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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Oct 13. 2021

경상도 사투리는 흔적을 남긴다.

내도 밸 수 없다.



수년 전, 내가 경기도의 서비스계열 회사에 취업했을 때, 직속상관이었던 김 과장님은 나의 말투를 자연스레 고치길 바라셨다.

내가 살던 도시는 관광 도시여서 유동인구가 많아 사투리가 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회사에서 누구와 맞닥뜨리게 될지 모르니 우선은 표준어를 구사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나는 일순간 입고 있던 사투리 옷을 벗은 것처럼 표준어를 썼다. 다들 나의 바뀐 말투에 놀라워했지만 내게 말투 하나 바꾸는 것쯤 별로 큰일이 아니었다. 대학교 때 인천 사는 아이가 우리 학교를 다녔는데 그 애와 이야기하고 있으면 나는 어느새 그 애 말투를 쫓아 표준말을 쓰고 있었다.

동화된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나는 사투리와 표준말 구사를 별로 힘들이지 않고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단어와 문장은 아니었다.

출장을 나가는 차량 안에서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대화를 나누던 김 과장님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셨다. 나는 뭐가 그렇게 과장님을 웃게 했는지 몰라 어리둥절했는데 한참이나 박장대소를 하시던 과장님이 눈가에 맺힌 눈물을 찍어내며 내게 말씀하셨다.


“까자가 뭐야 까자가~~”


까자.

까자는 과자이다.

경상도에서 태어난 나는 몇 개의 특정 단어의 앞글자를 강하게 발음하는 것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과자이다.

과자의 앞글자를 세게 발음하다 보니 까자로 들린다.


이모.

이모는 어릴 때부터 나보다 더 강하게 발음하는 사람들 틈에 있어서 그런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다. ‘이’가 마치 ‘잇’처럼 들릴만큼 세게 발음한다.

내 남편이 발음하는 이모는 내가 듣기에 ‘니모’ 같다.

사람이 아닌 그 주황색 물고기 말이다.


그리고 6월.

유월’이라고 읽어야 하는데 나는 ‘육월’하고 정확하게 읽어진다. 10월도 마찬가지로 ‘시월’이 아닌 ‘십월’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수도권에 산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고쳐지지 않는다. 경상도 사람으로 태어나면 쇠망치로 꽝꽝 때려 박아서 없앨 수 없는 몇 개의 표식을 남겨두는 건 아닐까? 속일래야 속일 수 없게?


관동대지진 때 일본 자경단이 한국인을 속출해내기 위해  ‘십오 엔 오십 전 발음해봐’라고 했던 것이 생각난다.

영화 박열에서 일본인 자경단을 역을 맡으셨던 배우 이정현 님의 무시무시한 연기는 생각만 해도 소름이다.

(한국인은 아무리 일본어를 잘해도 발음이 안된다고 한다)


경상도 지역 사람들이 가장 잘 못하는 발음을 꼽자면

글자’ 언’인 것 같다. 다양한 형태로 변화한다.

첫 글자에 오는 ‘언’은 당당히 ‘은’으로 바뀐다.

언제 올 건데?’는 ‘은제 올 건데’로.

뒤에 오는 글자 ‘언’ 은 경상도 사람들 앞에선 속수무책으로 풀어헤쳐진다.

배우 ‘이시언’은 ‘이시어니’로.



가끔 내게 쌀 발음을 해보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쌍시옷이 들어간 단어는 정말 맛깔나게 잘 발음한다. 표준어로 발음해보면 사투리의 찰진 맛이 안 난다. 맹숭맹숭한 느낌이다. 쌍시옷의 강한 투기가 물에  씻겨나가, 흐릿한 빛을 띠는 것 같다.

쌀 발음을 못하는 지역이 경상도의 어느 지역 이긴 하지만, 부산과 창원은 틀림없이 아니다.



경상도 사람들의 말은 그 속도부터가 다르다.

타 지역과 동시에 말하기를 했을 때

다른 곳은 한참 말하는 중인데 이미 말이 끝나버린 경상도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빈 공백을 채우고자, 한 번 더 말을 반복하는 습관이 든 건 아닐까?

맞잖아’로 끝날 것을 ‘맞다 아이가 ‘로 바꾸고

그래서 그랬어’를 ‘그기 그래가 그랬다 아이가’로 바꾸고.

말 늘리기에 가히 천재적이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단점을 억양이 물결치게 만듦으로써 더 역동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경상도에서는 ‘아이’를 ‘아아’라고 한다. 같은 음이 아닌 두 개의 음으로 뒤쪽을 내리는 느낌이다.

아이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줘’

아아는 아아 시키 주라.’

아이는 아아 시켜주고, 저 아이는 따아 시켜 먹여’

아아는 아아 시키 주고, 쟈아는 따아 시키 맥이라’가 된다.

간장공장 공장장 하는 기분이다.


새삼 재밌다.

내려가면 써먹어봐야지 하는데

막상 가면 사투리가 잘 안 나온다.

지방에서 나는 “위에서 왔나?” 로 시작해 “서울에서 왔는갑다”로 점쳐지는 표준어를 구사하는 일명 ‘서울 사람’인 것이다.

가끔 딸내미가 ‘엄마 사투리 해봐.’라고 한다.

그럼 나는 ‘너 한국말해봐.’로 맞받아친다.

스스로 사투리를 우습게 여기지 않고 꼭 필요한 적재 적시에 사용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경상도 24년 대 경기도 16년.

나는 이제 완벽한 경기도민인 것일까?

사투리에 이리 진심인 것 보면

‘밸 수 없는 경상도 가시나’인 것 같기도 하고.


“와? 내가 쓴 거 일거 보이 어떳노?”






Picture by Dave weatherall i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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