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 차주님, 감사합니다.
남편이 출근한 첫날은 아이들 방학이 한창인 날이었다. 집에서 하는 독서 수업을 오전으로 옮긴 터라 아이들과 책 이야기를 한창 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핸드폰 번호였다. 왠지 모르게 불안했지만 전화를 거절하고 수업을 계속했다. 그리고 곧 문자가 왔다.
‘주차를 못합니다 ‘
문자와 함께 전송된 사진에는 남편이 화물차 출퇴근용으로 운전하는 자동차가 찍혀있었다. 어리둥절했다. 주차를 못한다니 무슨 말이지? 나는 남편에게 전화해 문자를 설명하고 사진과 전화번호를 보냈다.
잠시 후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아이들과의 수업 시간에 방해 요소가 생기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한 번 흐트러진 아이들의 관심을 다시 내 쪽으로 끌어오려면 그만큼의 시간과 품이 든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가 아닌 내가 끌어가는 틀 안에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 날은 망한 날이었다.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이들은 기쁘게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나는 속상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해결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남편은 이미 충북 어딘가의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남편은 문자 주신 분과 통화하고 대형 주차장 주인과 통화를 한 후에 자신의 주차장 자리가 거기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대형차 주차장은 한 자리를 월주차비를 내며 사용하기 때문에 자신의 자리가 정해져 있다. 하지만 번호도 없고 바닥에 밧줄 표시가 다여서 컨테이너에 가까운 자리라는 것만 들은 남편은 며칠 동안 비어있던 자리가 자신의 자리인 줄 알고 주차를 해왔던 것이었다. 자리는 딱 한 칸이기 때문에 출퇴근 차를 앞에 대고, 내려서 화물차를 뺀 다음, 다시 출퇴근 차를 주차칸에 대 놓고 나가야 한다.
그 자리는 일주일에 한 번 들어오시는 화물 차주의 자리였다. 일주일에 한 번 오시니 출퇴근 차량을 대놓고 가시는 게 아니라 아내분이 데리러 오신다고 했다. 화물차를 대야 하는데 남편의 출퇴근차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내분은 이미 와서 기다리고 계시니 화가 나서 아무 곳에나 대고 가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분은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와달라는 문자를 남기셨고 내게 재촉 전화도 걸지 않으셨다.
나는 낯선 길을 바짝 긴장한 채로 운전했다. 길 옆에 하천과 드리워진 나뭇가지를 헤치며 눈을 부릅떴다. 남편이 출퇴근차가 필요해지면서 15년을 탄 승용차를 남편이 끌고 집차를 막 바꾼 참이었다. 운전도 서툰데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손에 땀이 배였다. 이런 긴장감을 선사한 남편에게 소리라도 질러야겠는데 남편은 남편대로 커다란 운전대를 잡고 손에 배인 땀을 닦고 있었다.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내 시야에서 너무 높은 차들이라 올려다봐도 어디에 계신지 보이질 않았다. 저 쪽 멀리에 있던 승용차가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렸다. 화물차주의 아내분이시겠지. 나는 보이지도 않는 운전자를 향해 몇 번이고 허리를 숙였다. 죄송하다고 계속 말했지만 들릴 리가 없는 거리였다. 전화를 받으시면서 높디높은 트럭에서 아저씨가 나오셨다. 발판이 세 칸이나 되었다. 절로 우러러보게 되는 위
치였다.
“네, 이 차 빼주시면 돼요. 저쪽이 남편분 자리예요. “
아저씨는 맞은편의 빈자리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화도 내지 않으셨다.
뭐라고 사 왔으면 좋았을 텐데 서둘러오느라 생각도 못했다. 내게 전화하고, 남편과 통화하고, 내가 주차장까지 오기까지 1시간이나 지나있었다. 나는 허리를 굽히면서 들어갔다가 허리를 굽히면서 나왔다.
운행 첫날의 기운을 북돋아 주시고 싶으셨던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저 감사했다. 주차장 주인인 아저씨는 큰길로 오면 길도 좋고 간판도 보이는데 샛길로 왔냐며 웃으셨다. 망할 네비.
남편은 무사히 주차장으로 돌아왔고 자신의 자리에 주차했다. 첫날 운행이 끝났다. 혹시나 신경 쓰일까 봐 오전에 한 전화 말고는 따로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별일 없었냐고 물으니 별일은 없었단다. 그러고는
“차가 터널에 꼈어.”
라며 혼자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다. (개황당-_-)
크게 돌아야 하는데 화물차의 크기가 아직 감이 안 잡혔는지 작게 돌다가 터널 입구를 대각선으로 막았다고 한다. 얼마 전 뉴스에 교각 아래 걸려있던 트럭이 생각났다. 뉴스를 볼 때는 아이고 하고 걱정 반 웃음 반으로 넘겼는데 내 남편 이야기에는 걱정 반에 심각한 걱정 반이 더해졌다.
“그래서?”
“앞 뒤로 조금씩 왔다 갔다 하면서 뺐어. 와~ 땀이 땀이.. 진짜 식겁했어. ”
“차는 괜찮아?”
“타이어가 살짝 긁힌 것 같아. 정비소 가보려고.”
“다행이네.”
진심이었다. 다른 차들과 사고도 나지 않았고 차가 심각한 대미지를 입지도 않았다. 남편도 하루종일 운전한 것 치고는 상태가 괜찮아 보였다. 긁힌 타이어 비용이 88만 원이 들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화물차는 승용차와 달리 부품 크기도 비용도 두 배가 넘었다.
남편은 저녁을 서둘러 먹고 자야 한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9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한 아이는 이제야 티브이를 끄고 숙제를 하겠다며 책을 펼치고, 한 아이는 편의점에 간식 사러 간다며 나가는 시간이었다.
남편의 하루는 빨리 저물고 빨리 시작된다.
5시에 일어날 남편은 4시가 넘은 시간부터 자꾸만 깼다고 했다. 늦을까 봐 불안해서 잠을 푹 잘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미 한참 전부터 자고 있는 남편의 곁에 누우며 아이가 인사를 건넸다.
“아빠, 잘 자. 사랑해.”
남편이 잠결에 대답한다.
“응, 잘 자. 사랑해.”
남편은 3개월의 준비 끝에 화물차 운전사가 되었다.
.Picture by CLARK GU in 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