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세 살,

잊고 있던 너의 신비에 대해

by 채플힐달봉

교회 예배를 드리고 화장실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유아부 꼬마 한 명이 오종종 걸어 들어와 내 옆에 있는 또 다른 세면대 발 받침대 위에 올라섰다. 평소 안면이 있던 아이였기 때문에 나는 괜히 아는 체를 하고 싶어 져서 손을 씻으러 온 거냐고 물었다. 어린아이와 대화를 할 때에는 왜인지 목소리가 다소 가늘어지고 앵앵 소리를 내게 된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동으로 그런 소리가 나온다. 나의 목소리는 평균 여성들의 톤보다 낮고 건조한 편인데 아이들을 만날 때면 한껏 고조되고 과장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너를 어느 때고 환영하며 내 곁은 그 어떤 곳보다 안전하다는 신호를 목소리를 통해 아이에게 전달하고자 함이다. 내가 너의 곁에 있는 이 순간만큼은 기꺼이 너의 보호자가 되겠다,라는 어른으로서의 당연한 의무를 본능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발 받침대에 응차 올라 선 아이가 제 스스로 수도꼭지를 열어 손을 씻기 시작했다. 내 손바닥의 반도 되지 않는 작고 말랑한 손을 꼼꼼하게 비벼 씻어내는 솜씨가 아주 야무졌다. 그러다 아이가 흘깃 내가 손 씻는 모습을 건너다 보고는 한 마디를 했다.

“그렇게 씻는 거 아니야. 이렇게, 이렇게 해야 돼.”

불분명하고 혀 짧은 목소리가 건넨 따끔한 조언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나는 작은 숙녀에게 손 씻는 노하우를 자세히 알려달라 요청했다. 손가락 사이사이, 손 끝의 손톱까지 문지르는 모습이 손 씻기 전문가로 손색이 없었다.

“그런 손 씻기 기술은 누가 알려 줬어?”

“할부지가 알려줬어.”

나는 그녀의 할부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인자한 미소가 자연히 떠올랐다. 아이와 함께 세면대에 서서 손을 씻으며 허허 웃어 보였을 그를 상상하자 꼬마 숙녀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손을 씻는 내내 아이는 쉬지 않고 종알종알 떠들었는데 나는 대부분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연신 ’ 그래? 정말이야? 그랬어?’ 같은 추임새를 넣으며 말을 더 하라고 부추겼다. 페이퍼 타올로 손에 묻는 물기를 닦아주면서 나는 그 작은 손을 여러 번 토닥여 주었다. 아이와 대면할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만감을 느끼곤 하는데 그것은 고결한 순수에 대한 경이 때문일 것이다. 화장실 세면대에서의 짧은 조우만으로도 나에게 묻은 세상의 때가 모두 씻겨간 듯한 청결함을 느꼈다. 아이와 헤어지면서 유아부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는, 안 해도 될 잔소리를 습관적으로 뱉어내면서 돌아서는데 아이가 나를 불러 세웠다. 작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도도도 달려오더니 나를 와락, 안아주었다. 예기치 못한 꼬마 숙녀의 사랑스러운 포옹에 나는 무지갯빛 황홀감을 느꼈다. 아이가 뿜어내는 아름다움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교회 꼬마와의 짧은 에피소드를 온갖 수식어를 동원해 한껏 연장시키면서 떠들어대다가 불현듯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극단적인 감정의 기복은 화음이를 키우면서 수도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교회 꼬마의 사랑스러움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동시에 치열하고도 애달팠던 세 살의 화음이를 떠올리게 했다. 갑작스럽게 터져버린 나의 울음에 당황할 법도 한데, 남편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그는 내가 느꼈을 상대적 박탈감이 어떤 것인지 말하지 않아도 전심으로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발달 장애를 가진 아이는 그 말이 암시하고 있듯이 일반적인 발달 이정표를 따라가지 못한다. 아이마다 발달 속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 발달할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다. 세 살의 화음이는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걷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엔젤만신드롬 아이들의 성장은 아이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내 아이가 걸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평생을 걷지 못하고 누워서만 지내는 아이도 있었다. 화음이는 척추를 보조하는 전신 고무슈트를 입고 밤에는 오른쪽 발의 기형을 교정하는 보조기를 착용해야 했다. 치료사는 어느 날 걷기 보조기구(Walker)를 집으로 가져왔다. 아이는 바퀴가 달린 금빛 보조기구에 호기심을 보였고 어느 날 그것을 붙들고 일어섰다. 차츰 아이의 코어에 힘이 붙고 스르르 움직이는 보조기구를 따라 바닥에서 발을 하나 둘 떼기 시작했다. 우리는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걷는 연습을 이어갔다. 아이가 휘청일 때면 심장이 아찔하게 퉁 떨어지곤 했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났을 때, 화음이가 드디어 비틀비틀 식탁을 잡고 일어나 나를 향해 두 세 걸음을 걸어왔다. 그날의 환호는 내가 생을 사는 동안 겪어온 그 어떤 감격보다 컸다. 첫걸음마였다. 9월이 되어 학교에 첫 등교를 하던 날, 화음이는 내 손을 잡고 휘청휘청 느리고 어색하지만 제 발로 당당히 걸어 교실로 들어갔다. 나는 그날, 아이를 교실에 데려다주고는 차 안에서 엉엉 울었다.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한꺼번에 나를 휘감아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수많은 감정들의 목록에서 가장 선명했던 것은 단연 ‘감사’였다.


세 살의 화음이는, 화장실에서 만난 세 살의 꼬마 숙녀 못지않게 분명 모든 경이를 품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 쉽게 지나칠 수 있을 여느 아이들의 그것보다 더 놀랍고 찬란한 신비로 그날의 나를 채워 주었다. 잠시 잊고 있었다. 내 안의 어두움은 종종 기억을 왜곡시켜 내가 누리지 못한 박탈에 대해서만 속삭인다. 나를 무너뜨리려 호시탐탐 나의 감정을 파고든다. 그럴 때마다 내가 경계하고 떠올릴 것은, 화음이가 나에게 주었던 매일의 경탄과 감사이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욕심보다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가 내 중심에서 더 크게 빛나기를! 세 살의 화음이가 가득 담긴 사진첩을 들춰보면서 그날에 내가 누렸던 수많은 축복들을 되새겨본다. 세 살의 너 그리고 지금의 너는, 여전히 눈부시다.


세 살의 화음이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