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는 승용차가 아니다.
10년.
10년이 된 화물차의 차주는 고민을 한다.
새 차를 사서 10년 더 화물 일을 할지, 아니면 중고차로 팔고 다른 일을 할지.
그 이유는 대형 화물차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이고, 10년이 넘으면 고장이 잦아져서다.
화물차의 정비는 생각보다 까다롭다. 게다가 이른 아침에 운행을 시작하여 저녁 늦게 끝나는 화물 운행은 정비소에 들릴 시간을 내기가 무척 어렵고, 주말에는 쉬는 정비소도 많다. 차가 워낙 크다 보니 정비소 앞 공터에 차를 세워두고 정비를 하는데, 비가 오는 날은 비를 막아줄 지붕이 없어 정비를 할 수가 없다.
정비 비용은 그 덩치만큼 비싸다.
우리가 산 차는 10년 된 화물차를 팔고 다른 일로 이직을 원하는 분의 차였다. 다른 이유가 있을까 물었지만 그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웠던 것과 해외에서 다른 일을 할 기회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남편은 의아해했다. 남편은 반복되는 일상에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분은 우리가 서둘러 차를 넘겨받길 바라셨고 우리는 빠듯하지만 일정을 맞췄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해야 할 일로 가족여행이 최우선시되었다. 신혼여행 이후 비행기를 타 본 적이 없던 남편은 무려 17년 만에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을 갔다. 아이들은 아빠가 있는 여행을 무척 좋아했고, 남편은 여행 내내 감격스러워했다. 하루에 2만보씩 걷는 가족 여행을 하고 돌아온 남편은 이틀 후부터 화물일을 시작했다.
달을 이틀 남기고 일이 시작되었다. 이틀은 원래 차주분이 운전하셨다. 인수인계를 겸했지만 하는 일이 장거리 운전이다 보니 딱히 해줄 말이 많았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거래처에 도착해서 물건을 내리고 다시 물건을 싣고 물건을 내리는 일이었다. 물건을 내리는 건수에 정해진 단가를 곱해 받는 월급이었다. 화물차 콜발이와 달리 정해진 루트로 정해진 물건만을 실어 나르는 일이라 꾸준히 하면 새 화물차를 꿈꿔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었다. 전에 받아 놓은 화물차 카탈로그는 책꽂이 한편에 꽂혀있었다. 우리의 어설픈 희망은 카달로그의 어느 한 페이지에 고이 접혀있었다.
희한하게도 남편이 화물차 운전을 시작하자 차가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차가 본래 주인과 운전 스타일이 달라진 걸 눈치채서인지, 아니면 그저 올게 온 것인지도 모른다. 남편은 화물 일을 시작하고 일주일을 거의 매일 정비소에 들렸다.
차에 진동이 계속 느껴진다는 남편의 말에 정비소 직원이 이것저것 살펴주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스트레스받아하는 남편을 위해 콜발이를 하는 친구가 하루 일을 접고 조수석에 동승하기로 했다. 그리고 동승이 끝난 후 새 화물차로 일을 시작한 남편의 친구와, 남편과 같은 차종을 운전하는 선배 화물차주의 의견은 이랬다.
-남편이 너무 민감하다.
-화물차는 승용차가 아니다.
남편은 차의 정비 날짜를 꼬박꼬박 지키는 사람이다. 엔진오일은 말할 것도 없고 정기 정비날짜도 정확히 지킨다. 승용차에 정비 메시지가 뜨면 지체 없이 달려가 정비를 끝내고 메시지를 끄고 돌아온다. 메시지가 떠 있는 것 자체가 거슬린다나. 나는 주유등도 무시하기 일쑤인 사람이라 잘 이해가 가지 않지만,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하기에 매번 내고 오는 정비 비용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차의 작은 소음이나 떨림도 남편에게는 당연히 정비대상이었다. 하지만 화물차는 승용차가 아니었다.
남편의 친구는 진동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고, 같은 차를 운전하는 분은 그 정도는 진동이 느껴진다 해도 괜찮다고 하셨다.
한 번은 남편이 서해대교를 지날 때마다 차가 휘청인다고 했다. 바람이 정말 강하게 부는 모양이라고 했더니 남편의 친구가 대교를 건널 때 2차선으로 가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차가 하나도 휘청이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차선을 한 칸 옮겼는데도 바람이 확 줄어드냐며 놀라서 물었다. 남편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3차선에만 포트홀이 엄청 많아서 차가 휘청인 거였어.”
그 후 남편의 민감한 반응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정비소 출입이 줄어서 일하는 시간도 12시간으로 줄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대형차 세차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날, 들려보고 싶어진 남편은 세차장에 차를 댔다. 차가 높아 윗부분은 손도 닿지 않으니 위에서 뿌려주는 물줄기가 그리 시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차 문에서 물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황한 남편은 손에 잡히는 대로 수건을 잡아 흘러들어오는 물을 막았다. 다행히 운전대 뒤편에 코스트코에서 산 노란색 수건이 잔뜩 쌓여있었다. 세차가 끝날 때까지 남편은 수건을 잡고 있어야 했다. 남편은 헛웃음이 났단다. 이런 일은 개그프로에서 봤던 일 아닌가?
그동안 남편이 운행하는 날에 비가 오지 않았던 것이 행운이었던 것일까?
세차장에서 물벼락을 맞은 남편은 바로 정비소로 갔다. 정비소 직원은 남편의 이야기를 듣더니 웃음을 흘리며 문짝이 뒤틀려서 그럴 수 있다며 차 문을 채로 갈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고 있던 차를 마무리하고 금세 봐주겠다고 한 직원은 자리를 떴고 남편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문짝을 갈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이미 타이어로 88만 원이 들었고, 엔진오일을 가는데 39만 원, 계기판, 용접 등 자잘하게 정비하는데 33만 원이 들었다.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터지는 정비복에 돈도 돈이지만 매번 남편은 16시간을 일했던 셈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직원은 차문의 고무패킹을 바꾸고 조금 조절하는 것으로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고 9만 원의 비용으로 끝이 났다.
정비소를 그만 가고 민감한 남편에서 둔감한 남편으로 거듭나려고 노력했던 남편은 세차장에서 물벼락을 맞고 정비소로 떠밀리듯 돌아갔다. 그리고 그 후로도 용접이 떨어지거나 삭은 전선 등으로 자주 정비소에 드나들었다.
얼마 전, 남편은 처음으로 회사 분을 차에 태울 일이 생겼다. 원래 말이 별로 없던 남편은 회사 분께 말을 걸었다고 한다.
“추우시죠?”
회사 분도 남편차에 동승한 적이 처음이라 조심스레 말했다.
“네.. 좀.. 기사님이 많이 더우신가 보다 생각하고 있었어요.”
남편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아니고요, 아침부터 에어컨이 안 꺼지네요.”
“네?”
“네. 낮추고 싶은데 안 낮춰지네요. 하하하.”
대형 화물차는 승용차가 아니다.
하지만 10년 된 화물차는 자주 정비소를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초보 화물 운전자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