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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광 Sep 09. 2018

피자 가격의 진실을 요구합니다.

마케팅일기 - 2018년 9월 9일 일요일 날씨:전형적 가을날 청

우리 집의 외식 메뉴는 매우 제한적이다. 6살 4살짜리의 입맛과 미식가 아내의 허락이 떨어지는 것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더 어릴 때는 사실 외식메뉴랄 것도 없었지만 그나마 조금 크고 나서 치킨이나 피자 주문이 가능해졌다. 가능해졌다 하더라도 매우 입맛이 까다로운 탓에 딱히 배달 비중이 높지도 않고 특히 중국집 배달은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한 잘 하지 않고 먹더라도 주로 직접 가서 먹는다.

애들이 조금 크면서 한정된 메뉴 중에 족발이 추가되기도 했다. 주로 외식 메뉴는 토요일 저녁이나 일요일 점심에 이뤄지는데 토요일이라면 피자헛이 될 가능성이 높고 일요일 점심이라면 교회를 다녀와서 집 앞이나 타임스퀘어에 있는 중국집이 낙점된다.


오늘은 이 패턴이 깨진 날이다. 타임스퀘어를 갔는데(여기서는 라멘도 가끔 낙점된다.) 백화점 라멘 가게에 사람이 많아서 중국집을 가려니 차라리 집 앞이 맛있다며 집을 향했다. 이런!!! 그 짧은 이동거리에 진앤준 브라더스가 잠이 들었다. 집에 도착해서 진이는 일어났지만 준이는 계속 자게 되자 나가기도 시키기도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엄마는 나가서 먹고 오라고 했지만 결국 진이와 둘이 나갈까 하다가 피자헛의 더블박스를 시키기로 했다. 진이의 최애 피자가 치즈피자기 때문이다. 가끔 프리미엄 피자와 번갈아 주문을 하는데 오늘은 치즈피자가 선택되었다.

<1판에 1만 1천원인데 사실 이 가격에 훨씬 맛있는 피잔 많다~>

맛있게 피자를 먹으면서도 찜찜만 맛이 혀끝에 남았다. 그것은 바로 피자의 할인 프로모션이다. 이는 비단 피자헛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피자헛은 주문을 할 때마다 내가 정상가를 할인가로 사 먹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어제도 티몬에서 파는 피자헛 신메뉴 할인 쿠폰을 구매했지만^^


현재 피자헛은 가격정책을 살펴보면 프리미엄 피자는 매장/배달 30%, 포장 40% 할인이다. 대략 배달 주문 시 프리미엄 피자가 21~25,000원, 더블박스는 2판이 22,000원인데 아마도 할인 가격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 상품의 정상가라 생각이 된다. 이런 가격 정책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을까? 1985년 이태원에 1호점을 낸 피자헛 미디엄 피자 가격이 8,400원이었는데 당시 짜장면 가격이 700원이었다. 현재 짜장면이 6~7천 원임을 생각하면 현재 피자 가격이 그리 높지 않게 보일 수 있으나 반대로 생각하면 그때 가격이 과하게 책정된 것이 아니었을까?

피자 1판으로 2명이 먹는 것으로 계산해 보면 정상가 35,000인 피자는 약 17,500원으로 이는 우리 동네 신라스테이 카페 점심 가격과 거의 같다. 이 가격으로만 봐도 과하게 비싸게 보인다. 피자헛이 이런 가격정책을 세운 이유는 대략 이런 것일 게다.

1. 경쟁 업종의 등장으로 가격경쟁력이 떨어졌다.

