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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진 Oct 23. 2021

코로나 안심병원은 허울뿐일까?

처음보는 체온계의 숫자 40.7


코로나19 국민안심병원은 호흡기 질환 환자의 병원 방문부터 입원까지, 진료 전과정에서 다른 환자와 분리하여 진료하는 병원을 말합니다. 보건복지부와 병원협회의 협력 하에 공동 관리 중인데요. 병원에 진입하기 전, 모든 내원 환자를 대상으로 호흡기 증상 여부를 확인하고 코로나19 대응 지침에 따라 환자를 3단계로 나눠 진료구역을 분리합니다.
이는 감염경로가 불분명한 코로나19 감염 사례가 점점 늘어나면서, 지역사회 감염에 대비하기 위해 의료기관 대응 시스템을 마련한 것입니다.


토요일,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외출을 한 다음날부터 남편은 몸이 으슬하다며 이불을 돌돌 감았다.

월요일에 코로나 검사 음성을 받고, 화요일에 독감 검사 음성을 받고 수액을 맞았다. 수요일에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수액을 맞고 하루를 더 버텼다.


 금요일.

남편은 새벽부터 지끈거리는 머리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다고 했다.

새벽 3시부터 꼬인   가닥을 푸는 꿈을 3시간 내리 꾸면서,  실을 풀면 두통이 사라질  같은데 

도통 풀어지질 않았다고 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헉헉대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을 끝내 놓고 오전 11시에 귀가한 남편은, 벌건 얼굴에 훅훅 소리를 내며 숨을 쉬었고 한걸음 옮길 때마다 '으아아' 하며 두통으로 오만상을 찌푸렸다.


남편이 오기 전에 미리 이곳저곳 병원을 알아보았지만 48시간이 지나지 않은 코로나 음성 결과지가 있어야 하고, 발열상태로는 어떤 병원도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다. 대학병원은 당일 접수가 될지  될지 와서 접수해봐야 알고,  좋게 접수에 성공해 진료를 보더라도 검사는 며칠 후에 다시 와야 한다고 했다. 속이 탔다.

코로나가 오기 전에도 ‘쯔쯔가무시처럼 발열을 일으키는 질병이 적진 않았을 터인데 코로나가 나타나면서

'발열'이라는 단어는 그야말로 기피대상이자  옛날 결핵처럼 핍박받는 형태가 되어버렸다. 60 초반이신 친정엄마가 쯔쯔가무시에 걸려 걷지도 못할 만큼 힘겨워하셨지만, 병원에서는 코로나 검사를 받고 오라며 하루를 꼬박 집에서 앓게 했다. 원인을   없는 열에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가족 모두가   이루던 밤이 지나간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때와 다르게 작은 빛이 비쳤다. 지역의 2차 의료기관인 00 병원에서 호흡기 질환이 있어도 의사 진찰을 받을 수 있는 '안심병원'이니 병원 앞 선별 진료소로 오라고 하셨다. 더구나 코로나 검사 결과 나오는 시간이 하루를 넘기지 않는다 했다. 서둘러 출발했다. 출발 전 집에서 잰 남편의 체온은 38도였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병원 안 한편에 세워진 선별 진료소의 코로나 검사 줄이 두줄이었다. 한 줄은 단순 검사, 한 줄은 진료 후 검사일 거라 여기며 안심했다.

하지만 두줄은 접수창구에서 접수를 하고 의사에게 들리는 줄 하나와 실제 코로나 검사를 위해 다시 선 줄일 뿐이었다.

주르륵 서 있는 줄에서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분이 남편의 열을 재고는 “처음 보는 숫자예요. 어떡해요” 하셨다. 접수증에 남편의 체온과 월요일에 한 코로나 검사 음성을 써주시는데 숫자가 40.7이었다. 40.7이라니. 세상에 40.7.

오후 9시에 음성이 나오면 응급실에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겨우 버티고 선 남편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한참을 기다려 의사 선생님이 계신 컨테이너로 들어가 남편의 발열 상태를 말씀드렸지만 열이 나면 병원에 못 들어간다는 대답만 들었을 뿐이다. 모니터를 보며 타닥타닥 타자 치는 소리에 어쩔 줄 몰라 서있던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은 코로나 검사 종이를 들고 컨테이너에서 나왔다.

나는 남편의 체온이 적힌 40.7이라는 숫자를 보며 남편의 머릿속 뇌가 조금씩 녹아내리며 비명을 지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만약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 고소를 하고 청와대 신문고에 글을 쓰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체온을 본 적 있느냐고. 이 체온을 보고도 집으로 돌려보내는 건 병원이 할 일을 방관하는 것 아니냐고. 이 자리에서 소리 지르며 깽판을 쳐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 이성안에 든 도덕성이라는 벽에 막혀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수납을 위해 줄을 서 있는데 간호사분이 코로나 검사 오전 접수가 끝났다며 내 뒤에 서있는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내 앞에 접수자가 마지막이라고 했다.

