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바람 없는 하늘로부터 직선으로 낙하하며 시원스레 뒷마당을 적시고 있다. 예보를 보니 오늘은 종일 비가 내릴 예정이다. 북동부는 눈폭풍으로 고립된 지역이 많다고 하는데 그 지역을 강타한 눈구름이 감사하게도 이곳까지 그 세(勢)를 뻗어오지는 않았다. 다만 전에 없던 차가운 기운과 비를 몰고 왔을 뿐이다. 비 내리는 날에는 대체로 우울하다. 지난주부터 하루도 빼지 않고 촘촘하게 시간을 채워왔던 터라 저질 체력에 빨간 불이 들어올 때가 되었는데 하필 비까지 내릴 예정이어서, 나는 어젯밤에 잠들기 전 나지막이, 흐린 하늘을 보더라도 마음만큼은 화창하게 시작하리라 다짐했었다. 그 다짐의 효과인지 비 내리는 우중충한 배경에서도 내 마음이 전처럼 내려앉지는 않았다. 내리는 비에 흠뻑 젖은 뒷마당의 바닥을 내다보면서 나는 문득, 저 바닥 벽돌을 깔았던 2020년 초여름이 떠올랐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2020년은 코비드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사람들을 집 안으로 가두었던 때였다. 고립은, 누구 한 사람도 제외시키지 않고 공평하게 괴로움을 분배했다. 괴로움의 크기야 사람의 성향과 환경 조건에 따라 크고 작고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나에게는 -다소 가학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인류 전체가 같은 괴로움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장애자녀를 키우는 특별한 소수로서의 삶은 동정을 부르기는 쉬우나 이해받기는 몹시 어렵다. 그러므로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고통을 공유하려들기 보다는 홀로 감내하고 있으며 말로 풀어내는 괴로움은 되레 더 큰 공허를 남기므로 차라리 혼자 앓는 쪽을 택한다. 나는 많은 장애자녀의 부모들이 입을 닫고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동시에, 그것이 비록 동정에서 시작된 마음이어도 선뜻 먼저 다가와 이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 애쓰는 사람들의 수고도 보았다. 나는 전자의 사람들이 끝도 없이 파고드는 깊은 자기 연민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가 겪는 괴로움의 크기가 훨씬 더 감당할만한 것이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고통을 없앨 수는 없으나 고통 중에도 소망을 품는 일체의 비밀을 그가 알게 된다면 후자의 사람들에게 더 큰 이해의 동기를 제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혹 하나님의 계획 속에 내가 그 둘의 중재자가 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면, 내 마음의 그릇이 아직은 비록 간장 종지만큼 작을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으로도 그의 뜻을 펼쳐 보이시리라 믿는다. 나는 그저 어렴풋이 작은 소망을 품어볼 뿐이다.
그 소망은, 2020년의 고립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종일 집안에서 아이를 돌보며 무료(無聊)하고 괴로운 시간들이 하염없이 이어지던 그때에, 친구 중 한 명이 온라인으로 무료(無料) 요가 수업을 개설했다. 그 친구는 대학시절 한국무용을 전공했고 이후 필라테스와 요가 강사 자격증을 취득한 베테랑 강사였다. 그녀가, 자신은 어차피 매일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운동할 때 컴퓨터 전원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니 혹시 함께 운동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온라인으로 요가 수업을 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에 삼삼오오 모여든 온라인 멤버들이 일주일에 세 번씩 아침마다 각자의 집에서 요가 매트를 폈다. 뻣뻣한 나의 몸은 그녀의 아름다운 동작을 따라가기 버거웠지만 그럼에도 한껏 뽑아낸 몸의 에너지와 그날의 땀은 하루를 견디는 데 큰 동력이 되었다. 나는 화음이의 방해를 요리조리 피해 가면서 꾸준히 수업에 참석했고 코비드의 우울한 고립 속에서도 생기를 찾아갈 수 있었다. 몸의 근육들이 하나 둘 단단해져 갈 무렵 나는 문득, 장애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 아니라 생기를 찾는 활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만난 많은 부모들이 주변인들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한숨을 쉬면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오후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오전에 무조건 쉬어야 해요. 다른 활동에 에너지를 쏟을 여력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단호한 그들의 태도는 주변인들이 애써 꺼낸 조심스러운 조언들을 하나 둘 그치게 만들었고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외딴 성을 쌓아 결국에는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그들의 푸념과 전략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직접 겪어보니 멍 때리는 휴식보다 땀을 빼는 활동-그것이 무엇이든-이 오후의 전쟁에 더 많은 승리를 안겨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때, 하나의 아이디어가 불현듯 떠올랐는데 그것은 장애자녀의 부모들이 이런저런 활동을 할 수 있는 비영리 문화 센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 터무니없고 뜬금없는 나의 아이디어를 요가 강사인 그 친구에게 전달했을 때 그 친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만약, 그런 문화 센터가 있다면 내가 기꺼이 그들의 요가 수업을 맡을게.”
우리는 언제일지 모를 그날을 상상하면서 서로를 보고 웃었다. 내 마음이 몽글몽글한 새 소망으로 벅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