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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Jun 24. 2021

싫다고 말하기는 너무 어렵다.

나쁜 사람은 되기 싫어.


오랫동안 내가 그러하다고 느낀 감정.

그 감정을 꺼내는 순간

너는 내가 그렇게 느낄 줄 몰랐다며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내게 말하겠지.

그럼 그동안의 나의 감정은 모두 오해로 점철될 테다.


그것이 싫다.


매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쨍했고,

오래 눌린 자국을 남겼는데

너는 마치 모래놀이 상자 속의 흙처럼

흩트려버리면 제자리로 돌아올 거라 여기는 듯한

너의 무딘 감정선이 싫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꼭 쥐고 있던 주먹이 느슨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손등에 눈물자국이 지워진 것 또한 아니니

사그라들었지만 사라지진 않은 내 감정으로

어떤 말도 다시 꺼내 올리고 싶지 않을 뿐이다.


흐르게, 그냥 흘러가게 그냥 둘 거라고 했지만

마음에 걸린 돌덩어리가 같이 굴러가고 있다는 것도 안다.

지금 당장 부스러질 돌덩이가 아니니

그저 데굴데굴 소리를 들으며

내 마음을 다져볼 테다.


나는,

네가 싫다.

헌데 싫다고 말하기는

너무 어렵다.





나는 둔한 편과 예민한 편중 전자에 속한다.

그 상황에서 알아채지 못한 것을 후에 듣고 나면

내가 하는 말은 거의가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 “라던가

“난 전혀 몰랐어.”이다.


아침에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커피를 같이 하던 멤버 중

한 명이 소원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4인 이상 집합 금지’에 따른 ‘다른 이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평소 타인에게 배려심이 깊은 좋은 사람이니.

시간이 조금 지나서는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나 보다’

여겼다. 시기에 차이만 있을 뿐 주부라면 한 번씩 경험하는 일이기에.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서는 다가갈 수도

물어볼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시간이 너무 지났으므로.


얼마 전 잠깐이나마 대화할 기회가 생겼다.

아이의 학원이나 일상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불쑥 왜 그러냐고, 무슨 일 있냐는 말이 튀어나왔다.

사실 마음속에 온통 그 말로 가득 차 있었을 텐데

지그시 누르고만 있다가

그녀가 내가 예전에 알던 그 사람이 맞다는 안도감이 드는 순간 눌렀던 힘이 절로 풀려버렸다.


‘이것 때문이야. ‘

라고 말하지 못함은

우리가 아이들의 엄마로서, 한 사람으로서,

두 개의 역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상황이

복잡하지 않을 수 없다는 데에 있을 거다.

‘개인 대 개인’과 ‘아이 엄마 대 아이 엄마’는 매우 다른 입장을 가진다.


상황이 반복되고,

어떠한 불쾌한 감정이 쌓여갔을 것이다.

무리에서 한두 명에게 느끼는 감정일지라도

그 몇몇에게만 등을 돌리는 건 쉽지 않을 테고

차라리 자신만 떨어져 나가는 걸 선택했을 테다


그녀와 대화하는 동안

부스러기처럼 떨어져 나오는 단어를 모아서

내가 ‘그녀의 입장이었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고 글 앞머리에 써보았다.

과장된 것일 수도 있고 아예 아닐 수 도 있지만

헤아려 보고 싶다.

내겐 그녀가 퍽 소중한 인연이었기에.


그리고 둔한 나조차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하고

아래에 써보았다.




“내가 둔해서. “

“내가 예민해서. “


둔한 것도 예민한 것도 면제 사유가 되진 않는다.

내세울 것이 아닌 성격 자체의 결함을

면죄부처럼 슥슥 꺼내 드는 그들을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그 사람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맞지 않다는 거니

뒤로 애매하게 밀쳐놓아 자꾸만 연락받지 말고

명확히 이야기를 해. ‘

라고들 하지만


맞지도 않을뿐더러 내게 나쁜 사람이었던 것을

명확히 이야기하면

내가 도리어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인연을 칼같이 끊어낼 용기도

스스로 나쁜 사람이 될 용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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