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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Aug 25. 2021

옛날 갬성을 가진 어린이.

응답하는 어린이 2021.



제 아이는 옛날 갬성입니다.


아이가 쓴 독후감 서두에, 책이 자신이 읽는 구독 잡지에 소개된 책이었다며 잡지의 책 소개 코너가 좋은 이유에 대해서 써놓았습니다.



잡지를 읽을 때 소통하는 코너가 유독 끌린다.
성별도 나이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같은 잡지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함께한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바로바로 답하지 않고,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집 문 앞으로 잡지가 올 때만 서로의 답변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따뜻하고
귀중한 공간이, 나는 참 좋다.




저는 이 글을 읽고 혼자 푸핫 하고 웃었습니다.

이 아이는 편지를 쓰고, 빨간 우체통까지 걸어가서 편지를 부치고, 매일 우편함을 뒤지며 답장이 올 때까지 손꼽아 기다리는 것을 좋아할 아이라는 생각에 계속 웃음이 났습니다.

요즘은 답이 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것을 못 참고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사는 세상인지라 갑갑하다고 느낄 만도 한 나이인데, 되려 따뜻하고 귀중하다고 까지 하니 이아이는 대체 어느 시대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느긋함이 아이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급하지 않아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것이 아이의 장점이고, 그 여유가 지나치게 길어져 끝이 흐지부지 해지는 것이 아쉽습니다.


아이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왕팬입니다.

아이에게 드라마를 허락해 준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본 드라마라고 해봤자 두세 개가 전부인데 아이 아빠가 재밌다며 추천해주었답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저희 부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되었습니다. 드라마에 빠져 온종일 드라마 이야기를 하기에 처음에는 본 지 얼마 안 돼서 그러나 보다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몸은 2021년에 있으나 정신은 1988년에 있는 듯이 모든 대화를 드라마에 대입시켜 생각하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책에서 민주혁명이 나왔을 때도,

응답하라에 보라 언니가 하던 게 이거야!

올림픽 개막식 중계를 보면서도 

혜리 언니가 피켓 든 게 이거야!

서점에서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란 책을 보고도 

이거 응답하라에서 나온 거야!


아이는 응답하라에서 류준열이 가장 멋있다며 본격적인 덕질까지 시작했습니다.  미성년자 관람불가였던 류준열의 사진전에 가지 못해 안달하는 아이를 보고 아이의 숙모가 깔깔 웃으며 말했습니다.

“모녀가 좋아하는 기준이 얼굴은 아니네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는 조진웅 입니만.. 무사 무휼!!!)


드라마에 나오는 그 시절의 이불, 뜨개를 비롯하여 연탄불, 학교의 교련복, 금성의 전자제품 등을 본 적 있을 리가 없는 2009년생 아이입니다. 라디오를 듣다 음악이 나올 때마다 테이프 녹음 버튼을 누르던 그 시절을 알리 만무한 겨우 열세 살 된 아이이지요.

뭘 이해하기에 이 드라마를 그리 좋아하는 걸까요.


요즘 기타 연습에 재미를 붙인 아이는 드라마에 나오는 삽입곡을 연습합니다.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내 청춘..

(청춘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하세요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사랑해본 적도 없는데?)


중1때까지 늘 첫째 줄에 겨우 160이 되었을 무렵

쓸만한 녀석들은 모두 다 이미 첫사랑 진행 중~

(이게 그나마 제일 낫네…)


이쯤 되면 아이에게 전생의 기억이 있나 의심스럽습니다.

아이가 3학년 때 드라마 도깨비를 보던 친구들이 아이에게 물었답니다.

너는 전생이 뭐야?

드라마를 본 적이 없는 아이가

전생? 전생이 뭔데?라고 되물었더니

한 친구가 지금 생 말고 이전 생 이라며 설명을 해주었답니다.

설명을 듣고도 어리둥절하게 있던 아이에게 다른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 야, 얘는 이게 첫 생인가 보지!”


이제 레드썬을 해 볼 차례입니다  :)









사진출처: 응답하라1988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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