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꿈(2)

꿈의 확장

by 채플힐달봉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 집에서도 소소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는데 그것은 뒷마당 잔디를 일부 걷어내고 바닥 벽돌을 까는 것이었다. 벽돌을 깔아 판판하게 만들면 여름에는 대야에 물을 받아 마음껏 물놀이를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때때로 불을 피워 고구마를 구워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코비드의 고립이 집안에 사람을 가두는 괴로움을 안겼다면 우리는, 그 집을 개조하고 확장함으로써 탈출을 감행하리라. 울타리가 있는 뒷마당은 타인과의 접촉이 없는 안전한 바깥이었으므로 우리는 그곳에 아지트를 만들어 자연이 선사하는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기로 작정했다. 우리는 여름 해가 우리의 전투력을 꺾어버리기 전에 공사에 착수했다. 5월 한 달 동안 우리의 비전문적 공사는 가족 모두의 즐거운 놀이가 되었고 아이들에게 코비드의 두려움을 몰아내는 충분한 활동을 제공했다. 그것은 땀과 웃음이 만들어낸 작은 성취였다.


완성된 벽돌 바닥은 기껏해야 가로 세로 3m에 불과한 소박한 자리였지만, 자기 방을 갖게 된 아이가 벅찬 감격으로 몇 날 며칠을 방안에 들어앉아 제 공간을 만끽하는 것처럼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뒷 문을 열고 나가 캠핑용 의자를 펼쳤다. 남편이 자투리 나무로 만든 작은 나무 테이블 위에 커피를 올려두고 음악을 틀면 어느 분위기 좋은 카페의 테라스 못지않았다. 나는 여름 내내 그 자리에 앉아 몇 시간이고 물놀이에 심취한 화음이를 지켜보았다. 화음이의 물에 대한 집중력은 대단한 것이었으므로 나는 옆에서 아이의 놀이에 간혹 추임새를 넣거나 물놀이 장난감을 교체해 주는 정도의 역할만 하면 되었다. 집 안에서 아이와 이런저런 이유로 갈등하며 스트레스를 겪던 코비드 초기와 달리 바깥으로 뻗은 고작 2평짜리 벽돌 바닥 위에서 우리는 평화를 찾았고 여름 볕 아래에서 건강하게 그을려 겨울이 되었을 때에는 여름 볕이 남긴 따뜻한 기운을 기억에서 끌어내어 몸을 데울 수 있었다.


나는, 벽돌 바닥 위에 대야를 놓고 첨벙거리는 화음이를 바라보다가 문득, 아이를 위해 더 많은 ‘공간’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뛰어놀 놀이터, 물감을 사방에 뿌리고 종이를 마구 찢어도 괜찮을 작업실, 이리저리 만져보고 가끔 입에 갖다 대어도 혼나지 않을 안전한 가재도구들... 아이에게 필요한 공간들을 상상하다 보니 생각은 끝도 없이 꼬리를 잡고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훗날, 어찌어찌 기회가 되어 새로운 집을 설계하게 된다면 이 여름에 내가 상상했던 그 모든 공간들을 현실화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생각이 흩어져버리기 전에 남편을 불러 두서없는 공상들을 한껏 펼쳐내었다. 우리는 어느덧 생각의 한 자락을 붙들어 살을 붙이고 옷을 입혀 형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연습장에 그려 넣은 설계도는 처음에는 그저 캠핑의자에 앉아 끄적거리는 공동의 놀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 커피를 홀짝거리던 남편이 불현듯,

“작은 카페가 하나 있어도 좋을 것 같아. 장애아이들이 서빙하는, 비영리 카페 같은 거 있잖아. 너가 베이킹 좋아하니까 디저트도 몇 가지 놓고.”

