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명광 Sep 17. 2018

벼룩시장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케팅일기 - 2018년 9월 17일  월요일 날씨:모름

준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일은 엄마가 하는데 감기가 걸려서 아침에 병원을 들렸다. 나도 감기 기운이 있어서 같이 약이라도 지어야겠다 생각했는데 예약시간을 착각한 덕에 3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그냥 먼저 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평소에 사무실 가는 길 반대쪽 길로 버스를 타러 가게 되었는데 횡단보도 앞에 벼룩시장 가판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많던 정보지들 중에 벼룩시장은 남아있구나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게 되었다.

벼룩시장은 내 젊은 시절 월세방을 구하고 중고 가전제품을 구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고 집에 신문지라도 필요하면 꼭 챙겨서 가져가야 할 당시의 포털 사이트 같은 거였는데 지금은 어떨까 생각되었지만 집어 들진 않았다. 내가 필요한 정보를 얻는 곳은 이미 가판대를 떠나 손 안의 전화기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도 손을 뻗고 싶었는지 가판대 안내문에는 모바일로도 만날 수 있다고 친절하게 쓰여 있었다.

<우리동네 소식통도 네이버가 하고 있으니 찾을 일이 없어진 벼룩시장이지만 여전히 필요한 사람이 있는 법>

벼룩시장을 보지 않은 것이 언젠가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월세를 전전하지 않게 되면서부터 중고가전보다는 신형 가전을 사게 되면서부터 였던 거 같다. 그렇다고 내 삶이 로또를 맞은 삶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지만 벼룩시장을 찾는 타깃이 아니게 되었단 뜻은 맞는 거 같다. 그리고 벼룩시장에서 찾아야 할 것들은 이미 모바일 세계로 넘어왔기 때문에 더 이상 타블로이드판 정보지를 얻기 위해 길가에 있는 가판대를 접할 이유가 없었진 것이 가장 크다. 헬로마켓이나 중고나라가 있고 직방이나 다방이 그 역할을 다 하고 있다.


벼룩시장이 모바일에서 읽힌다고 해서 벼룩시장의 역할이 변한 것은 아니지만 모바일 환경에서 더 그 역할을 잘할 수 있는 기업들이 새로운 이름의 벼룩시장을 만들고 그 일을 하고 있다. 물론 벼룩시장이 여전히 오프라인에서 인쇄물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정보를 주고받으며 모바일로도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벼룩시장은 생존하였고 여전히 일정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더 반갑다.

사람들은 디지털 세상이 오면 아날로그가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디지털 세상이다. 거의 모든 것들이 디지털에서 행해지고 연결되고 있고 심지어 오프라인을 온라인으로 연결해주는 O2O 서비스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비즈니스 모델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이 존재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아무리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복제한다고 하여도 아날로그 감성을 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IFC몰 잔디위에서 열린 벼룩시장이다. 온라인으로 다 거래되는데 여길 찾는 이유는 뭘까?>

아날로그와 디지털은 기본 성질이 다르다. 디지털은 0과 1이라는 숫자로 세상을 표현한다. 분절적이란 말이다. 아날로그는 우리는 깨닫지 못하지만 끊김 없는 흐름을 의미한다. 아날로그시계와 디지털시계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시곗바늘로 대변되던 시간의 흐름이 숫자라는 디지털 신호로 바뀌고 시간도 단절적 신호로 변환된 것이다. 이러한 분절이 우리의 삶도 분절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있지만 우리네 인생이 끊임없이 흘러가듯 사랑, 행복, 기쁨, 슬픔 등 인간의 모든 희로애락이라는 감성도 끊임없이 이어진다.

