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소망으로 바꾸시는,
아이가 나보다 먼저 죽는 꿈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몇 년 동안 계속되었다. 같은 꿈일 때도 있었고 다른 장소 다른 방식일 때도 있었다. 나의 불면은 아이의 수면장애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의 꿈이 어지럽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꿈속에서 모순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슬픔은 당연했지만 안도는 죄책감을 주었다. 신앙을 가진 자가 불안을 안고 산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꺼내놓기 힘든 비밀이 된다. 나는 그런 꿈이 반복될수록 하나님 앞에서 목놓아 울었다. 달리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의 기도는 날이 갈수록 적나라하고 솔직해졌다. 나는 더 이상 꾸며진 말이 아니라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드러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잘 보일 필요도 없었고 감춘다고 감추어지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나의 기도는 점점 더 뻔뻔하고 대범해졌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다 쏟아내고 나면, 지난밤 꿈의 잔상들이 눈물에 희석되어 낮 시간을 그럭저럭 살아낼 수 있었다.
화음이의 수면장애는, 3시간 이상을 이어 자지 못하고 깨어 한밤에 2시간쯤 활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시간을 더 놀고 나서야 다시 잠들 수 있었는데 그 마저도 3시간을 넘지 않았다. 나는 밤 사이 발생할지 모르는 아이의 뇌전증에 대비해 아이 옆에서 함께 자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가 깰 때마다 화들짝 놀라 함께 깨곤 했다. 수면 부족은 체력 저하, 기억력 감퇴, 우울증을 비롯한 수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나의 비정상적인 꿈의 원인은 어쩌면 부족한 수면 때문일지도 모른다.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정신이 늘 깨어있었으니 뇌가 제 기능을 수행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의 고통이 이러할진대 아이의 고통은 오죽할까, 나는 소아발달전문의를 만나 아이의 수면 부족에 대한 걱정들을 주욱 늘어놓았다. 그녀는 나의 말에 음, 음-추임새를 몇 번 넣더니, ‘엔젤만 신드롬 아이들의 뇌는 3시간 이상의 수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이는 이미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있으니 부모의 수면 시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만 고민하면 된다고 했다. 3시간만 자고서도 모든 활동이 가능한 능력이라니! 그 능력,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가히 초능력이 아닌가!
화음이의 수면장애는 이어 자지 못하는 것 외에, 잠들지 못하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하품을 하고 꾸벅꾸벅 졸면서도 완전히 잠들기까지 평균 2시간이 소요됐다. 암막커튼을 치고 모든 불을 다 끄고난 뒤에도 깜깜한 방 안에서 이리저리 퍼덕거리느라 쉬 잠들지 못했다. 나중에는 잠들지 못하는 자신의 상태에 스스로도 짜증이 났는지 옆에 누운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휘두르는 아이의 팔다리는 잠들기 직전의 마지막 의식(儀式)과도 같았다. 제 의지라기보다는 불안정한 신경의 발악처럼 보였다. 멜라토닌이 아이의 신경을 자극해 기형적인 전기신호를 손발의 끝으로 여과 없이 송출하는 것이다.
나는 어둠 속에서 난데없이 날아드는 아이의 주먹질에 속수무책 당하면서 때로는 참지 못하고 우악스럽게 꽥하고 소리를 질렀다. 내 소리에 놀라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나도 아이를 따라 포효하며 울었다. 한밤의 곡소리는 매일 밤의 통과의례였다.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고 흐느낌마저 잠 속으로 빠져들면,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나는 또 한 번 울었다.
‘하나님, 나 이제 더 이상 못하겠어요. 하나님은 어쩌자고 저에게 이 아이를 맡기셨나요. 나는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이제 못하겠어요.‘ 그렇게 까무룩 잠이 들었던 어느 밤, 한 꿈을 꾸었다.
발 끝조차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 모두가 잠든 한 밤에 나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바람이 차게 불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온통 새카만 숲 속을 하염없이 걸어 들어갔다. 허옇게 드러난 나무뿌리에 자꾸만 발이 걸리고 마른 낙엽들이 부석부석 부서졌다. 어쩐 일인지 내 어깨에는 화음이가 얹어져 있었다. 업은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짐처럼 얹어져 있었다. 걸을수록 어깨에 맨 화음이가 점점 무거워졌다.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었던 것일까...
숨이 가빠 잠시 멈추었을 때,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가 돌연 나를 스쳐 휙 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온몸의 털이 오싹하게 곤두섰다. 나를 스쳐간 것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 뿔이 달린 건장한 사슴 한 마리가 저도 놀라 우뚝 멈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숲의 한가운데서 마주친 뜨거운 생명체는 공포스럽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했다.
그렇게 넋이 나간 채로 그 사슴을 바라보고 서 있는데 홀연 그 사슴 주변으로 수 백 마리의 사슴 떼가 모여들었다.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모여든 사슴들의 뿔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새카맣게 어둡던 주변이 순간 환해지면서 몽환적이고 아득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하고 황홀한 기분으로 멀뚱하게 서 있는데, 사슴뿔에서 나온 빛보다 더 밝은 빛이 저 멀리서부터 나를 향해 뻗어 오기 시작했다. 감히 눈을 뜨고 바라볼 수도 없는 시리고도 아름다운 빛이었다. 어쩌면 이곳이 천국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한 순간, 어깨에 지고 있던 화음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어깨를 짓누르던 멍에가 벗어지고 청량한 공기가 내 주위를 휘감았다. 아이가 없어졌는데도 놀라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그때 저 멀리 밝은 그 빛을 뚫고 누군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에게 다가올수록 그 실루엣이 첫째 딸아이를 닮아있어서 '선율이인가.'하고 생각했다.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예쁜 소녀, 그 아이는 다름 아닌 화음이었다. 내가 상상하던 모습 그 이상으로 아름답고 온전한 모습의 화음이가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엄마!" 활짝 웃으며 달려와 눈물로 범벅된 나를 힘껏 끌어안아 주었다.
주일 아침이었다. 화음이는 여전히 잠들어 있었고 꿈속에서 한껏 울다 깬 나는, 깨어난 후에도 먹먹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잠든 화음이의 손을 잡고 또 한 번 울었다. 아이가 죽는 꿈을 반복적으로 꾸며 죽음의 굴레를 벗지 못하던 나에게 하나님은 천국을 꿈꾸게 하셨다. 불완전하고 모순적인 이 땅에서의 삶에 발목이 잡혀 땅만 바라보며 울부짖던 나에게 하늘에서의 완전한 삶, 고통 없이 온전한 삶을 바라보라 말씀하셨다. 그곳에서 만나게 될 화음이를 기대하라고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나는 그날 이후,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죽음의 늪에서 해방되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날 꿈속에서 만났던 화음이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아이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눈부시게 아름답던 온전한 화음이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죽음의 공포가 천국의 소망으로 바뀐 것이다.
언젠가 천국에서 만나게 될 너를, 나는 오늘도 너의 반짝이는 눈 속에서 발견한다.
천국은 이미 내 옆에, 바로 지금 이곳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