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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광 Apr 26. 2016

똥 치우는 남자

나는 똥이다 5

아나콘다 한마리 변기에 익사


똥이란 참 묘한 녀석이다. 내 삶의 결과물이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반겨주지 않는다. 내 똥도 그럴진대 다른 사람의 똥이라면 더욱이나 그렇지 않을까? 똥을 치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똥은 단지 냄새 나는 오물이 뿐이고 돈을 내고 똥을 가져가게 하는 사람들은 돈까지 내면서 버려야 하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똥을 애지중지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으니 엄마 아빠들이다. 물론 5세미만의 아이를 둔 부모다. 필자는작년에 육아휴직을 하였고 현재는 반 육아휴직 중이다. 육아휴직 중인 남자 직장인이 1500명 정도 된다고 하니 꽤 희소성 있는 남자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침에 문득 둘째의 똥을 치우면서 드는 생각 ‘도대체 이 똥은 언제까지 치워야 하나? 4년째인데’ 가끔은 손에 묻혀도 봐야 하고 똥 묻은 이불이나 옷가지를 손으로 빨아야 하는 신세니 아무리 예쁜 자식의 똥이라도 똥의 소중한 가치를 안다고 하더라도 치우는 번거로움은 그냥 번거로움일 뿐이다.

번거롭다고 해서 안 치울 수 없고 자세히 보지 않을 수 없다. 아프지 않을 땐 변 색깔은 잘 나오는지 변의 무름 정도는 좋은지 자세히 살펴야 하고 행여 아플 때는 약 때문에 설사라도 할라치면 빨리 치워주지 않으면 요도감염이라도 올까 봐 걱정해야 하고 무르는 항문을 잘 말려주고 무르면 약도 발라줘야 한다. 이 똥 치우는 남자에게는 어여 이 아이가 자라서 변기에 앉아 자기의 똥을 뱀이다라고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

아직 걷지 못하는 둘째는 기저귀가 화장실이고, 4살인 첫째는 손잡이 달린 전용 변기가 화장실이다. 첫째는 아직 자신의 변이 나오는 것을 소리나 기저귀의 표시줄로 알려줄 뿐이라 세심하게 살펴야 하고, 첫째는 다행이 '응가' 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화장실 자기 자리에 앉고 똥 치우는 남자를 밀어내며 문을 닫는다. 4살짜리 아이에게도 응가는 부끄러운 겐지 아니면 그 시간 만이라도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은 똥 치우는 남자의 마음을 아는 건지 아무튼 신기하다.

그리고 엄마 아빠를 부르며 다했어요 하는데 오늘은 긴 뱀이란다. 아 저 정도 길이에 두께면 뱀이라 해도 놀랄 일도 아니지만 저 두께가 저 작은 몸에서 나온다고 하니 경이로운 일이고 저 두께에 똥꼬라도안 찢어졌을까 걱정해야 하는 게 똥 치우는 남자의 운명이다. 아이의 똥꼬를 원래 샤워를 하기 위해 쓰는 샤워기를 활용해 비데인 척 씻겨주고 변기에 아나콘다 한 마리를 투척하고 변기는 물로 깨끗이 닦아주고 제자리에 두면 똥 치우는 일은 끝이 난다. 참 간단한 일인 거 같지만 많은 손이 가는 일이다.


똥 치우는 미다스의 손


애 키우는 일이 다 그렇다. 남의 자식이야 한 번 웃어주면 참 귀엽네 예쁘네 하며 끝나지만 제 자식 키우는 일은 어찌 그리 다사다난한지..과거처럼 방임주의의 육아현실이나 조부모 삼촌 고모들이 육아를 공유해주었던 때야 손이 반 이상 줄었겠지만 엄마 아빠 혼자키우는 육아에선 부모 손은 미다스의 손이다. 물론 손에 똥을 묻히니 미다스의 손이 되는 것이다. 인광석으로 돈을 벌었던 나우루 공화국 사람들은 그것이 단지 돈이 되는 똥이 였을 뿐이지만 똥 치우는 남자들에게 똥이란 삶의 대변인이다. 아이가 아플 땐 똥을 10번도 넘게 치우고 행여 무를까봐 물 티슈 안 쓰고 세면대(원래 얼굴을 닦는 곳이라서 세면대라는데 아이가 있는 집은 세항(?)대의 역할을 한다)에서 물로 똥꼬를 어르만지며 이 똥은 내 자식의 삶이자 내 삶이란 생각을 오늘도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의 얼마나 많은 아빠들이 남자들이 지 자식의 똥을 보면서 웃고 웃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최소한 지 자식의 똥 상태를 알아봐 주는 똥 치우는 남자들이 많아지는 것이 이 세상의 평화와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닌지 한번생각해 보길 바란다. 자식의 똥이 나우루 공화국의 인광석보다는 비싸야 하지 않겠나. 내 자식의 똥의 상태를 아는 것이 내 자신의 상태를 아는 것과 같은 것이다. 똥의 가치는 오물값이 아니라 똥을 바라보는 시선의 가치다.

 어렸을 때 등굣길 똥차를 세 번 보면 행운이 온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내 자식의 똥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진정한 아빠가 되지 않을까? 똥이란 인생의 결과물이지만 결과물은 과정을 담고 있다. 아이의 똥 하나에도 인생의 과정이 담겨 있듯이 당신의 똥이 당신 인생의 어떤 과정을 담고 있는지 아이가 있는 아빠나 엄마는 한번 오늘 살펴보며 느껴보고 다 자란 부모나 자식이 없는 부모라면 아님 아직 솔로라면 내일 아침 내리기전에 한번 건강을 위해서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기 위해서도 한번 시선을 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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