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장애가 알려준 교훈
가족 중 나를 제외한 다른 세 명은 아침잠을 잘 이기지 못한다. 남편의 평균 취침 시간은 새벽 2시이다. 나는 아침에 쌩쌩한 반면 남편은 밤이 되어야만 일의 능률이 오르는 사람이다. 결혼 초에 나는 남편의 생활 습관을 바꿔보려 부단히 노력했었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얕은 ‘카더라‘ 지식은 남편의 올빼미형 생활 패턴이 건강의 문제로 금방이라도 빨간불이 켜질 것처럼 내 노파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출처가 불분명한 짧은 지식으로 머리 굵은 남편을 설득한다는 것은 애초에 무모한 시도였고 고집스럽게 고정되어 버린 남편의 생활 패턴은 나의 잦은 감정적 호소에도 지난 20년 동안 한 번도 꺾이지 않았다. 타인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내가 유독 남편에게만 가혹한 것을 보면 남편이라는 존재는 나의 자기 인식 카테고리에서 타인이 아니라 ’나’로 인식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너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나‘로 만들어버리겠다는 소유욕, 억압된 죄성이 결혼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노출되자 봉인해제 되어 상대를 옥죄며 번번이 싸움을 걸었다. 그러나, 둘 중 누구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팽팽하게 맞서 각자의 시간대를 고수해 온 지독스러운 완강함이 화음이를 키우면서 오히려 긍정적인 돌파구가 되기도 했다.
화음이의 일정하지 않은 시간대는 패턴화 되지 않고 들쭉날쭉했다. 그래도 학교를 다니면서부터는 루틴이란 것이 생겨 낮시간동안에는 예측 가능한 시간대를 만들어갔다. 문제는 수면장애가 활동하는 밤 시간대였다. 나는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잠을 자야 하는 일반적인 성인 여성의 패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화음이의 예측불가한 밤 활동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수면 시간을 보장받기 위해 이런저런 갖은 수를 써 보았지만 무릎을 탁 칠만큼 딱 맞아 떨어지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몇 년 동안 이어진 밤의 전쟁은 온 가족을 체력적,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들었다.
2020년, 전 세계를 패닉에 빠트렸던 코비드가 우리 가족을 예외 없이 집안으로 가두었을 때, 재택근무로 전환된 남편의 직장 환경은 우리 가족이 화음이의 수면 장애를 다른 방식으로 다룰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아침에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의 유연성은, 남편의 수면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다. 새벽에 자다 깬 화음이의 밤 활동을 남편이 맡아주면서 나의 밤이, ‘진짜’ 밤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매끄러운 바통 터치는 불안정한 화음이의 시간대를, 우리의 안정적인 패턴 속으로 편입시켰다. 그런 밤이 몇 년간 이어지고 사춘기에 접어든 화음이의 호르몬 변화가 시작되면서 화음이의 밤은, 활동에서 수면으로 서서히 전환되어 갔다. 이제는 새벽에 깨어도 더 이상 활동하지 않고 아빠와 함께 다시 잠드는 생활 습관이 자리 잡았다. 수면 장애를 다루는 데 12년이라는 시간이 들었다. 화음이의 발달전문 의사는 화음이의 수면시간이 이토록 늘어난 데에 감탄하면서도 언제든 다시 불안정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음을 경고했다. 혹 그렇더라도 우리는 지금 누리고 있는 나름의 ‘안정’이 너무 귀하고 감사하다. 밤을 오롯이 밤으로 누리는 것, 그것이 얼마나 달콤하고 근사한 선물인지 밤을 잃어보지 않은 자는 절대 알 수 없는 기쁨이다.
1996년에 발표된 Kona의 노래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의 가사는, 연인을 향한 사랑 고백이지만 수면장애로 고통하는 모든 이들의 바람으로도 읽힌다.
내게 약속해 줘
오늘 이 밤
나를 지켜줄 수 있다고
... 내겐 너무 아름다운 너의 밤을 지켜주겠어
언젠가 이 세상의 모든 아침을
나와 함께 해 줘
겨울 방학을 지내고 있는 아이들이 원 없이 아침잠에 빠져있다. 내가 정해 놓은 나의 시간대에 가족 모두를 욱여넣으려던 집착과 광기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내가 아닌, 다른 인격들과 부딪히며 깎이고 부서져 둥글게 무뎌졌다. 서로의 다름은 정복해야 할 개척지가 아니라, 상호 보완으로 서로를 넓혀 가는 확장이다. 기어코 너를 굴복시키겠다고 달려들었던 내가 화음(Harmony)이의 수면장애를 다루며 남편과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일상 속에서 만나는 작은 기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