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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광 Sep 11. 2018

기업이 싫어하는 예민남입니다.

마케팅일기 : 2018년 9월 11일 화요일 날씨 : 천고마비 그 이름

매일 매일 공개 일기를 쓴다는 것은 특히나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것은 힘든 일임을 시작하고 나서 알았다. 5시간의 강의가 끝나고 돌아와 또 모니터 앞에 앉았다. 운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내일 소파 배달이 온다고 전화가 왔는데 다른 일과 겹쳐서 시간 조정하느라 애 먹었다. 그 스토리를 좀 써 보고자 한다.


짧은 연애 기간을 보내고 결혼을 결심했지만 가진 것 없던 부부는 방하나에 주방만 달린 원룸 주택을 첫 보금자리로 선택했다. 꼴랑 몇 평짜리 집에 채울 게 뭐 있었겠냐만 새로 장만할 혼수 리스트를 만들고 쇼핑에 돌입했다.

남자와 여자는 이미 혼자 살던 터라 세간살이들이 좀 있어서 침대와 세탁기는 남자가 쓰던 걸 쓰기로 했고 가구는 아현동 가구거리에 가서 이 작은집에 들어갈 Brandless 가구들을 선택하고 가전제품은 29인치 명품 TV 그리고 남자의 로망  홈씨어터를 사기로 했다. 하지만 이 집에 소파의 자리는 없었다.


이 부부는 1년 반 만에 서울 외외외곽에 32평 아파트를 은행과 함께 장만하고 이사를 하면서 드디어 소파를 놓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남자는 회사에서 만들어준 지름신(신용카드)으로 나름 브랜드 장인가구에서 12개월 할부를 실행했다.

이삿날이 잡히고 새살림이 들어오는 날 고대하던 엷은 브라운 2+2 소파가 운동장 같은 32평 거실의 한쪽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소파 있는 삶이 시작되었는데...

어느 날부턴가가 이 소파는 남자의 예민한 감각 레이더에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하는데 소파에서 가장 많이 앉는 자리가 다른 자리보다 심하게 꺼져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 이게 소위 말하는 뽑기 실패인가? 구매한 가구매장에 이야기를 했고 A/S 직원이 와서 소파를 확인하더니 꺼진 게 맞다면서 교환을 해준다고 했다. 날이 지나고 새로운 소파가 집에 도착했다. 드디어 비닐이 벗겨지고 새로 온 소파는 엷은 브라운색을 드러내나 했으나~~

<투헐이었다>

새로 온 소파는 어디선가 3년은 사용한 듯한 때가 꼬질꼬질 묻어있었다. 배달 온 직원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를 잡으려 했고 나는 어이가 없어서 이게 새 거처럼 보이냐 했더니 말을 흐렸다. 당연히 다시 가지고 돌아갔다.

가구회사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여러 번 사과를 했고 매장에서는 그 소파가 생산이 되지 않아서 아마도 전시상품을 그냥 가지고 간 거 같다는 변명을 했다. 그리고 다른 소파를 선택하면 다시 배달해 주겠다 했다.

그렇게 다시 선택된 훨씬 비싼 검은 가죽소파는 비싼게 좋은건지 쿠션도 안 죽고 10여년간 우리 가족을 안아주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지 않았던가~ 2명이던 가족은 4명이 되었고 소파는 유명을 달리했다. 참 안타까운 것은 가죽과 인조가죽을 섞어서 제작하다 보니 인조가죽이 바스러져서 사용을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는 점이다. 최소한 좌방석 쪽은 가죽을 다 사용했다면 더 오래 같이 살았을 텐데...

