 큰 눈을 붙이면 다른 운전자들이 누군가 지켜본다는 생각에 훨씬 더 주의를 기울여 운전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화물차의 위치나 크기를 더 쉽게 인지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귀여운 걸 좋아하는 화물차주의 취향이 아닌 주변 차들을 위한 배려였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2020년에 도로 공사에서 휴게소를 돌며 무료로 부착 캠페인을 했다는데 남편이 산 중고차에는 붙어있지 않았다. 그 이후로는 캠페인을 하지 않는지 도로공사 홈페이지에는 다른 내용 내용 없었다.
사제 스티커는 사이즈도 10센티에서 30센티로 다양하던데 반사판 역할도 한다고 하니 알게 된 김에 귀여운 걸로다 붙여볼까 한다.
승용차들은, 특히나 나처럼 겁이 많은 쫄보 운전자는 좁은 2차선 도로에서 옆 차선에 대형화물차가 있는 것도 무서워한다. 도로 1개의 차선을 가득 메운 덩치는 올려다봐도 운전자의 얼굴이 아닌 운전석의 티브이나 콜 잡는 패드만 보일 뿐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블랙박스 영상을 너무 많이 본 탓인지 금세 저 화물차가 내쪽으로 쓰러질 것 같고, 화물차 짐칸의 문이 열려 화물이 도로에 와장창 소리를 내며 나뒹구는 상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남편이 화물일을 시작하고 알게 된 것은 화물차들도 승용차를 무서워한다는 것이었다. 버스 전용 차선을 달리는 버스의 공포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 차의 행렬 중 하나가 툭 튀어나오는 것이라면 대형 화물차의 공포는 차의 무리한 끼어들기이다. 정상적인 차선 바꾸기를 한참 벗어나 칼치기라고 표현하는 이 일은 화물차주에게는 끔찍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화물차는 법적으로 속도제한 장치를 달게 되어 있다. 남편의 차는 엑셀을 아무리 밟아도 시속 90km를 넘어서지 못한다. 하지만 과속하지 않아도 화물차 짐칸에는 보통 어마어마한 무게의 짐이 실려있기 때문에 갑자기 끼어든 차로 인해 핸들을 꺾게 된다면 화물차의 짐칸은 옆으로 누워버릴 것이다. 그러면 칼치기를 한 차량뿐 아니라 옆을 달리던 차량도 사고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뿐 아니라 화물차주의 전부인 화물차는 심각하게 망가질 테고 짐칸에 들어있는 거래처의 화물값도 변상해야 한다. 들었던 보험으로 어찌어찌 변상을 한다 해도 다시 화물차를 운행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수리를 해도, 새 화물차를 뽑아도 그동안의 손실을 메꾸기는 힘들다.
화물차 사고는 화물차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인 것이다.
얼마 전 남편을 회물차 업계로 인도한 친구가 칼치기를 당했다. 친구는 그 일을 겪고 하루종일 손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대서 힘들었다고 한다.
대형 화물차 앞으로 무리하게 끼어들기를 하면 가벼운 접촉사고가 아닌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집 근처에 지하차도가 있는데 사고가 많이 나는지 커브 벽면에 완충 매트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급커브 주의라고 쓰여있고 실제로 90도 가까이 꺾이는 커브이기에 조심해서 다니지만, 자주 오가는 길이다 보니 옆 차선에 차가 없으면 종종 제한 속도 50을 넘어간다.
60이 훌쩍 넘은 속도로 터널에 진입하니 남편이 속도를 왜 안 줄이냐며 의아하게 나를 바라봤다. 나는 이 정도는 괜찮다고 답하며 속으로는 대리운전하는 아내에게 웬 잔소리냐고 남편의 시선을 튕겨냈다.
남편은 화물차들이 꼭 지키는 제한 속도가 있다며 터널에 붙은 표지판을 가리켰다. 커브에 붙은 속도를 지키지 않으면 트럭은 백퍼 옆으로 넘어간다나. 커브에서 급하게 속도를 줄이던 트럭들은 그런 이유에서였나 보다. 그런데 남편은 자꾸 승용차 탈 때도 트럭 탈 때처럼 생각하게 된다며 웃었다. 그러니까 속도를 안 줄이냐고 물었던 건 자기도 모르게 트럭 속도를 생각했던 것이었다. 요즘 들어 남편은 주말에 외출할 때마다 한참 운전하다가 별안간 외치곤 했었다.
“아~ 나 또 끝차선으로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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