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진진 Aug 31. 2021

김범수와 통화하고 온수매트 받은 녀자.

나야 나!


어린아이를 키우는 아이 엄마들은 하루 종일 바쁩니다.

우는 아이를 안고서는 얼러가며 유축을 하던가 분유를 타던가 이유식을 만듭니다. 책을 읽었다가 장난감도 흔들었다가 기저귀도 수시로 갈고 옷도 몇 번 갈아입히고 나면 다시 처음부터 반복입니다. 이 반복되는 사이클이 하루에 다섯 번은 족히 될 듯합니다.

하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심심합니다.

긴 시간이 아닌 짧게 쉬는 시간이 군데군데 있지만

사람을 만나러 가기엔 준비시간도 길고 준비물은 한가득이며 아이의 낮잠시간도 마음에 걸립니다.

저의 한 지인은 겨울에 어린아이를 키워서 길에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아 우울해했으며 어쩌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을 누르느라 힘들었다고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대부분의 아이 엄마들은 말 상대가 없습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은데 만날 이들이 마땅치 않고

하루 종일 말 못 하는 아이에게 주저리주저리 떠들며

퇴근할 남편만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저또한 한참 그런 생활을 할 때였습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두 달이 안되어 지인이 아이를 보러 왔습니다. 첫째 때는 한 달 동안 조리원에 있다 퇴원했지만 둘째 때는 첫째 아이가 맘에 걸려 조리원에는 1주만 있다가 퇴원했습니다. 산후도우미를 불러 3주간 도움을 받고 그나마도 계약이 끝나 혼자 아이를 돌보던 때였습니다.


“너 이렇게 조용히 애 키우면 안 돼,

티브이나 라디오라도 틀어놔"


큰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낑낑거리던 아이를 멍하니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음악을 들을 때를 제외하고는 생각이든 상상이든 하는 걸 좋아했던 저는 그저 조용한 주변에 별 이질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를 이렇게 조용히 키우면 작은 소리에도 깨는 예민한 아이가 된다며 일부러라도 소음을 발생시키라고 조언했고 저는 그날로 조언을 받아들였습니다.


텔레비전을 켜 놓으면 다른 일들을 할 수가 없어 제외시키고 그날부터 라디오를 켜 놓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이틀 듣다 보니 버벌진트의 목소리가 좋고

김범수(범D) 의 유머가 재미있어지고

유인나가 괜히 다시 보이게 되었습니다.

생각하는 시간은 줄었지만 그에 맞춰 우울감도 함께 줄었으니 제겐 꽤 괜찮은 조언이었던 듯 합니다.


그러다 가수 김범수가 진행하는 코너에 나도하나 하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저 커피 쿠폰 하나를 기대했던듯 합니다.

그리곤 바로 범디가 전화번호 하나를 호명했는데

끝 자리 숫자가 끝남과 동시에 제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헉! 세상에!

그 당혹감이란.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며 라디오에서 울리는

제 목소리를 들을 때의 그 떨림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심장소리가 마치 제 귀에서 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내 잊고 있었던 미션을 범디가 외쳤습니다.

“자 성대모사 시작! “


세상에! 성대모사라니..

말을 하는 것도 힘든데 성대모사라니..

한평생 재미없고 진지하게 살아온 내게 성대모사라니..


저는.. 그 순간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매주 보던 개콘의 유행어가 단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뇌는 긴장감으로 바싹 말라버렸습니다.

굳은 논바닥을 뚫듯 머릿속을 비집고 떠오른 건 자주 듣던이소라의 노래였습니다.


이소라의 난 행복해 를 불렀습니다.


라디오에서 노래를 잘하지도 못하면서 목을 쇳소리로 다각 다각 긁으며 노래하던 사람들을 세상 용감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저도 그 용감한 사람들의 무리에 합류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소라의 난 행복해, 너에게 이런 말 정말 하고 싶지 않아. 라고 정확히 한 소절을 부르고 멈췄습니다.


범디에게는 멈춘 제 노래가 잠시 쉬고 이어질 쉼표인 줄만 알고 기다렸을 테지만 제겐 정말 그게 끝이었습니다.

제 용기를 백분 짜내 부른 한 소절. 그리고 끝.


범디는 살짝 당황하며 재미도 뭣도 없는 저의 성대모사를 이소라! 하며 맞추는 척하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고 저는 누워있는 아기 앞에서 10분을 넘게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며 방방 뛰었습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어떡해! 어떡해! 어떡해!”


후에 주소를 알려달라는 라디오 관계자분의 문자에 뻔뻔스레 주소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쯤 후, 어마어마하게 큰 상자가 도착했습니다.

바로 그 시절 유행하기 시작했던 온수매트. 두둥.


방송에 민폐 끼치며 호들갑만 떨다 끊었지만

제겐, 김범수와 통화한 여자란 남편의 칭찬과 온수매트가 남았습니다.

이 온수매트는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겨울밤이면 불려 나와 저를 따스하게 해주네요.


감사합니다. 김범수님!

감사합니다 이소라님! :)








photo : Unsplash - Dave Weatherall



작가의 이전글 부럽다는 말은 하는 게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