그래서 새로운 소파 물색에 들어갔고 예전엔 소파를 보러 발품을 팔았지만 이번엔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레이더에 걸린 소파는 한샘과 중견 브랜드가 코웍해서 만든 2인 소파였다. 기존 소파가 너무 커서 지금 집 거실을 다 잡아먹었던 터라 이번엔 작은 소파를 사기로 했고 그래도 좀 오래 쓰려고 좀 가격이 나가는 소파를 주문했다. 그런데 그 이후 6개월, 이 소파의 앞부분이 나눠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스프링 부분과 스펀지 부분이 제대로 자리를 못 잡고 제작되어 분리되다 보니 앞부분이 내려앉은 것처럼 변한 것같다.

<앞 부분이 속이 나눠진 소파, 육안으로는 별 문제 없어 보인다>

결국 구매한 곳에 AS를 요청했는데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더니 사진으로도 그렇게 보이는데 이번에는 맞교환을 해주는데 소파가 그럴 수도 있다면서 다음에는 교환은 안된다고 이야기했다. 바꿔준다니 기분은 좋았지만 소파가 그러려니 해야 한다는 투의 제안은 썩 맘에 들지 않았다. 여기까지 인생에서 소파 2번 샀는데 2번 다 교환한 이야기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홈쇼핑에서 산 커튼이 짝짝이로 왔는데 다시 보내온 상품으로 다 걸어두었더니 퇴근한 와이프가 이거 뭐냐고  우리가 산 게 아니라고 한 일, PDP가 대중화되고 큰맘 먹고 산 40인치 PDP 화면에 까만 먼지가 끼면서 AS 받았더니 화면에 빨간 점이 생겨서 바꾼 일, 또 바꾼 PDP 화면이 밝아졌다 어두워지길 반복하여 또 바꾼 일... 이 정도면 뽑기치에 가까운 거 아닌가 싶다.


식스시그마(Six Sigma:100만 개의 제품 중 3~4개의 불량만을 허용하는 품질 혁신 운동) 또는 QC(Quakity Control)라는 말이 이제는 옛말처럼 느껴지는 2018년이지만 여전히 가전제품이나 스마트폰 구매 후기를 보면 '뽑기운'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완벽한 품질 관리란 역시 불가능한 것인가란 생각이 든다. 랜드로버와 재규어는 뽑기도 실력이다란 말을 들을 정도로 불량이 자주 나온다는 사용자 평이 많고, 현대 자동차는 품질관리에 역점을 두면서 북미시장에서 큰 성장을 거두기도 했지만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런저런 품질 문제로 구설에 자주 오르내린다. 삼성전자도 예외는 아니었으니 갤럭시 노트7은 배터리 스캔들로 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독일 기술의 상징 BMW는 배기가스 순환장치 문제로 가장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완벽한 해결이 가능할지...복잡한 상품일수록 QC가 중요하다. 출처:http://mn.kbs.co.kr/news/view.do?ncd=3348873>

완벽한 상품이란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상품의 성능과 상관없이 수명은 점점 줄어들고 공급자들은 상품을 계속 만들어내 성장과 생존을 모색하고 소비자는 신상품에 열광하는 무한루프 속에 시장이 돌아가다 보니 상품의 완벽함을 애초에 기대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초에 품질에 하자를 기대하고 소비를 하는 소비자도 없고 빈틈 있는 제품을 공급하고자 하는 제조사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상품은 기대하는 수준에 부응해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컨퍼런스 럭키드로에서 뭐 하나 받아본 적도 없고 로또도 그렇게 많이 샀지만 오천원 받아본 게 전부다. 뽑기운이 없는 건 맞는 거 같다. 하지만 내 돈 주고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뽑기운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2018년에 일어날 일은 아니지 않을까? 상품은 마케팅의 시작이다. 상품이 불량하면 모든 마케팅 요소와 프로세스의 노력과 과정이 물거품이 된다는 의미다. 상품은 지불한 비용에 대한 가치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비단 예민한 엉덩이를 가진 나를 만났다 할지라도 소파는 소파의 역할을 해야 한다. 소파가 인테리어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몸의 편안한 묻침에 부응할 탄력 회복성과 푹신함을 가진 소파의 역할 말이다.


http://cl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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