수납을 하고 아직도 검사 줄에 서있는 남편 옆에 섰는데 마지막 접수자가 의사 선생님이 계신 컨테이너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나는 컨테이너로 들어가야 했다. 어떤 말이라도 건네야 했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컨테이너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죄송한데 선생님, 9시에 음성이 나오면 응급실에 와서 진료받을 수 있는 건가요? “

“아 그럼, 받을 수 있죠. “

나는 “감사합니다”하고 나왔다.

다시 남편 옆에 섰다가 다시 몸을 돌려 컨테이너에 들어갔다.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였다.


“정말 죄송한데요 선생님”

“아 네 괜찮습니다.”

“남편이 열이 너무 높아서 그러는데 혹시 좀 센 진통제나 해열제를 처방해주실 수는 없나요?”

“아, 여기서는 처방을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답변에 눈물이 핑 고였다.

“그럼 타이레놀 두 알로 저녁까지 버텨야 하나요? 열이 너무 높은데…” 눈물이 차올랐다.


의사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시더니 월요일에 어디서 검사받았는지 물으셨고 남편의 이름을 다시 물으셨다.

그리고는 내선전화를 드셨다.

그 전화기를 든 손이, 전화기를 든 의사 선생님이, 그 순간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동아줄 같아 보였다.


“아, 나 누군데, 여기 열이 너무 높으신데 혹시 격리 병실 하나 비는 거 없나? 아… 여기 선별 진료소에 오신 분인데..”

선생님은 내가 말씀드린 남편의 상황을 말씀하시며 부탁하시는 것 같았다. 눈에서 눈물이 솟구쳤다. 어느새 걱정해주시던 간호사님도 들어오셔서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바쁘실 텐데, 저 방호복도 매우 힘드실 텐데, 안쓰럽게 여겨주시고 걱정해주시고 부탁해주시는 눈앞의 의료진에 눈앞이 희뿌얘졌다.


전화를 내려놓으신 의사 선생님은 간호사분에게 응급실로 데려가라며, 내게 따라가시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눈앞에 황금 동아줄이 그 실체를 드러내며 눈앞에서 빛났다.


남편이 응급실에 들어가 간단한 문답을 끝내고 격리병실로 들어가는 뒷모습과 열리는 병원문을 보고 있으니 하늘문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더 아프지 않게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이라는 곳이 그렇게 신성한 영역으로 느껴질 수가 없었다.


남편은 격리병실에서 여러 개의 수액을 맞고  가지 검사를   ‘폐렴이라는 진단명을 받았다. 눈앞에 나타난 ‘폐렴이라는  글자에 가족 모두가 안도했다. 우리나라 사망률 4위에 당당히 올라와있는 ‘폐렴 안도하는 내가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예방접종을 맞고도 사람이 죽는 이상한 시대이니..

남편은 저녁 9시까지 꼬박 9시간을 코로나 검사가 음성이 나올 때까지 응급실 격리병실에 감사히 갇혀있다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정부에서 만든 안심병원이 진정한 안심병원은 아니다.

내가 겪어보니 코로나를 포함하여 발열을 일으키는 질병으로 인한 위급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만든, 좋은 발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는 아직 첫걸음일 뿐이라 빈틈이 너무 많다. 

코로나 검사 줄을 단순 검사 줄과 진료  검사 줄로 나누는 것부터 필요해 보인다. 검사 줄에 서있던  무리의 사람들은 회사  확진자 발생으로 검사하기 위해 왔다고 밝혔지만 다른 이들을 상관 않고 거리두기도 하지 않으며 계속 웃고 떠들어댔다. 의료진이 대화와 전화통화 금지라며 자제시켰지만 잠시 뿐이었다.

그리고 선별 진료소에 있는 의사 선생님에게도 처방전을 받을  있었으면 한다. 일반 병원을 찾아가는 것이 꺼려져 선별 진료소에  이들을 위해 병원 내에서 처방전을 발부해주고 약까지 받을  있으면 다른 곳을 들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올  있을 텐데.


그래도, 코로나 검사만 하는 분들이 아니라 의사 선생님 한분이라도 밖에 나와계셔서 이런 조치가 가능했다는 것은 안심병원의 발상이 코로나 시대에 우리의 삶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 중요한 한 단계였다는 사실임이 틀림없다.

걸음마를 시작하고 넘어지지만 결국 걷게 되는 것처럼 응원하고 싶다. 너무 많은 비난은 주저앉히는 결과가 됨으로.


비난은 코로나에게맘껏 해야겠다.

코로나 이 나쁜시키야!

 너랑 같이 살기 싫어. 제발  지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쳐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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