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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Aug 06. 2021

엄마, 나 양궁 시켜줘!

코리아, 파이팅!!!



도쿄올림픽 개막식부터 지금까지 하루에 한 시간 틀까 말까 했던 거실 티브이가 하루 종일 켜져 있습니다.

개막식에서 우리나라의 입장을 기다리며 참가한 205개국의 입장을 하나하나 보는 것부터 시작되었는데 입장이 끝나면 질이 보장된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다린 것이, 끝나고 나니 공연보다 입장이 더 재밌었던 개막식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참가국의 인원수와 메달 딴 이력을 보며 지도에서 위치를 찾아보기도 하고 어떤 언어를 쓰는지 궁금해하며 검색해보기도 했습니다. 타국 선수단의 의상을 평가하며 한국이 멋진 옷을 입고 나오기를 기대했지만 이탈리아의 의상을 보고서는 ‘피에로만 아니면 된다’로 바뀌었습니다.


갑자기 깃발을 든 봉을 휘휘 돌리며 나온 포르투갈에 ‘너무 오래 기다려서 힘들었나 보다’며 눈물 나게 웃었고, 엄청난 인원을 자랑하며 걸어 나오는 미국 선수단의 여유로움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디. 벌써부터 미국을 너무 좋아하는 아이들은 “역시 미국” 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개막식 이후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중계를 따라 응원하고 응원하고 또 응원합니다.

하루 종일 켜 있는 티브이에 “이제 그만 보자” 할라치면 새로운 종목이 나오고, 경기 룰이 궁금해서 해설자의 해설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이것만 보자”

“이건 처음 본다 이것까지만.”

“아니, 왜 이렇게 잘해 우리나라!”

의 수순을 밟으며 계속 티브이 앞을 떠나질 못합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이의 덕질 대상에 스포츠 선수가 포함되었습니다.

양궁의 김제덕 선수.

‘코리아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나 봅니다. 워낙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고요.


아들이 만든 응원 비즈


아이의 아침 알람이 울립니다.

“코리아 파이팅!!! 코리아 파이팅!!! 코리아 파이팅!!!”

무한 반복되는 김제덕 선수의 목소리입니다. 혼성전, 단체전, 개인전에서 울리던 김제덕 선수의 목소리를 연달아 짜깁기 한 아이의 알람입니다. (헉..)


팬아트를 그리면서 어디로 팬레터를 쓰면 되는 거냐고 묻습니다. 학교로 보내면 선생님들이 전해줄지 말지가 걱정인가 봅니다. 직접 경북 예천에 가서 전해주자며 네이버 지도를 검색하더니 2시간 40분밖에 안 걸린다네요. 이 아이는 커서 연애만 해도 온 집안을 다 거덜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ㅠㅠ)


렌즈를 뚫었던 한국의 양궁을 본 적 있는 저로서는 한국의 양궁이 엄청난 수준이란 걸 알기에 그리 놀랍지 않았는데 화살 위에 화살이 꽂히는 ‘로빈후드’ 화살을 본 아이는

난리가 났습니다.

“대단하지 않아 엄마? 이거 올림픽 박물관에 전시된대!”

김제덕 선수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아이의 브리핑을 통해 듣습니다. 자가격리 이유부터 뉴스 출연 스케줄까지 끊임없이 재잘댑니다.

천 개의 화살을 쏘았다는 뉴스 인터뷰를 보더니 아이가 큰 결심이나 한 듯 말합니다.


“엄마, 나 양궁 시켜줘!”


아이의 뜬금없는 요구에 급하게 거절할 핑계를 찾습니다.

“너 눈 나쁘잖아, 눈 나쁘면 양궁 못해”

아이는 눈이 나빠도 할 수 있다며 안경 낀 선수의 사진을 찾아 보여줍니다.

‘그래.. 그럼 패스.. ’


“너무 늦어서 안돼.”

13살, 초등학교 졸업반인 아이에게 ‘이미 늦었다’ 고 말해봅니다. 김제덕 선수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했다며 나름의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김제덕이 인터뷰에서 ‘늦으면 중학교 때부터 시작하기도 한다’라는 문구를 찾아 보여줍니다.‘아, 이것도.. 패스…‘


“3년 밖에 안 늦었으니까 할 수 있거든.

