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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Jul 22. 2024

2. 화물일을 하기 위한 준비

처음 알게 된 화물차의 세계.


남편의 친구가 있다.

대쪽 같은 성격이라 융통성은 없고 말도 거칠었다. 하지만 가족을 무척 아꼈고,

남편의 공장에서 배달일을 하기도 했었는데 무척이나 성실하다는 평을 받았었다. 결혼을 하고 술을 끊은 이후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도 나오지 않았는데 남편은 간간히 연락을 이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남편의 친구는 철제상가에서 일했었는데 화물을 싣고 다니던 분과 친해져서 화물 일에 대해 묻기 시작했고 새 화물차를 사서 일에 뛰어들었다.


1년에 명절 당일, 딱 이틀 빼고는 쉬는 날이 없었던 남편은 친구의 화물일을 종종 부러워했다. 남편의 친구는 일이 많으면 이삼 일씩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밤을 새우며 대기를 타기도 했고, 일이 없는 날이면 아예 출근을 하지 않았는데 주말에는 쉬는 회사들이 많으니 자동으로 주말이 쉬는 날이 되었다.


남편은 신혼여행 이후로 비행기를 타본 적도 없고 지방이 친정인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갈 때 남편은 홀로 집을 지켜야 했다. 그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살았던 건 공장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 때문이었고 타고난 성실함 때문이었다. 소규모 공장이라 사람을 쓰면 매출이 부진한 달에는 한 명의 인건비에도 휘청이는지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 성실한 남편에게도 누군가의 인정은 필요했다. 알아서 해보라는 말이 떨어지면 열심히 방법을 궁리하던 남편은 매번 그건 안된다는 찰나에 뒤집힌 말에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기대가 누군가가 치켜든 손 앞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걸 느낀 남편은 일을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남편은 친구에게 화물일에 대해 물었다. 남편은 문제를 만들어내는 출제자처럼 묻고 또 물었고, 친구는 자신이 아는 걸 바닥까지 긁어 알려줄 모양으로 대답하고 또 대답했다. 둘의 통화는 시도 때도 없이 이어졌고

친구의 화물차에 동승해서 일을 따라가기도 했다. 남편은 난생처음 직장과 직업을 바꾸는 데 무척 불안해했고 그만큼 조급해 보였다.


몇 군데에서 화물차 견적을 받아왔다. 기본적으로 화물칸이 달린 트럭을 카고라고 한다. 화물차는 물건을 조금이라도 더 싣기 위해 카고의 길이를 늘이는 옵션이 있다. 그걸 장축이라고 한다. 그리고 옵션으로 윙바디를 달아 새의 날개처럼 짐칸 뚜껑이 위로 올라간다. 값 비싼 스포츠카처럼 말이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옵션 가격에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말 그대로 화물차 가격은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도로에 다니는 외제차들을 보면 저런 비싼 차들을 타는 사람들이 신기하게 느껴졌는데 이제 도로 위의 화물차들이 훨씬 대단하게 느껴졌다. 곁다리로 우등 좌석버스 가격이 2억에 달한다는 걸 듣고 나서는 좌석버스를 발견할 때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광택이 그리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집 앞 지하철 공사장 근처에 흙투성이로 줄지어 있는 덤프트럭이 그리 위풍당당해 보일 수도 없었다.

별생각 없이 지나치던 풍경은  중장비차와 각종 화물차들이 기다린 가격표를 달고 지나다니는 풍경으로 머릿속에서 재구성되어 보였다.


자본금 없이 누구 밑에서 월급쟁이 생활만 해 본 우리는 세상이 굴리는 엄청난 숫자의 줄 앞에 입만 떡 벌릴 뿐이었다.


몇 군데 견적을 받아보던 우리는 새 화물차를 뽑는 것을 포기했다.

그리고 얼마 전 제쳐두었던 그 일자리와 중고 화물차 제안을 다시 꺼내어 살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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