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를 지나며
화음이의 키가 어느덧 155cm를 넘어섰다. 제 언니의 키를 곧 따라잡을 기세다. 이제 힘으로 엄마를 이길 수 있다는 것도 눈치챈 것 같다. 나는 순간순간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이제 그만 커도 좋으련만 이 아이는 왜 이렇게 잘도 크는 것일까. 부디 내가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커버리지는 않길 바란다.
나는 어릴 때 키가 작았다. 12월생인 데다 입이 짧고 잔병치레가 많아 잘 자라지 못했다. 3월생인 같은 학년 친구들과는 머리 하나만큼이나 차이가 났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동네 아줌마들은 자기 몸보다 큰 가방을 짊어진 나를 뒤에서 놀려대곤 했다.
“아이고, 저 작은 것이, 학교를 간다고..”
나는 아줌마들의 쿡쿡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에 주눅이 들어 작은 몸을 더 웅크리곤 했다. 엄마는 그런 내가 안쓰러워 보약을 지어 먹였다. 보약의 효과인지 뒤늦게 각성한 유전자의 힘인지, 만 14세가 되자 제 속도를 지키며 천천히 자라던 연한 피부가 사정없이 찢어지면서 키가 자랐다. 가속도가 붙은 뼈의 성장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엉덩이와 무릎에 흉측한 튼살을 남겼다. 나는 지금도 가끔 울룩불룩한 튼살 언저리가 가렵다. 나의 사춘기는, 키가 자라면서 남긴 흉터만큼이나 갑작스럽고 아픈 것이었다. 내 사춘기의 화살표는 외부가 아니라 내면을 향해 있었다. 반항과 분출보다는 사색과 고립을 택했기 때문에 바깥에서 볼 때에는 그 누구도 내가 사춘기를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첫째 딸의 사춘기가 나의 것과 많이 닮아있었다. 감사하게도, 나의 딸은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슬픈 정서를 물려받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때로 그 아이가 내면의 고독을 해소하는 방식을 보면서 감탄하곤 했다. 만약 내가 그처럼 건강한 방식으로 사춘기를 다룰 줄 알았더라면 어쩌면 나는 지금보다 더 단단한 어른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글쎄, 이 또한 단정할 수는 없다. 나의 아이도 내가 모르는 어느 밤에 시퍼렇게 멍든 어린 마음을 끌어안고 눈물로 베개를 적시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의 내면이 어떤 시간들을 견디고, 지나고 있는지 외부에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첫째 아이의 사춘기에는 내가 비집고 개입할만한 너른 틈이 간혹 생기기도 하기에 그럴 때면 나는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아 아이의 마음을 묻거나 그저 가만히 안아줄 수도 있었다. 그러면 홀로 감내하던 아이의 내면이 빼꼼히 내어다보고는 잠시 곁을 내어주기도 했다. 10대와 40대의 간극은 그렇게 공존하는 법을 배워갔다.
그런데 복합 장애를 가진 둘째 아이의 사춘기는 나의 데이터에 없던 것이어서 매번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사고가 다 자라지 못한 둘째는 내면의 깊이를 파는 대신 몸의 사춘기를 외부로만 발산시킨다. 불뚝거리는 신경질과 시도 때도 없이 덤벼드는 공격성에 나는 도무지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다. 둘째 아이의 변화무쌍한 무드에 이리저리 휘둘리다 보면 사춘기를 겪는 것이 아이인지 나인지 헷갈릴 정도다. 나는 요즘 제어되지 않는 내면을 다루느라 사춘기의 정점이던 15살로 회귀한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아이와 팽팽한 신경전을 부리다가 결국 무너져내리는 것은 언제나 내 쪽이다. 존중받지 못한 인격이 상처를 입고 와르르 부서져 내렸다. 나를 이토록 함부로 대하는 너라니.
아이의 몸을 씻기면서 붉게 갈라진 튼살의 흔적들을 가만히 쓸어주었다. 이 아이는 제 몸이 이토록 무서운 속도로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2세를 넘지 않은 지각으로 이 사춘기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나는 문득, 장애를 가진 아이의 사춘기는 스스로 견뎌내기 어려워 부모에게라도 전가되어 그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성장은 어떻게든 드러나 결과를 남기는 법인데, 장애아이는 그 과정을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우니 누군가가 대신이라도 겪어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유독 나를 향해서만 분출되는 납득하기 힘든 공격성이 자기의 사춘기를 나에게 맡기려는 절절한 호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지금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너를 대신해 깊이 아파하고 고민하여 너의 자아를 단단히 만들어가리라 ‘하고 말이다.
어릴 때 즐겨보던 외화 시리즈 중 하나의 제목이 ‘케빈은 열두 살‘이었다. 나의 작은 딸이 그때 보았던 케빈의 나이가 되었다. 내가 보았던 케빈의 사춘기는 어른의 사회 못지않게 치열하고 복잡한 것이었다. 비록 나의 작은 딸이 지나고 있는 열두 살이, 케빈이 겪었던 질풍노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긴 해도 그 역시 폭풍 속을 지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이 시간을 지나고 나면 나와 화음이, 둘 다 얼마간쯤 성장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은 괴롭지만 지나온 12년의 시간들이 우리를 지금에 다다르게 한 것처럼 앞으로의 시간들도 꿈결처럼 아름답게 빚어나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지금을 회상하며 기록으로 남기게 될 그날을 떨리는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우리의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
*제목 이미지 : 90년대 방영된 ‘케빈은 열두 살’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