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진진 Aug 19. 2024

6. 화물 기사는 밥이 문제야.

밥은 먹고 다니니?


남편은 일을 시작하고 며칠을 한 시간을 일찍 나갔다.

예전 일 덕분에 5시면 자동으로 눈이 떠지는데, 혹시 늦게 일어날까 하는 불안감에 3시에 눈이 떠지고, 4시에도 눈이 떠진다고 했다.


집에서 느긋하게 준비하고 나가면 남편은 친구와 회물차 주차장에서 만났다. 친구 또한 일을 시작하려면 먼 시간이라 둘은 수다를 떨며 다른 화물차들이 하나하나 떠나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저 기사님은 오늘 어딜 가고, 저 기사님은 일한 지 몇 년이 되신 분이고. 친구는 자신이 아는 정보를 남편과 나눴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가 생겨서 친구 또한 기뻤던 것 같다.


남편은 서슴없이 다른 기사님과 인사하는 친구를 보고 새삼 친구의 다른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항상 혼자 일을 해온 남편은 사람들과 대화할 일이 없었고 화물 일도 같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친구는 주차장에 있는 수많은 화물차 기사님들과 인사하며 안부를 주고받았다. 남편은 그런 친구가 살짝 부러워졌고 쉽게 말을 걸지 못하는 자신의 성격을 돌아보게 되었다.


남편의 친구는 주차장에서 자꾸만 영양제를 내밀며 남편에게 먹으라고 했다. 액상부터 알약까지 다양한 영양제를 챙겨 먹으며 일하려면 먹어야 한다고 했단다. 남편은 친구가 먹던 도라지젤리나 배즙, 종합영양제 등을 사달라고 부탁했고, 남편의 영양제가 떨어지지 않게 챙기는 일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밥.

남편의 친구는 비는 시간이 있었다. 콜발이지만 일주일에 몇 번은 고정일이 있어서 언제 일을 할지, 얼마나 대기해야 할지 예상이 가능하다. 그래서 식당이나 휴게소에 들러 밥을 먹는다. 가끔 택배를 싣기도 하는데 큰 화물차에 택배가 꽉 차게 실으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서 대기시간이 기본 7시간 이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화물차에는 보통 작은 냉장고나 커피 포트가 있고 컵라면이라도 끓여 끼니를 때운다고 한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인데 먹는 게 퍽이나 부실한 일이 화물일이다.


남편은 정해진 거래처에서 물건을 싣고 지정된 곳에 내려줘야 한다. 물건을 싣는 시간이나 장소, 이동 경로도 정해져 있으니 일찍 일을 시작하고 부지런히 움직이면 잠깐 휴게소에서 밥을 먹어도 될 거라 생각했다.

남편은 집에서 1시간 일찍 나가 1시간을 주차장에서 보냈다. 여유롭게 출발하여 물건을 내리고, 다시 물건을 가지러 가는데 차가 무척 막혔다고 했다. 결국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거래처에 도착했지만 도착 예상 시간이 지나있었다.

다음 날 남편은 더 일찍 움직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일찍 도착했다. 하지만 거래처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이었다. 남편은 기다려야 했고 물건을 내리고 실으러 갔을 때는 또 예상시간이 지나있었다.


남편은 고민했다.

누구나 선임자보다는 아니더라도, 선임자만큼은 일을 해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자신이 초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시간이 하루아침에 줄여지지는 않을 테니 운전이 완전히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남편은 계속 하루를 꼬박 굶을 수는 없으니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겠다고 말했다. 익.숙.해.질.때.까.지.만.이라고.

그렇게 남편의 도시락을 싸는 일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배달 도시락을 시켰다. 하지만 남편은 밥에 반찬을 하나하나 집어먹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했다. 나는 도시락을 하나의 도시락통에 담았다. 밥을 담고 그 위에 반찬을 담은 형태였다.


주문했던 배달 도시락


한 달이 지나자 배달 도시락의 메뉴가 중복되기 시작했다. 같은 메뉴가 지겨워진 남편은 그냥 밥에 햄만 싸도 된다며 내게 직접 도시락을 싸달라고 했다. 나는 밥에 햄과 계란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루는 돈가스를, 하루는 김밥을, 하루는 주먹밥을 쌌다.

남편은 밥에 햄이 있을 때는 느끼해서 김치가 필요했고 돈가스를 올렸을 때는 베어 먹기가 불편했단다. 김밥은 양에 안 찼고 주먹밥은 말라서 퍽퍽했다나.


정성스레 만든 참치 주먹밥


어느 날, 볶음밥을 쌌다.

남편은 무척 만족해했다. 빠르게 먹을 수 있고 배도 찼던 것이다. 계란볶음밥, 야채볶음밥, 짜장볶음밥, 김치볶음밥.. 내가 직접 할 때도 있지만 냉동 볶음밥을 이용하기도 했다. 유명한 푸드 회사의 볶음밥 1인분은 너무 양이 적어 2봉은 넣어야 했다. 케이준 볶음밥처럼 좀 짜게 나온 것은 밥을 더 넣어 양을 늘릴 수 있어 좋았다.  

밤 12시가 넘어서 싸야 남편이 먹을 때까지, 그나마 온기가 식지 않고 갈 것 같아 내 하루의 마지막 일과는 볶음밥으로 도시락 싸기가 되어버렸다.

남편의 일은 익숙해진 지 오래지만 도시락은 계속되고 있다. 휴게소보다 졸음쉼터에 잠깐 차를 세우고 먹는 것이 시간이 절약되서이고 주차도 편하기 때문이다. 가끔 대기해야 하는 시간이 생기면 휴게소에서 컵라면과 볶음밥을 꺼내 먹는다고 했다. 김치도 하나 사고.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남편의 일은 때론 무척 걱정되지만 신기한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멍하니 뫼비우스의 띠 위를 달려가는 장난감을 보고 있는 기분과 비슷하달까. 잡생각은 없어지고 마치 나도 함께 달리는 것처럼 동질감이 든다.

남편이 예전에 하던 일은 일이 아닌 사람 때문에 마음을 졸이는 일이었다. 그 일로 사람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는 가장 넘어서기 힘든 장애물인 것을 알았다. 그걸 40대가 넘어서야 깨닫다니.. 주변에서는 그래도 남편을 위해서 그러시는 거라고, 이해하라며 위로를 받았던가, 강요를 받았던가..


아, 도시락 쌀 시간이다.

이전 06화 5. 화물차 세차장에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