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진진 Nov 06. 2021

별것 아닌 일에 뭘 그리 한숨이야?

내겐 별거거든


“전화를 하지.”


“전화를 하지 그랬어~ “의 어감이 아닙니다.

뒤의 ‘하지’가 날아가는 느낌입니다.

“하지 뭐했어?”,”했어도 됐잖아?”라는 어감이지요.


친구와 집 앞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습니다.

네, 집 앞이라 방심했습니다.

친구와 헤어져서 집까지 오는데 5분, 다시 학교까지 아이를 데리러 가는데 10분이면 충분했습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질 줄 몰랐던 거죠.

아침에 일기예보 확인 안했냐고요? 확인했습니다.

매일 아침 아이의 옷을 고르면서 확인하지요.

14시에서 15시 사이 한 시간만 비 모양을 보고서는

‘와봐야 얼마나 오겠어’라고 생각한 제 잘못이지요.


친구와 헤어지고 건물을 나오는데 비가 쏟아졌습니다.

다급히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친구 차로 집 주차장까지 왔지요. 15분이 걸려버렸습니다. 우산과 아이 학원 가방을 챙겨서 내려가는데 학교 알리미가 떴습니다. 그리고 아이 친구 번호로 전화가 왔지요.

“엄마 어딨어?”

“엄마 비가 와서 우산 가져가느라 늦었어. 거기 있어 금방 갈게.”

전화를 끊고 학교 앞까지 달려갈 때 걸린 시간은 3분쯤.

아이에게 긴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전 제 아이가 움직이지 않고 학교 앞에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지름길로 달려갔습니다. 제 믿음은 깨져버렸고 길은 엇갈렸습니다.

아이는 학교 앞에서 보이지 않았고, 아이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학교 앞 길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아이를 찾던 저는 점점 속이 발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5분쯤 후에 아이는 집 앞 횡단보도를 건너 서있다며 다른 친구의 전화로 전화를 했습니다.

소리가 꽥하고 나왔습니다.

“너 어디야! 엄마가 기다리라고 했는데 왜 움직여!”

아이는 학원에 늦을까 봐 걸어오면 빠를 것 같아 그랬다고 합니다.

이렇게 작은 유혹에도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아이였는데 그동안 굳게 믿었던 제 믿음이 와장창 박살이 났습니다.

이제 9살인 아이를 뭘 그리 믿었던 건지..


달려가서 보니 비를 잔뜩 맞고 서있는 아이는 절 보자 고개를 숙입니다. 고개를 숙이다니.. 지금껏 처음 보는 행동입니다. 자신이 잘못한 걸 알아서인지, 아니면 꽥하고 소리 지르는 엄마를 오랜만에 봐서인지.. 오늘 아침에만 해도 ‘브레이크 다운’하며 만화 캐릭터 흉내를 내며 웃겨주던 엄마였는데..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나오는데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는 하늘이 꺼져라 한숨을 내쉽니다. 얼싸안고 키우려고, 둥가 둥가 이쁘다, 함함하다 하며 매 순간 사랑으로 꽉꽉 채워주고 싶었는데

내 아이 마음에 생채기 내는 일을 이리 쉽게 하다니요.

화살을 다른 곳으로 돌려봅니다.


우산과 아이 가방을 챙기러 집에 들렀을 때 남편이 집에 있었습니다. 새벽 5시에 일하러 나가는 남편이 오늘 일을 일찍 끝내고 집에 와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순간 화가 났습니다. 집에 왔으면 왔다고 말이라도 해주지, 그럼 우산 가지고 내려와 달라고 부탁했을 텐데..


집으로 걸어오면서 생각했습니다.

화내지 말고 좋게 얘기해봐야지.

하필 그때 비가 내리고, 하필 오늘 핸드폰을 가져가지 않은 아이에, 하필 일찍 학원을 가야 하는 날이었는데.. 하나라도 빠졌으면 좋았을 텐데..

남편이 ‘하필 일찍 온 날’이어서 화를 토해낼 순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봅니다.

집에 들어와 남편에게 “언제 왔어?”라고 아무렇지 않게 물었습니다. 남편의 대답을 듣고서는 “그럼 왔다고 얘기해주지. “라고 했지요.

남편은 스프링 방패를 들고 제말을 튕겨냅니다.


“전화를 하지.”


남편의 말은 튕튕 튕겨서 제게 떨어집니다. 퉁퉁 소리를 내며 제 마음을 누릅니다. 한숨이 더 깊어집니다.

빽 소리를 지르고 싶습니다.

“내가 네가 언제 올지 알고 전화를 해!!! “

하지만 소파에 앉아 한숨만 쉽니다.

눈치가 보이는지 남편이 옆에 앉아 이것저것 말을 붙이지만 단답형의 “응” 조차도 소리반 공기반으로 섞여 나옵니다.


별것 아닌 일에 뭘 그리 한숨이냐고요.

이게 제 세상인걸요.

아이에게 진득이 달라붙은 관심과 애정을

이제 조금씩 떼어내야 할 때도 됐는데

10년 가까이 아이와 함께한, 온통 아이뿐인 세상에 살다 보니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이가 학원 수업이 끝났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집 쪽으로 걸어오라고 했습니다. 나가보니 저 멀리서 아이가 터덜터덜 걸어옵니다. 아이가 저를 보더니 달려와 안기네요. “엄마 미안해.”하는데 눈물이 핑 돕니다.

그제야 저도 못했던 말을 합니다.

“엄마도 미안해.”


저도, 아이가 달래줘야 입을 여는 못난 엄마입니다.

길 가운데서 한참이나 아이를 안고 있으니 마음이 사르르 녹습니다. 이제, 조곤조곤 잔소리 타임이 시작되겠지요. ㅎㅎㅎ


저도 압니다.  별 것 아닌 일상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작은 일상의 대화, 몸짓, 눈빛 하나하나가 모여 상황을 만들고 그 상황 속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이 아이를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도 압니다.

정작 엄마는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을 어린아이는 그때 느꼈던 감정으로 버무려져, 장면 장면을 꽤 세세하게 오래 기억하니까요. ‘엄마가 그때 그랬어’라는 서운한 감정이 각인되기 전에, 끊임없이 도닥이면서 안 좋은 감정을 휘발시키고 싶습니다.

아이의 기억에 오랜 생채기가 남지 않게요.


뭘 그리 수선이냐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이가 점퍼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처연하게 절 바라보는 순간에, 빗방울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은 아이의 점퍼와 가방이 계속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했다면 아이의 눈 속의 눈물방울도, 아이 옷에 빗방울도 맺히지 않았을 텐데. 화살촉이 휘어져 항상 제게로 향합니다.


에이! 너무 별거 아니야!

하고 쓴 글을 지우려다 문장마다 배인 저의 감정의 흔적이 아까워 그냥 둡니다.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안심병원은 허울뿐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