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화물일을 시작했다.
중고차를 사본적이 없었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좋은 중고보다는 덜 좋은 새 물건을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미 새 화물차는 우리의 예산을 한참 벗어났고 조급한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중등과 초등 아이를 키우는 외벌이 집이다. 소소하게 아르바이트비 정도를 벌어서 내 용돈을 쓰고 있지만 다달이 나가는 학원비와 생활비, 대출금은 인간이 매일 배출하는 방귀처럼 한 달도 피해 갈 수 없는 숙명이다. 숙명을 거스르면 뭘 내놓아야 할지 상상하기도 싫다.
남편의 친구가 ‘사부’라고 부르는 그는 이미 화물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화물차의 운행거리를 나타내는 계기판은 이미 숫자를 표기할 수 없을 만큼 찼고 발도 무척이나 넓어 누가 화물차를 샀고, 팔려고 하는지 정도의 정보가 그에게로 모이는 모양이었다.
그 ‘사부’는 콜발이를 하며 밥먹듯이 밤을 새는 자신의 제자가 안타까웠는지 다른 화물차주가 내놓은 고정 일자리를 받으라고 권했다. 하지만 제안 자체가 중고 화물차를 함께 산다는 조건이라 이미 최장축의 윙바디 화물차를 가진 친구는 그 제안을 남편에게 넘겼다. 선택은 오로지 남편 몫이었다.
화물차의 주행거리는 일반 승용차와 확연히 다르다. 우리는 첫 아이가 태어난 시기에 산 15년 된 승용차를 가지고 있는데 휴가를 가 본 적도 없고 여행을 간 적도 손에 꼽는다. 그래서 우리 차의 주행거리는 15년 동안 8만 킬로도 되지 않는다. 남편이 고민하고 있는 중고 화물차는 10년을 운행한 차이고 키로수는 무려 100만이 넘는다고 했다.
100만. 승용차로는 상상할 수 없는 거리다. 내가 회사 생활을 할 때 직원들 셔틀 용도로 쓰이던 차가 트라젯이었는데 20만이 되면 팔고 새 차를 샀었다.
그런데 100만 이라니.
화물차가 10년이 넘었거나 100만이 넘어가면 그 이상 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계속 고쳐가며 운행해야 할 운명에 들어선 차였다.
속는 건 아닐까? 사실 중고차보다 사람에게 속임을 당할까 무서웠다. 친구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어중간한 관계는 사기는 가까운 사람이 치는 것이라는 범주에 들락 말락 한 거리였다. 누굴 탓하기도 어려운 관계, 화풀이도 반은 떨어지고 남은 기운이 닿을까 말까 한 관계. 고민에 고민이 이어졌다. 질문이 건너 건너 건너갔다가 답변이 건너 건너 건너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딱히 선택지가 없었다. 모험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눈앞에 놓인 외나무다리를 걸어가는 것이었다. 떨어져서 다른 길로 통하기를 바라는 곳보다 보이는 길이 더 나았다.
우리는 통장에 돈을 한 곳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일시불로 돈을 지급해야 했고 2~3일의 인수인계 후에는 실전이었다. 고정일이지만 화물일은 건수로 수당이 계산되기 때문에 인수인계를 오래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개인사업자지만 화물 중계 업체에 소속되어야 하고, 그에 따른 중계 비용과 영업용 번호판비, 화물 차고지 비용 등을 생각해야 했다.
결정을 하자 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남편은 인수인계와 서류 작업을 끝내고 마침내 차를 자신의 차고지에 주차했다.
드디어 남편의 화물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