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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Sep 21. 2021

딸아, 제사를 왜 해야 하냐면…




이걸 왜 해야 하는 거야? 죽은 사람이 아는 것도 아니고.


제사 준비로 한참 분주했던 제가

배짱이처럼 기타만 딩기딩 치고 있는 딸에게

핀잔을 주었다가 들은 말입니다.


갑자기 들은 말이 너무 강력한 불쏘시개가 되어

남편과 저에게 불이 화르륵 붙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럼 넌 명절에 뭘 할 건데?


제사 안 지내는 집은 그냥 휴일처럼 놀 거 아니야

우리는 오늘처럼 할머니 공장에도 갔다 와야 하고

또 내일 제사도 지내야 하잖아.


아니, 명절에는 차례를 안 지내도 어른들을 찾아뵙고 인사하는 거야. 코로나로 할머니 뵌지도 오래됐잖아.


남편이 제 말을 끊으라는 손짓을 하며 말합니다.

공장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

친구랑 놀아. 놀 수 있으면 놀아.


아이가 잠시 제 손만 내려다보고 있더니 말합니다.

그냥 제사 지내는 게 싫단 말이야.


아..

저의 이글거리던 불빛이 사그라듭니다.

그냥 그 순간, 아이의 말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아이는 그저 이런 행위에 대한 반감이 쌓인 것입니다.

그것이 외부에 많은 요인과 합쳐져 사춘기라는 호르몬과 만나 증폭 작용을 일으켰나 봅니다.


학교에서 차례는 간단한 상차림이라며 아이들에게 동영상을 보여주었다고 했고, 저와 남편이 제사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는 것 또한 들었을 겁니다.


코로나로 조부모님 댁에 가지 않는 친구들도 있고, 종교적인 이유로 차례를 지내지 않는 친구들도 있겠지요.

친구들과의 교류가 더욱 왕성해지고, 미디어의 영향이 극대화되는 나이.


자신이 정한 바운더리 안쪽은 갖고 있는 모든 이기심을 똘똘 뭉쳐 지키려들고, 그 밖의 것은 이해가 안 간다는 말로 패대기치는 자의식 과잉의 단계인가 봅니다.


아이의 생각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주어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저와 남편 또한 제사를 탐탁지 않아합니다.

제사는 정성이라는 핑계로 거의 모든 음식을 손수 장만하시길 바라는 아버님 때문에 딱딱한 밤을 깎는 것부터 대가리가 달린 닭을 모양채 삶는 것까지,

온전히 어머님의 몫인 게 싫었습니다.


제가 몇 시간씩 서서 먹기에도 불편하고 손은 많이 가는 배추와 소고기 등을 길게 엮은 꼬치전을 부치고 나면

먹을 때는 다들 남은 재료를 썰어 넣은 막 부침개만

먹는 일이 허다합니다.

탕국의 애매한 냄새가 싫고

나무 제기의 청결함에 의심이 갑니다.


말하자면 끝도 없는 이 불합리한 제사상을 왜 하고 있냐 하니, 당연히 부모님이 원하셔서입니다.

이리 하는 게 평생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행동해오신 분들의 마음을, 불합리하다는 이유로 외면하지 않고

그저 마음 불편하지 않을 만큼 동조해드리는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서 저희에게 이 제사를 물려주시겠다 하면 저 또한 정확히 제 의사를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정성으로 제사를 지낼 생각은 전혀 없고

그래도 지내셔야 마음이 편하시겠다면 

저희가 간소화시키는 것이나 음식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말아 주세요.



그런데, 예상 못한 곳에서 복병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이런 강경한 태도는 저에게도 당황스러운 일입니다.

행여나 마찰을 빚게 될까 봐 걱정스럽기까지 합니다.

오늘 아침 차례상을 물리고 아침식사를 할 때도 음식을 거의 먹질 않습니다.  원래는 전이나 고기도 맛있게 먹던 아이였는데 좋아하는 떡도, 대추도 먹질 않으려 하는 것이

제사에 대한 강경노선을 이런 식으로 표출할 모양입니다.


올해 초 제사 때만 해도 아버님, 남편, 딸, 아들이 조로록 서서 술 따르고, 절 하고 했었는데 이제 하지 않겠다는 손녀를 보고서는 아버님은 역으로 손자에게 용돈을 쥐어줍니다. 그런 역 회유가 통할 리가 없는 나이인데 안타깝습니다. 저만 딸의 눈치를 보며 “넌 엄마가 용돈 줄게”하고 속삭입니다.

아이와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관계가 그저 형식에 불과한 제사 때문에 나빠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사를  해야 하냐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제사를 지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시고, 그래야 마음이 편하시기 때문이야.

누구나 자신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쫓아가잖아. 그분들에게는 이 제사가 옳은 일인 거야.

우리에게 의미 없어 보인다고 다른 사람들도 그러란 법은 없어. 그저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도와드리는 거야. 그 이상은 엄마도 할 생각이 없어. 그냥 넌,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조금 다른 특별식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안 될까?


라고,

아이에게  말을 정리해 봅니다.


그래도,

올해 제사상은 마지막이었네요.

안녕, 제사상과 제기들아.

내년 까진 맘 편히, 서로 보지 말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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