엄마는 왜 자꾸 안 된다고 해?

한번 시켜봐 주면 안 돼? “


아이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변합니다.

궁지에 몰린 저는 ‘솔직한 말’이지만 ‘왠지 하기 싫은 말’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엄마도 몰라.”

가끔 아이에게 이 말을 하기가 싫어서 몰래 검색을 하기도 하고, 먼저 공부를 해서 아는 척 한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정말 모르겠습니다.

운동을 시작하는 방법을 말입니다.

그리고 또한 엄두도 안나는 일입니다.


어릴 때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양궁부가 있었습니다.

반에서 팔 힘이 좋은 아이들을 네다섯 명씩 불러서

학교 뒤뜰에 세워놓고 노란 고무줄로 당기는 연습을 시켰습니다.

자세와 힘을 보고 하나둘 떨어뜨리고 남아있는 아이들에게 텅 빈 활부터 들게 해서 점점 조준기 등의 장치를 달아 나가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 저와 제일 친한 친구가 양궁부 에이스였는데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정말 운동은 힘든 거구나’ 란 생각만 들었습니다.

친구는 원래 치마에 양갈래 머리를 땋아 학교에 오던 막내 공주님 같은 아이였는데 불과 2,3년 사이에 아이의 하얀 피부는 까매졌고 6학년 수학여행도 가지 못했으며

학교 수업시간에 들어오지도 못했습니다.

공부를 곧잘 했던 친구는 양궁을 그만두고 싶어 했지만 학교에서는 차일피일 미루며 아이를 잡았습니다.

머리띠를 하고 있던 친구가 코치에게 맞아서 머리에 박힌 피 묻은 머리띠를 뽑아낸 이후로, 친구의 엄마는 몇 번이고 학교를 오가며 항의를 했습니다. 몇 달이 지지부진하게 지나간 끝에 친구는 운동을 그만둘 수 있었습니다.  

저희 어릴 때 만 해도 선생님들의 구타가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던지라 교복 치마를 입고 엎드린 자세에서 궤도 걸이로 엉덩이를 맞는 게 아프기만 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잘못된 건지 몰랐으니 운동은 오죽할까 싶습니다.


아이가 말합니다.

“그때는 엄마 때잖아”


물론입니다.

지금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겠지요.

다만 운동선수들이 뒤에서 흘리는 땀의 양을 쉽게 간과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화려한 무대에 선 이들은 멋지기만 하고, 그들이 보여주는 실력은 출중하기만 하니 말입니다.

티브이에 나오는 선수들을 보니 예쁘고 멋지기만 해서 힘든 체력 운동을 어떻게 하는지 저까지 궁금해지는데, 아이의 눈에 멋지게 활을 쏘는 선수들이 얼마나 근사해 보일지 짐작이 됩니다.


펜싱선수들을 비롯해 올림픽 출전 선수들이 티브이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 자리에 올라가기까지 어떤 힘든 과정을 거쳤는지 이야기해 주시겠죠.

자꾸만 과정보다 결과에만 주목하는 아이의 생각에 ‘댕’ 하고 경종을 울려줄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물론 그들의 이야기도 궁금하고요.


우리나라 어딘가에서는 올림픽에 고무되어 운동을 시작하는 아이가 있을 겁니다. 커서 메달을 따면 어릴 때 본 올림픽 선수처럼 되고 싶어 운동을 시작했다고 인터뷰하겠지요. 하지만 제 아이는 올림픽의 열기에 잠깐 ‘꿈 한번 꿔 본 아이’로 남을 것 같습니다.

‘3년 후에 런던 올림픽에 양궁 경기를 관전하러 가서 김제덕 선수를 응원하는 것’으로 벌써 계획이 수정되었거든요.

아이의 김제덕 선수를 향한 덕질이 실현 가능한 새로운 계획을 만들어낸 것만으로 저는 만족합니다. 더 이상 양궁부가 있는 중학교를 알아보지 않아도 되어서 좋고요. 하하하.



205개국이라는 수많은 나라 중에 현재 12위에 랭크되었는 멋진 나라, 한국!

코리아 파이팅!!!입니다.


딸이 만든 핸드폰 배경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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