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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Jun 18. 2021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허튼 짓이 일상입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아이 키우면서 이 노래 많이 생각나고

혼자 쓸쓸히 웃으며 읊조리듯 불러보신 분 계시나요.


아이가 어릴때, 아이 데리고 외출하려면 일이 많습니다.  물티슈나 간식, 여벌옷 같은 준비물을 챙기고 옷을 입힙니다.  

현관에 세워 외투까지 챙겨 입히고 나면 쭈그리고 앉아 신발을 신깁니다.

앉았다 일어나면 머리카락은 이미 산발이고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릅니다.

그래도 이제 외출 준비 다했다고 홀가분하게 현관문을 열라치면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나 똥 마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입혔던 옷 하나하나 벗기고, 조금 늦겠다고 문자 하나 보내 놓고 변기에 아이를 앉힙니다.

허탈해진 마음으로 화장실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언제 “엄마, 다했어” 하고 부를까 귀 기울입니다.

“엄마, 안나와” 하는 말에 무너지는 마음을 다지며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를 무한 반복하게 만들었던 아이.


그 아이가 커서

오늘 초등학교 졸업 사진을 찍으러 갔습니다.


조별로 의논해서 정한 옷이 청바지에 흰 티셔츠라기에

아침에 제가 입으려고 아껴뒀던 흰 티셔츠를 꺼내 주며

“뭐 묻히지 않게 조심해서 입고 반납해”

라고 했습니다.

어느새 훌쩍 커서 제 옷을 호시탐탐 탐내는 아이입니다.

엄마가 입는 옷은 다 이뻐보인다나요.

그래봤자 아직은 소매가 한뼘은 긴데 말이죠.

나이에 비해서 뭐든  흘리고  묻히고 다니는 아이라서

걱정이 앞서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학교에서 나왔다는 알림 문자를 보고선

잊고 있었던 흰 티셔츠 생각이 났습니다.

깨끗하게 입고 왔겠지.

또 사진 망했다며 들어오자마자 투덜대겠지만

옷은 안 망하고 잘 입고 오겠지?


아이가 현관 패드 누르는 소리에 얼른 앞에 가서 섰습니다.

“딸 왔어? “ “잘했어?” “잘 찍었어? “

마스크를 벗어서 거는 아이에게 우수수 질문을 던집니다.


인중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아이는

“모르겠어. 선생님이 아직 안 보내줬어. “ 합니다.

얼른 “옷은 뭐 안 묻혔어? “

라고 묻습니다.


바지 속에 넣었던 티셔츠를 꺼내며 아이가 말합니다.

“나는 안 묻혔어.

근데! 급식실 아주머니가 급식 떠 주면서 튀겼어.

난 안 묻혔으니까 됐지? 괜찮지? “


“벗어. “

“흥, 칫! “


티셔츠의 얼룩에 주방세제를 묻혀 닦으면서 절로 노래가 나옵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아이를 이리 허투루 보는 건 엄마의 피 때문일 겁니다.

남편은 시간 약속이나 물건의 자리에 민감한 사람입니다. 그에 비해 저는 항상 늦고, 항상 뭔가가 사라져서 찾는 사람이지요.


저는 초등학교 졸업앨범이 없습니다.

요즘 졸업앨범은 뒤편에 전화번호, 주소가 없어졌음은 물론이고 찍고 싶지 않으면 안 찍어도 되고, 구입하고 싶지 않으면 구매하지 않아도 된다네요.

저희 때는 구매하는 게 당연해서 저도 한부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툼하니 한 반에 5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지요.


중1 때,  집 앞 슈퍼를 갔다 나오는데 어떤 아저씨 한 분이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양복 정장을 입은 깔끔한 사람이 (양복을 입은 사람을 보기는 힘든 동네였습니다) 사람을 찾고 있는데 ㅁㅁ국민학교를 나온 아이라며 졸업앨범이 있으면 좀 빌려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럼 어떻게 다시 받아요?”

라고 제법 똑똑하게 물은 기억이 납니다. (하하.)

그분은 저 슈퍼에 내일 오후 3시까지 맡겨 두겠다며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제 눈에 퍽이나 신뢰가 가는 다정하고 젠틀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집에 가서 앨범을 가져다가 냉큼 안겨드렸지요.


다음날, 아빠에게 앨범을 가져간 사람이 아직 슈퍼에 갖다 놓지 않았다며 말을 했더니, 무슨 일인지 이것저것  묻던 아빠가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너 그거 못 찾는다!”

그 순간 알았습니다.

아 허튼짓을 했구나. 하고요.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너를 잊겠다는 거짓말을 두고 돌아서긴 했지만.

언제 보더라고 너만은 기다리고 싶어

다시 처음으로 모든 걸 되돌리고 싶어.


돌아오지 못한 앨범의 빈자리를

이제 아이의 앨범으로 채우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몇 번이나 더 저 노래를 부르게 될진 모르겠지만

슬픈 예감보다 기쁜 일들이 더 많으니까

오늘 하루도 허튼짓을 하며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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