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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광 Jun 09. 2016

꼰대라면 필독

나는 똥이다 12

똥물에도 파도가 있고 소똥에도 계단이 있다는 말이 있다. 어떤 이는 찬물도 위아래가 있고 똥물에도 파도가 있다고 사용하기도 한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는 속담사전에도 나오는데 무엇에나 순서가 있으니, 그 차례를 따라 하여야 한다는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자연에는 질서가 있다고 해석하면 순수과학의 용어처럼 들리나 현실세계에서는 대부분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말로 사용되는 것으로 보아 단어적으로나 의미적으로나 그다지 유쾌한 속담은 아니다. 사실 요즘에는 똥물을 보기도 힘들다. 시골에나 가야 푸세식 화장실이 있기 때문이다.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말에 왜 똥이 사용되었을까? 그만큼 하찮은 것도 위아래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했던 거 같다.

<언론사가 이런 어설픈 이미지를 사용하다니 좀 어이 없음. 출처 : Pixabay, Miami new times>

대한민국은 동방예의지국이고 장유유서가 중요한 나라, 자기 소개할 때 나이를 소개하는 나라, 빠른 년도 생이라는 이상한 나이 셈법이 있는 나라다.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어도 '니 몇 살이야?' 라며 나이를 물어봐 준다.

장유유서의 원래 의미는 나이가 한 살이라도 많으면 형 노릇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선조실록에도 위아래 10년 차이는 동류로서 예로 대하라는 유희춘의 말이 기록되어 있단다. 그리고 대부분 나이에 상관없이도 우정을 나눈 사례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조선시대에도 없던 나이 문화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군대도 아직 안간 대학생들의 군기문화는 어디서 온것일까? 출처 : www.vop.co.kr>

필자는 X세대라는 말을 처음 들었던 시절에 대학을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우스운 일인데 한두 살 많은 한 학번 선배들이 가장 살벌했던 것 같고 뺨도 한번 맞았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왜 맞았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필자가 학교 다닐 때부터는 선배들이 위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후배들이 고분고분하게 말 듣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군대에 가보니 사회보다 군기 문화가 덜 했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에 나와보면 사실 나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최근에는 기업들도 기수 문화를 없애고 있다.

한국의 나이 문화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1. 군대문화의 사회문화화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은 미군정의 시스템이 그대로 사회에 이식되었다. 그래서 행정부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들도 프로세스나 시스템에여전히 미국 군대의 유물이 남아있다. 물론 거기에 일본식 시스템도 남아있기도 하다. 또한 웬만한 남자들은 다 군대를 다녀왔기 때문에 군대 문화가 익숙하다. 군대처럼 위계가 중요한 곳이 어디 있는가? 이러한 군대문화는 그대로 사회에 이식되었다.

2. 실력보다는 연공서열

군대문화가 사회 전반에 만연하고 회사들의 문화도 일본식 회사 문화가 유지되어 위계질서가 아주 중요했다. 조직은 실력이나 실적으로 평가받지 않고 언제 입사했는지가 중요했다. 기수와 연공으로 이뤄진 조직이다 보니 선후배 문화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실력이 있어도 실적이 있어도 승진때가 아니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게 당연했다.

3. 개인보다는 조직을 중요하는 문화

대한민국은 개인의 권리나 행복보다는 조직에 대한 헌신이 중요했다. 산업화 시대를 겪다 보니 그럴 수도 있지만 군대문화나 연공서열은 자연스럽게 개인보다 조직이 먼저인 문화가 만연하게 되었다. 사실 기업이나 조폭이 다른건 행위의 불법성 여부일 뿐이다. 요즘은 조폭도 불법 행위를 안하고 사업하는 경우가 많단다.

4. 폭력에 대한 정당성 부여

군대문화, 연공서열, 기수문화는 일정 부분 폭력성을 정당화하였고  사회 내에 이러한 폭력적 문화가 용인되는 정서도 남아 있었다. 사건 사고를 살펴보면 나이 때문에 생기는 경우도 많다.