1985년 등장한 프랜차이즈 피자는(물론 이전 미군부대나 동부이촌동을 중심으로 피자가게는 있었다.) 매우 비싼 음식이고 고급 음식이었다. 피자의 역사는 이태리에서 서민 음식, 미국으로 가면서 중산층 음식, 한국에 오면서 부유층 음식이 되었단다. 믿거나 말거나~

이런 피자가 외식의 선두주자이자 미국물 먹은 음식으로서 오랜 기간 자리를 차지했다면 이후 치킨으로 시작한 외식업종의 파상공세는 피자의 자리를 위협했고 사실 지금은 그냥 그런 외식업종의 하나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쌓아온 외식업의 귀공자의 이미지를 버릴 수는 없었으리라. 그래서 피자 가격을 내리는 전략 대신에 할인 정책으로 경쟁환경에서 생존하기로 했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7_PcfGwXm9M

<완전 전 고객을 타겟으로 한 광고다. 1987년 피자헛 광고>

2. 매장 중심에서 배달 중심으로 자의반 타의반 유통전략의 변화

피자헛은 빨간 지붕을 상징으로 하여 매장을 하나 낼 때마다 동네의 핫플레이스로 등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시절 다 보내고 땅값 비싼 서울에서 매장 하나에 건물을 세우는 게 나은 시대가 되었으니 그리고 가격도 비싸고 맛은 이미 익숙해지고 다른 음식들과 경쟁이 힘들다 보니 치킨과 경쟁하는 업종으로의 변신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3. 매각을 위해선 뭔들 못하랴~ 매출 극대화 전략

위와 같은 환경에서 피자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누구를 위한 생존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업의 매각을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다. 매각을 위해서는 매출액을 높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과거의 영화는 잊고 끊임없는 가격 할인 프로모션으로 이를 준비했을 것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의 붕괴에서 보듯 한국의 외식업은 전쟁터와 같지 않은가? 2017년 미국의 염(YUM)은 지분 100%를 오차드원에 매각되었다.


여전히 이와 같은 가격 정책을 이어가고 있는 피자헛에게 새로운 희망은 없는 것일까? 한때 파스타를 주력으로 내보려 했으나 파스타 프랜차이즈가 쉽지 않았음을 직접 경험했고 파스타 특성상 매장 영업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으니 일반 개인 레스토랑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피자집에서 다른 것을 할 수도 없고 진퇴양난으로 생각된다.

가격은 기업에게는 원가를 보상해주고 이익을 남겨주는 것으로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마케팅 4P중의 하나다. 이런 가격은 정책에 따라 소비자의 지불 능력을 나누고 구매 의욕을 높여준다. 이런 차원에서 피자헛을 비롯한 피자 회사들의 현재 가격정책은 원칙도 없고 기준도 없어 보인다.

가격탄력성은 광고 탄력성의 20배 정도로 평가되고 매우 빠르게 대응이 가능하고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업들이 어떤 상황에 다다랐을 때 쉽게 꺼내들 수 있는 무기이긴 하다. 하지만 가격은 이제 책에서 배운 대로 공급과 수요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된다는 나이브한 생각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가격이 가치를 대변하는 가장 큰 이름표이지만 그 이름표 안에는 가격만 들어있지 않고 그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신뢰와 가치, 경험, 효용 등 소비자가 기대하는 모든 것이 들어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격은 매우 민감한 요소다. 돈이 많다고 가격표도 안 보고 물건을 쓸어가는 것은 드라마에서만 일어난다. 백화점에서 VIP로 불리는 사람들도 가격에 매우 민감하다. 백화점에서 8년을 근무했지만 드라마 주인공 같은 그런 사람 본 적이 없다(물론 갑질하시는 그분들은 그리 하실 수도).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기대하는 수준은 비슷하다. 가격 택에 있는 금액을 상회하는 경우는 정말 특별한 경우란 것이다.

<가격이 형성되는 기준, 이익을 많이 낼 것이냐 적게 낼 것이냐의 문제도 있지만 원가를 보장받는 것도 중요하다. >

매출액은 판매 가격에 판매량에 곱해져서 나오기도 하지만 객단가에 고객수가 곱해져서 나오기도 한다. 이 말은 가격은 상품이나 서비스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에게도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이다. 피자헛은 매우 험한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신상품도 계속 개발하고 피자 브랜드의 대표주자로서 자존심도 세다. 그래서 가격정책에 더욱 신중했으면 한다.

현재의 가격정책을 서서히 고민하는 것보다 전체를 한번 내려놓고 가격에 대해 제대로 고민해 보길 소비자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본다. 피자헛의 충성고객으로서 일요일 오후에 주절주절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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