디지털이 없던 시절 이런 감성 에너지는 가족에서 회사에서 동아리에서 학교에서 교환되었다. 하지만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복제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디지털에서 아날로그에서 교환되는 에너지가 다 거래되고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디지털 속에서 관계를 맺고 에너지를 교환하는 것처럼 생각하면서도 디지털에서 채워지지 않는 에너지를 오프라인에서 대면하며 교류한다. 사람끼리 교환할 수 있는 감성에너지는 아날로그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이제야 자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은 아날로그의 에너지는 사람에게 나온다는 말이다. 사람이 만든 글에서, 사람이 만든 그림에서, 사람이 만든 장소에서, 사람이 만든 모임에서 말이다. 다만 그 에너지를 보여주는 모습이 디지털이라고 해서 디지털 자체에 에너지가 담겨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디지털은 수단일 뿐이다.


오늘 소심한 소심인이란 모임에 참석했다. 디지털 세상이었다면 전혀 얻지 못할 인사이트를 얻었다. 소심은 어떤 극 편향이 아니라 사람이 가진 소심과 대범이라고 표현되는 내향과 외향의 정도 차이라는 것이다. 소심한 사업가 이야기, 소심한 사람의 글쓰기, 선택적 소심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는데 소심이라는 정의는 상대적이라는 것이고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성향을 이분법으로 나눠버린 것이란 등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 이야기의 행간과 에너지는 사람을 만나서 듣고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다란 생각을 했다.

<소심한 사업가 이야기는 사람이 주는 에너지와 함께 들어야 이해가 된다>

기업이든 소비자든 마케팅에서 여전히 아날로그가 먹히는 이유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 맥락에서 이해되면 좋겠다. 마케터들도 디지털이면 모든 것이 되는 것처럼 한때 디지털 타임라인을 도배했었다. 퍼포먼스 마케팅이란 말이 큰 회사들이 알고리즘을 바꿔버리자 잘 들리지 않게 되었다(퍼포먼스 마케팅 혹은 데이터드리븐 마케팅이 필요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간 자행된 마케팅 수단들이 목적인양 행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수단이 목적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타블로이드 벼룩시장은 디지털에 가서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만나는 벼룩시장은 중고나라에 가서는 존재하기 힘들다. 사람과 사람이 대면하고 에너지를 교환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잘 나가는 기업들의 특징을 보면 경험이라는 단어에 집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에게 어떤 경험을 느끼게 해 주고 어떻게 경험 프로세스를 설계하면 자신들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관심을 갖고 구매의사결정에 이르게 할 것인지 고민한다. 이것은 디지털이 생겼을 때 디지털 자체가 가진 매력 때문에 빠져들었던 사람들이 드디어 디지털의 존재는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디지털이 가진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디지털 경험도 근원은 아날로그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사람들은 디지털에서 모든 것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진짜 승리는 아날로그에서 승부가 난다. 어쩌면 스필버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는 듯 생각했다.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기업들이 환경의 변화나 기업의 목적에만 심취하여 정작 중요한 지상 최대의 목표인 아날로그 소비자에 대한 연구를 등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듬새는 디지털세대가 좋아할 영화지만 전체적으로는 아날로그세대가 더 좋아할 영화라 생각한다>

많은 기업들이 그리고 조직원들이 소비자 연구를 디지털에서만 한다. 보고서를 만들고 기획안을 만들 때 현장이나 소비자의 모습을 보지 않고 데이터와 정보에 기대 만들어 내고 있다. 물론 극단적인 이야기이고 디지털이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지만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경계를 치는데 그 경계는 디지털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기업들이 소비자를 아날로그를 더욱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

잘 나가는 기업들은 아날로그를 지향한다. 즉 사람이 가장 중요해 보이게 일을 한다는 뜻이다. 그게 설사 가장되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내가 애플을 다이슨을 디즈니를 넷플릭스를 아마존을 디지털 기업이 아닌 아날로그 기업이라 생각하는 이유다.

벼룩시장이 모바일에 들어가더라도 벼룩시장은 잔디 위가 제자리다.

뭔 말인지도 모를 말을 지껄이는 거 같다.

꼭 취해서 쓰는 거 같은데 아마도 피로에 취한 듯하다.^^ 시유 어게인~~


http://clnco.kr/


매거진의 이전글 죽은 빵도 살린다는 발뮤다 토스터 값을 한다 VS 비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