5. 호칭 문화

한국처럼 이름이 불려지지 않는 나라가 있을까? 형이나 누나가 자연스럽게 사회에서도 사용되니 나이가 호칭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필자의 옛 아버지의 농담이 생각난다.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에 당시엔 핸드폰이 없으니 집으로 대부분의 연락이 왔다. 아는 여자동생 전화를 해서 명광 오빠 있어요? 했더니 아버지 왈 나는 딸이 하나밖에 없는데 누구냐고 물으셨단다. 처음 만나자마자 형님 하면서 나이 문화를 용인하는 곳이 얼마나 있겠는가?

<나이 문화에 남녀의 차이는 없다. 걸그룹 나이 서열표까지 만들어지다니. 출처 : 헤럴드경제>

필자가 대학시절 캐나다 어학연수중 가장 크게 느낀 컬처쇼크가 나이 문화가 없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고 한 음악으로 젊은이나 늙은이나 흥겨워할 수 있다는 것은 가히 충격이었다.

나이로 서열을 매기는 문화는 왜 문제가 될까?

1.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다양성을 제한한다.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들면서 말수가 줄어든다. 나이가 위계가 되다 보면 나이마다 원하는 기대치가 생긴다. 나이가 들수록 그 기대치에 대한 합당한 언행을 기대받고 그를 실천하려 한다. 이럴수록 자유스러운 의사표현과 다양한 사고가 제한된다.

2. 사회와 조직의 경직성을 강화한다.

나이 많은 게 무슨 벼슬도 아니고 나이 먹어서는 어른이 되어야 하고 사고와 행동이 그에 맞게 표현되길 바란다. 이런 문화는 시작은 개인의 경직성으로 시작되지만 전체적인 사회 경직성을 야기한다. 이러한 경직성은 점점 유연한 문화를 원하는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다.

3. 관계의 폭을 좁힌다.

해당 나이 때에 있는 사람들은 그 나이의 사람들과 주로 어울리게 된다. 인생 연륜이나 경험이 유사하다 보니 모이게 되는 자연스러움도 있으나 사고나 관계의 확장이 제약되고 다양성도 한정되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 관계는 나이와 상관없이 관심으로 맺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을 꼰대라며 어울리지 않으려 하고 나이 먹은 사람들은 젊은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못마땅해한다. 갈등도 많은 좁은 땅에 굳이 나이까지 갈등의 유발요인이 될 필요가 있을까? 나이를 타파하는 문화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나이 든 사람들의 이해가 중요하다. 아무래도 젊은이들이 나이 문화 혁파를 선도하기엔 한계가 있지 않겠는가?

<꼰대의 정체성은 스스로 정의할 수 없다. 상대방이 규정짓는다. 출처 : www.ohmynews.com>

그래서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몇 가지 생활 속 대화의 기술을 정리해 보았다.

1. 초면에 나이를 묻지 마라 : 나이 물어서 위아래를 굳이 나누고 싶은가? 싸우자는 얘기다.

2. 호구 조사하지 마라 : 이미 세계화가 된 나라다. 호구 조사는 프라이버시 문제다.

3. 내 경험만 정답이 아니다. 나도 틀릴 수 있다 :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경험과 지식이 있다. 자랑하지 말고 공유하자.

4. 나이로 우대받으려 하지 마라 : 나이가 어른을 의미하진 않는다. 존경은 성취하는 것이다.

5. 다양성을 수용하라 : 내 신념을 고수하면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신념과 고집은 다르다.


똥물에도 파도가 있다를 영어로 하면 Respect your elders정도로 해석이 가능하겠다. 외국이라고 연장자를 우대하지 않는 것은 아닐 게다. 다만 한국처럼 나이 자체가 계급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미국이 나이 문화가 없는 이유를 프런티어 정신으로 해석하는 경우를 보았다. 개척정신은 나이와 상관있는 것이 아니고 나이를 먹었다고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나이 든 사람들 스스로 나이를 무시한 세태가 미국식 자유로움의 모태가 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나이를 먹으면 당연히 힘들다. 에너지는 나이가 들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부족한 에너지를 나이 문화로 보충할 순 없다. 라나와 블랙웰은 나이가 성숙을 보장하지 않는다 했다. 똥물에 파도가 있다면 파도를 넘는 기술은 스스로 터득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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