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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어렵기만 한 축하. 그 타이밍까지.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by 윤진진



계속해서 시기를 놓치고 있다.

축하받을 수 있는 그 타이밍을.


내게 오는 시선이 부끄러워서,

내게 걸릴 단 하나의 기대감도 무서워서,

축하해. 란 말을 들었을 때 민망해하며

다른 화제로 돌리려 애쓰는 나를 마주하기 싫어서.


시기를 놓치고는 위안한다.

말 안 하길 잘했지 않냐고.

별거 아니었다고.




국민학교를 다닐 때였다.

엄마는 일하러 나가고 환한 낮이었는데도 일어날 기미가 없던 아빠를 깨웠다.

아빠는 “생일인데 뭐 어쩌라고! “

하고 다시 누우려다 지갑에서 천 원짜리를 꺼내 던지며

“짜장면이나 사 먹고 와!”

라고 했다.

오빠는 말없이 돈을 주워서 나를 데리고 나갔다.


그 시절 어린아이들의 일상을 표현하기 위해 항상 등장하는 자장면. 자장면 하나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듯이 그들이 하는 모든 언행을 자장면으로 갚고는 자신은 좋은 부모라고 위안하는 듯했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자장면 따위를.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항상 당당하게 축하받지 못한다.

한 번의 시도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을 받고서는 혼자 비명을 질렀다. 속으로.

내 두 손은 내 입을 가리고 소리는 안으로만 울렸다.

눈은 크게 웃고 있었지만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군가에게 축하받고 싶지만

이게 축하받을 만한 일인지 말하기가 무서웠다.

내겐 기쁜 일이 남들에게는 별거 아닌 일일까 봐 무서웠다. 결국 나는 한 달이나 지난 후에 브런치 작가 된 지 한 달 됐어요. 하고 아이의 책 기록을 올리는 인스타에 피드를 올렸다. 적은 수의 팔로워를 가진 계정이지만 7명에게 댓글로 축하를 받았고 혼자 기뻐했다.

여전히 주변인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운 좋게 브런치의 글이 다음 메인에 올라간 일이 있었다. 내겐 너무 흥분되고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 흥분을 함께 할 누군가를 찾지는 못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남편에게 말했지만 그거 올라가면 돈 주냐는 질문을 받고 아니 그건 아니고.. 하며 얼버무리고 말았다.

아이에 관한 글이 다음에 올라갔을 때는 아이를 불러 말해보았지만 제목이 마음에 안 든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칭찬을 많이 못 듣는 것을 꼽았다. 나는 어른이 되면 그냥 하는 칭찬이 아니라 성과나 그 성과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것이라고 대답하며 어른은 칭찬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정말일까? 어른은 칭찬을 바라지 않는 걸까?

혹시 대부분의 어른이 나처럼 칭찬받기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고 사실은 무척이나 칭찬을 바라고 있는 건 아닐까?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읽으면서 나의 글에 좌절하기 시작했고 웬일인지 받지 못한 축하가 그리워졌다.

그때 온전히 축하받았으면 지금 좀 더 상처 받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지 않을 까하고.


브런치의 자격을 좀 더 신중히 평가해야 하고 내용도 없는 낚시글이 브런치 홈이나 다음에 뜨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내용 스포까지 해가며 굳이 영화나 책의 후기를 쓰는 이들을 비판하는 글 앞에서 나는 한 없이 작아진다.

전 국민이 에세이를 써야 한다거나 글쓰기의 반은 자신감이라거나 개인의 경험은 글쓰기의 좋은 소재이다 라는 말을 믿고 있던 내 보호막이 부서지기 일보직전의 위태한 모습으로 서 있다.


글쓰기에 대한 강의가 있어 신청한 줌 수업에서

강사님 자신이 브런치 작가임을 밝히며 브런치 작가이신 분이 있냐고 물었지만 나는 말하지 못했다.


나는 혹시 내가 갑자기 나타난 스타라도 되길 바라는 걸까. 초라하고 너저분한 내 모습을 누구에게 보이길 꺼려하는 것일까. 그럼 언제까지고 내 자신을 내비칠 수 있는 기회는 없는 것이 아닐까.



어두운 것, 작고 하찮아 보이는 것에 집중하던 중학교 무렵이었다.

달이 가지고 있는 바다도 산처럼 빛나는 달의 일부라는 걸 안 순간부터 달의 바다라는 닉네임을 썼다.

내 안의 어두운 부분이 내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과학시간이었음을.

나도 환한 달이 될 수 있겠다 밝은 생각을 품게 한 값진 시간이었다.


나는 다시 내 안으로 단단해지길 바란다.

몇 권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다가 지쳐갈 때쯤 만났던 클리티에처럼.

해를 너무 사랑해서 해만 바라보던 요정 클리티에.

자신이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더 중요했고 원치 않는 상대에게 받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생각했을 그녀.

해바라기가 되어가며 행복해했다는 클리티에는 이름처럼 가녀린 요정이 아니라 외부의 것으로부터 강력하게 자신을 지키는 강한 존재였지 않을까.

나 또한 겉으로 유약해 보일지언정 내면은 강해지고 싶다.





그러해도,

부디 조금은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길 바라며..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하단 말을… 놓고

이미 저만치 도망가고 있음을…













Main Picture : Unsplash -lucas Fav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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