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세상을 향한 걸음

by 채플힐달봉

조그맣고 보드라운 아이의 손을 잡고 느리게 걸으며 아이가 보는 세상을 함께 관찰하는 것이, 엄마로서 내가 누리는 낭만이었다. 큰 아이가 서너 살이던 무렵, 우리는 자주 밖을 돌아다녔고 나는 그 작은 손을 조물거리면서 아이가 종알거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나는 그 낭만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나 빨리 잃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큰 아이의 손이 아직 채 여물지 않았던 만 4세에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둘째와의 휘몰아치는 시간들은 아이와 손을 잡고 걷는 오붓하고 몽환적인 낭만을 예고도 없이 단숨에 앗아갔다. 나는 큰 아이의 다섯 살 손을 잡은 기억이 없다. 기억을 헤집어 억지로 끌어내자면 간간이 그 손을 잡기도 했을 테지만 나의 정신은 온통 둘째 아이의 장애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다섯 살 아이의 보폭에 맞춰 느리게 걷던 나의 모습은 끝끝내 떠오르지 않는다.


둘째를 가졌을 때, 나는 큰 아이와 누리던 낭만의 바통을 작은 아이가 이어받게 될 줄 알았다. 운이 좋다면 한 손에 한 명씩 양손 모두를 아이들에게 내어주고 함께 폴짝폴짝 거리를 뛰어다닐 수도 있을 터였다. 애석하게도 그런 날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았고 나는 다섯 살 아이의 손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서글픈 엄마가 되어 버렸다. 일곱 살이 된 첫째 아이가 열 감기를 앓아 학교에 가지 못했던 어느 날, 잠시 열이 떨어져 겨우 몸을 일으킨 아이가 나에게 함께 산책을 하자고 제안했다. 며칠 동안 집에 갇혀 해를 보지 못했으니 따뜻한 햇빛을 맞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함께 집을 나섰다. 둘째는 학교에 가고 없었기 때문에 오롯이 큰 아이에게 나의 시간을 내어줄 수 있었다. 숲을 향해 걸어가면서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나는 매일 오늘처럼 아팠으면 좋겠어. 그럼 엄마랑 이렇게 단 둘이 시간도 보낼 수 있고.”


몇 날 며칠을 심하게 앓고 고생했으면서도 제 몸이 아픈 것보다 엄마를 온전히 누릴 수 있게 된 데 더 큰 가치를 두는 아이의 천진한 바람이 어찌나 측은했던지, 나의 팔을 감싸 안고 희미하게 웃어 보이는 핼쑥한 그 모습이 내 마음에 슬프게 각인되었다.

첫째 딸과 나, 전주에서

둘째가 태어난 후, 우리의 외출은 지난날들의 풍경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감탄과 환희로 가득했던 세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긴장과 방어와 해명의 시간들로 채워졌다. 설렘으로 나서던 길이, 이제는 깊은 심호흡을 필요로 했고 전에 없던 용기를 가져야 했다. 아이의 몸이 자랄수록 외출은 점점 더 줄어갔다. 간혹 외출을 감행할 때에도 사람이 없을 시간을 가늠해 움직였고 자극이 적은 장소들을 찾아 헤매었다. 그럼에도 변수는 언제나 존재했으므로 예기치 않은 갈등은 수시로 찾아왔다. 나는 종종 뉴스 영상에 달린 댓글을 통해 ’저런 아이를 왜 자꾸 바깥으로 데리고 나오느냐, 다른 사람 피해 주지 말고 집에 가두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다. 그 말은 나의 뇌리 속에 은밀히 자리를 잡고 앉아 기회만 생기면 앙칼진 목소리로 나를 비난했다. 나는 자꾸만 움츠러들었고 영문도 모른 채 집에 갇힌 아이는 발을 굴러대며 항의했다.


첫째를 키울 때에는 어떻게든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내가 둘째에게는 어떻게든 그 세상을 축소시키려 하고 있었다. 감옥 같은 집 안에 찬란한 세상을 억지로 욱여넣고 ‘이게 전부야’라고 아이를 속이려 들었다. 그럼에도 거짓에는 한계가 있어서 은혜로 내리는 매일의 햇빛까지 막아낼 수는 없었다. 아이는 자주 창문에 붙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고 햇빛을, 흔들리는 잎사귀를 보며 뜻 모를 감탄사를 뱉어냈다. 내가 도대체 무슨 권리로 아이의 세상을 박탈하고 있는가. 내가 조금 힘이 든다는 이유로, 내 낯이 조금 부끄러워진다는 이유로, 실재하지 않는 비난을 핑계로 내가 감히 아이의 세상을 왜곡시킬 자격이 있다는 말인가? 내가 정말 아이를 위한 조력자라면, 나의 선택은 아이의 세상을 넓히는 것이어야 한다. 설령 아이의 장애가 세상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이의 최선에서 세상을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 내가 더 늙기 전에, 아이가 다 자라기 전에 아이가 세상을 배워가도록, 세상이 내 아이를 흡수하도록 나는 세상과 아이 사이의 노련한 중매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 아이와 나는 손을 잡고 나란히 걷지 못한다. 아이는 나의 손을 뿌리치고 저만치 달아나 나로부터 자꾸만 멀어지고 싶어 한다. 아마도 엄마의 조바심이 자기의 호기심을 번번이 제어하려 들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를 쫓아가 실랑이를 벌이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길바닥에 드러누워 진상을 부리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과해야 했고 자주 얼굴이 붉어졌으며 겨우 집으로 돌아오면 주저앉아 엉엉 우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용기 내어 길을 나서야 했다. 비록 아이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낭만을 누리지는 못해도 아이의 걸음을 뒤쫓느라 동동거리더라도 아이의 세상이 한 뼘이라도 더 넓어지기를 바라므로 마음의 구석까지 내몰린 용기라도 끝끝내 끄집어내어 아이와 함께 길을 나선다. 그 반복된 시도는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눈물의 하루들 중 문득, 나무줄기에 이마를 대고 교감하는 아이를 목격하게 되거나 지나가는 이웃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순간들을 만나게도 하기에, 오늘도 용기 내어 길을 나선다.


초록 속으로 내달리는 둘째 딸


*제목 이미지 출처 : https://mx.pinterest.com/pin/587930926334312414/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