그 말을 시작으로, 단순히 ‘집‘에 불과했던 설계도가 덩치를 불리며 확장되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장애아이들이 방과 후에도 방문할 수 있는 비영리 센터가 되면 좋겠다. 아이들은 필요한 테라피나 미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그러는 동안 엄마들은 요가 수업이나 북클럽에 참여할 수 있는 문화센터라면 더 좋지 않을까. 다 자란 아이들은 작은 카페에서 서빙을 하며 지역 주민들과 어울릴 수 있다면!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이미 실현된 것만 같은 벅찬 감격을 느꼈다.


SC Charleston 에 있는 비영리 카페 bitty and Beau’s

실제로 미국에는 장애인들이 일하는 비영리 카페가 지역 안에 두세 개쯤 있다. 우리는 여행을 다닐 때에 일부러 그런 카페들을 찾아가기도 한다. 미국인들의 인식에는 장애인에 대한 거부가 없고 기부가 일상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카페에도 늘 사람이 넘쳐난다. 그런 카페는 종종 커피 맛이 보장되지 않고 서비스도 기대할 것이 없으며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들, 일테면 강박증을 가진 직원이 오래 앉아 있는 손님 테이블 밑에 계속 빗자루를 가져다 대는 등의 방해가 계속되기도 하지만 손님들은 그 쯤의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으며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그러기로 작정한 사람들인 것처럼 되레 직원들을 향한 조심스러움과 다정함을 장착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 뉴스에서 시청에 입주한 장애인 카페를 프랜차이즈 카페로 대체시켰다는 소식이 들려와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인터뷰에 응한 시설 담당자는 ‘시청 직원들의 편의와 수요를 반영한 결정‘이라면서 장애인 고용 창출이라는 공익적 가치를 훼손했다는 항간의 비판을 일축했다. 왜 우리는, 나의 권리를 ‘공존‘을 위해 희생시키지 못하는가. 맛있는 커피와 그에 합당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권리에 대해 함부로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


Chapel Hill 도서관에 들어온 B3 카페

내가 사는 채플힐 공공도서관 입구에 어느 날 간이건조물 하나가 세워졌는데 이게 뭔가 싶어 며칠 동안 기웃거렸다. 그것은 곧 커피숍이 되었고 운영 시간이 적힌 팻말이 하나 붙었다. “목, 금, 토요일 10:00~16:00”, 장애인 중심으로 운영되는 지역 카페가 공공도서관에 출장 서비스를 제공하자 지역 주민들이 환호했다. 커피가 없는 월요일에서 수요일 사이를 아쉬워하기도 했다. 몇 해 전, 랄리(내가 사는 채플힐에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한 한인교회에서 교회 공간 한 켠에 성인이 된 장애아이들이 일할 수 있는 작은 카페를 열었다. 그 카페는 주일에 한정된 시간에만 교회 성도들을 위해 운영되고 있지만 장애자녀를 가진 부모들에게는 꿈의 공간이었다. 3명의 장애아이가 서빙을 하려면 그들을 돕는 자원봉사자 9명이 필요하다. 이 모든 일을 추진하고 관리하는 집사님께서는 향후 장애아이들을 위한 비영리 카페를 운영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날을 위해 그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일반 카페에 취직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계신다. 그 분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우리 부부가 가진 비영리 센터에 대한 꿈을 공유하자 우리의 꿈이 그분의 꿈과 만나 한층 단단해지고 선명해졌다. 우리는 여전히 가진 것이 없고 당장 보이는 청사진이 없지만 그럼에도 이런 꿈을 꾸게 된 것이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꿈을 심어두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우리의 작은 소망과 수많은 곡절 속에서도 그분의 뜻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그것이 내가 아니어도 말이다. 내가 할 일은 그저 매일의 사소한 순종일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바를 실천하는 것, 그 외의 것들은 내 능력 바깥에 있으니 섣불리 관여하지 말도록 하자.


나는 집 뒷마당에 벽돌 바닥을 깔았던 이듬해에, 커뮤니티 칼리지에 ’Occupational therapist assistant’ 과정으로 입학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