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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Aug 27. 2024

7.  화물 기사 남편의 재능

차곡차곡 개미


주말, 공휴일, 연휴, 휴가.

이런 단어들은 우리 가족에게 별 의미가 없는 단어다.

남편이 하던 예전 일은 명절 당일 하루 빼고는 쉬는 날이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명절 당일 하루는 다른 사람이 대신 새벽에 일을 했기 때문에 쉴 수 있는 날이었다. 엄청난 생색을 듣고 제사라는 다른 일을 해야 했지만 말이다.


요즘 그런 일이 어딨냐고 묻겠지만 월차도, 연차도 없고, 특근 수당, 연장 수당도 없고 거래처 전화 한 통이면 퇴근했더라도 달려가야 하는 일을, 남편은 나와 결혼생활을 하는 내내 했었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말이다.

그래서 작년까지만 해도 내 눈으로 보는 달력은 파란색, 빨간색을 찾아볼 수 없는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진 달력이었다.

그리고 남편이 이직을 했다.


남편이 이직한 지 5개월이 채 안되어 휴가시즌이 되었다.

휴가가 3주라는 말을 선임자에게 미리 들었지만 정확히 며칠부터 휴가가 시작되냐고 묻지 못했다. 말주변도 없거니와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그런 말을 물어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이 온통 휴가 가는 주인 7월 마지막 주부터이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었는데 쉬는 날은 더 일찍 찾아왔다. 처음 맞는 휴가에 이걸 기뻐해야 할지 아닐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남편의 거래처의 상급 거래처가 파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지난 글에서도 말했듯이 화물차는 월급을 건수로 계산하여 받는다. 달에 30건의 운행을 했다면 정해진 운임료에 30을 곱해서 한 달 치 월급을 받는다. 즉 휴가에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돈을 받지 못한다. 거래처가 파업을 해서 일을 못하면 돈을 벌 기회조차 사라지는 것이다.


휴가 전에 파업이 시작되었으니 휴가비로 쓰려던 돈은 은행 잔고를 줄이기 시작했다. 휴가 전까지 일을 해서 채워둔 돈으로 썼어야 했는데 아쉬웠다. 하지만 금세 휴가가 시작되었고 첫 휴가라는 말에 들떠 우리는 파업을 잠시 잊었다. 둘째 아이를 낳은 후로 한 번도 가지 못했던 강원도 땅을 밟고 처음 강원도에 온 아이에게 장난스레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둘째 아이는 올해로 11살이 되었다.


우리가 계획한 2박 3일의 휴가는 말 그대로 쏜살같이 지나갔고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방학 같은 휴가를 받은 남편까지, 집에서 북적북적대며 살았다. 눈을 뜰 때마다 남편이 집에 있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때로는 웃기기도 했다. 남편은 3일에 한 번씩 화물차 주차장에 가서 배터리가 나가지 않게 시동을 걸고 돌아왔다. 돌아와도 자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면 심심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가뜩이나 일찍 일어나는 남편인데 아이들과 나는 방학이라 늘어지게 늦잠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3주간의 긴 휴가가 끝나고 아이들은 개학을 했다.

하지만 남편의 파업은 끝나지 않았다.


원래라면 일주일에 10건 이상은 운행을 했어야 했는데 파업의 여파로 한 달을 통틀어 20건이 될까 말까였다. 주문을 받는 메시지창에 파업이 연장되었다는 문서가 며칠에 한 번씩 떠올랐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로 우리도 매달 나가는 고정 비용이 있다. 집 관리비나 아이들 학원비를 제외한다고 쳐도 대출이자를 밀릴 수는 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회사에서 먼저 가불을 제안했고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화물일은 불안함의 연속이다.

콜발이는 콜을 잡지 못하거나 동선이 엉망이 될까 봐 매일이 불안하다.

고정일을 하는 화물은 고정일이 어그러지면 답이 없다. 고정일에 맞게 화물차에 설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재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은 쉽게 돈을 벌기도 하는 세상이다. 그림을 잘 그리거나, 요리를 잘하거나, 영상 편집을 잘하거나 노래나 말을 잘하거나.


하지만 눈에 띄는 재능 말고 오랜 시간 일상을 별 탈 없이 끌어오는 것도 나는 재능이라 생각한다.

남편은 운전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흔한 접촉사고 한 번 낸 적이 없다. 매번 같은 코스를 운전하고 같은 일을 반복하지만 지겹다고 느끼기보다 안정감을 느낀다.


주식장에서 주가에 변동을 미치지 않을 만큼 작고 나약하지만 꾸준히 적은 양의 주식을 차곡차곡 옮기는 소액 투자자를 ‘개미’라고 부른다. 주식장에서의 ‘개미’는 너나 할 것 없이 ‘슈퍼 개미’를 꿈꾼다. 하지만 내 남편은 ‘슈퍼 개미’를 믿지 않는다.

남편은 쉽게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타고난 성실함으로 정직하게 돈을 번다.


남편의 재능은 끈기와 인내가 가득 담긴 성실함인 것이다.


나는, 아직도 슈퍼 개미를 꿈꾼다.



Picture by Kelsey Dody i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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