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은 필요 없나요?

기업이 취준생에게 숨기는 비밀 9

by 조명광

필자는 IMF 이후 공채가 사라진 암흑기를 지나고경기가 서서히 되살아나던 2000년에 12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당시 시청 근처의 사무실 주변에는 원서접수를 하기 위해 몰려든 취준생들의 줄로 회사가 몇 겹으로 포위 당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이야 인터넷 접수가 당연하지만 당시엔 현장 접수 및 우편접수를 하던 때였다. 공부 잘 하던 친구들은 대기업에서 학교의 취업상담실에 보내준 원서를이용했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원서를 받으러 회사들을 돌아다녀야 했다. 천운으로 바늘 구멍을 통과해서 대기업을15년 이상 다니긴 했지만 과연 실력만으로 통과했을까라는 의구심도 든다. 그렇다고 필자에게 엄청난 빽이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만큼 공채로 합격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당시엔 IMF 이후에 공채로 합격했다가도 합격취소를당하기도 했고 공채가 사라져 회사의 공채기수가 1~2년 사라지기도 했다. 다행히 필자가 공채에 합격한 시기부터 경기가 되살아나고 있었고 채용의 문이 넓어져 입사의 기쁨을 누렸다. 시쳇말로 필자가 가진 빽은 더플빽(군대에서 쓰는 가방)밖에 없었다.


공채(公採)라는 말은 공개채용의 준말이다.공(公)자는 공정할 공자이기 때문에 공정한채용이라고 해도 되겠다. 모두 열어 놓고 채용한다는 말이니 공정하다고 말할 법도 하다. 공채는 1957년 삼성그룹이 시작하면서 민간기업으로 확대되었다. 해마다 취준생들은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공채 일정과 전형방법에 목을 메고 어떻게 한 곳이라도 합격이되어 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도서관에서 합격 노트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삼성그룹이 공채를 시작하면서 대기업 공채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출처 : 삼성블로그>

그런데 공채는 정말 공정한 것일까? 그렇게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사가 그리 만만하지 않다. 공채가 공정하다고 생각한다면 아직 세상 물이 덜 든 순수함이있다고 해야 할까? 정치인들의 스캔들 중에 하나가 취업청탁이다. 사실이라면정권 실세들의 청탁이니 안 들어주기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공정하지 못하다는 반증 아니겠는가? 이런 뉴스들이 심심찮게 언론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걸 보면 뿌리 뽑지못할 아니 뿌리 뽑히지 않을 이슈가 아닐까 싶다. 채용의 역사에서 배경이 없었던 때가 있었을까?그렇다고 공채는 공정하지 않다는 말로 곡해하면 곤란하다. 색 안경낀 눈에는 한 색만보일 뿐이다.

공개채용은 공정하게 진행하려고 그리고 온전히 실력만으로 평가하려고 진행하는 것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공채이기 때문에 배경이 더 쉽게 먹힐 수 있다는 생각은 안 드는가? 우리나라는 학연 지연 혈연이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힌 사회다. 학연 지연 혈연이 다 빽인 사회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조사한 결과를 보면 86.6%가 ‘권력층과의 친분 관계와 업무 영향력’ 사이에 큰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 응답자 중 30.5%는‘매우 그렇다’, 56.1%가 ‘그렇다’고 응답한 반면 ‘그렇지 않다’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각각 11.6%, 1.8%에 머물렀다고한다. 연령별로는 30대 중에서 89.9%가 양자 간 상관관계를 인정해 전체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았고. 소득별로 월300만원 미만이 82.6%, 300만원 이상 700만원 미만이 88.1%, 700만원 이상에서는 무려 96.3%가 이를 인정했다고 한다. 고소득 층으로 갈수록 주변에 있는 빽의 존재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엿보게 해준다.

이런 사회에서 채용시장이라고 빽이 통하지 않겠는가? 최근에는 학벌로도 상위계층으로 올라가기 힘들다는 조사도 나오고 있다. 지금은 자본이 권력이고 자본이 세습되는 신 자유시대다.

채용시장도 빽이 통하는 시장이다라고 정의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신입사원들의 배경을 살펴보면 학벌을 위시한 스펙은 기본이고 부모님의 직업이나 환경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이제는 공부만 잘해서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타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해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과거엔 집에 돈은 있지만 공부를 못한 취준생들은 해외도피유학을 가고 한국에 돌아와서는배경을 이용해 좋은 회사를 가거나 권력과 부의 세습을 해 왔다면 지금은 배경이 좋은 취준생들이 스펙도 좋고 성격도 좋고 일도 잘하는 현상이 발생하고있다는 것이다. 취업시장이 좁아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기성세대의 부와 권력의 대물림에 대한 욕구와 취준생들의 상향 평준화의 영향일 것이다.

<계급이 사라진 사회인줄 알겠지만 이제는 수저로 표현된다. 출처 : 조인스닷컴>

그렇다면 가진 것은 학교 졸업장과 몇몇 자격증과 점수뿐인 흙수저들에게 희망이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필자는 없는 빽을 대체하기 위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자 노력했다.물론 지금의 취준생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겠지만 당시엔 흔하지 않던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다양한 교내활동과 교외활동 그리고경제활동까지 경험하면서 다른 취준생이 가지지 못한 관점과 문제해결 능력을 갖고자 노력했었다. 부모의 배경이아니라 내가 만든 배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관점과 문제해결 능력은 금방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관점을 키우기 위해선 책과 신문을 많이 읽고 밤새 주점 다락방에서 선후배들과 토론을 했다. 문제해결능력은 스스로 사회에 나오면 자연스럽게 길러진다. 인생에 도움되지 않는 일상은 없다. 그 일상이 내 문제해결 능력에 도움이 되는 일상인지 한탄만 하고 있는 일상인지 복기해보기 바란다.

지금은 공채의 의미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 물론여전히 국내 대기업들에겐 공채가 조직의 핵심이지만 많은 기업들이 이미 공채보다는 경력직 채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 사회에 나오는 병아리들에게는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즉시전력감을 보강하는게 키워서 잡아먹는거 보다 싸게 먹힌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 채용시장이다. 공채보다 잡채가 대세인 시대다.

취준생들에겐 경력직이 보여줘야할 능력을 사회초년생들이 보여줘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점에서 불공평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기업들에게 인건비 부담은 생각보다 크다. 개개인 월급뿐 아니라 유지 보수 비용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보통 직장인 한명의 연봉보다 1.5배에서 2배에 이르는 유지 비용이 발생한다. 고액연봉자 1명을 줄이면 신입을 3명은 채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신입직원을 전선에 내보내기 위한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이러한 시대에 취준생에게는 즉시전력감이 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으로 자신만의 배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인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네트워크의 힘은 생각하는 이상으로 강력하다. 네트워크를 활용해 외부의 힘을 이용하자는것이 아니다. 많은 선후배들의 경험과 조언이 취업시장에서 단단한 배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내가 가고 싶은 회사에 친한 선배가 있다면 그보다 좋은 빽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금수저가 아님을 한탄하지 말고 내가 스스로 좋은 빽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시대에 와 있다. 과거에도 계급은 있었다. 다만 지금은 계급이 제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빽도 실력이다라는 말을 하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빽은 실력이다의 시대다. 빽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다면 빽은 만들어라. 명품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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