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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Oct 08. 2021

네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단골이 되었다.


"'윤진희'요?"

"아니요. '이'요 '이'"

 

처음 알게 된 사람들 앞에서의 자기소개 시간에도, 핸드폰 요금 내역을 문의한 통신사와의 전화통화에서도,

하다못해 동네 슈퍼의 포인트 적립 시에도 나는 입을 옆으로 찢으며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려야 했다.

'희'가 아닌 '이'를 표현하기 위해 입술과 이를 포함해 얼굴 근육까지 실룩대며 말해보지만

결국 '이'와 같은 음을 가진 숫자 '2'로 표현하는 손가락을 들고야 마는 것이다.

마치 변명하듯 황급히 내보이는 손가락에 주변을 돌아본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있어오는 일이지만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워낙 잦은 오해에 프린터에 용지가 턱턱 걸리듯, 매번 갑갑한 심정이 되어버린다.

 

동네에 새로 생긴 정육점이 마음에 들어 일주일에 두세 번을 가게 되었다.

전화번호 뒷자리만 대면 포인트 적립을 해주시는데 내 번호를 부르면 같은 번호가 4개나 뜬다.

그럴 때마다 직원이 맨 위의 남자 이름을 대며 "이승훈 씨요?" 하고 묻는다.

"아니요. 가운데 278 이요."

 

하루는 작업 중인 직원을 대신해 사장님이 계산을 하시며 "포인트 번호요?" 하고 물으셨다.

"1228 이요."

"이승훈 씨요? "

"아니오. 가운데 278 이요."

전과 다를 바 없는 계산과정에서 데자뷔라고 해도 믿을 만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대화가 오고 갔다.

헌데 갑자기 사장님이 물으신다.

"성함으로 등록해드릴게요. 성함이?"

"아, 윤진이요."

"아~ 윤진이 씨요? 연예인 이름과 같네요? 등록해드릴게요. 안녕히 가세요."

 

동네 정육점 사장님이 내 이름을 한 번에 정확히 알아듣고 등록해주셨다. 손가락은 채 들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앞으로 다른 정육점은 쳐다도 보지 않을 테다.

서비스로 파채를 주시지 않아도, 만 원 치를 바랐는데 자꾸 만 이천 원 치를 담아주셔도,

나의 단골 정육점은 여기로 정했다.

 

나의 이름을 불러주신 이 정육점에,

나는 만년 단골이 되겠다.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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