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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명광 Jun 29. 2016

직장인의 원죄와 에덴동산

기업이 취준생에게 숨기는 비밀 20

원죄(原罪)는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최초의 인간 아담(Adam)과 이브(Eve)의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영어로는 Orginal Sin이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기독교적 개념이다. 혹시나 어떻게 원죄를 얻게 되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봐 요약해 보면 하나님이 흙으로 최초의 인간 아담을 지으시고 그의 갈비뼈로 그의 아내 이브를 창조하셨는데 한 가지 금지하신 것이 에덴동산 중앙의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브가 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선악을 구분하게 하는 열매를 먹고 그의 남편 아담까지 권유하여 선악과를 먹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최초의 죄를 짓게 된 것이다.  

<에덴동산의 사건은 직장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출처 : themessage.com>

영어로 아담(Adam)과 이브(EVE)는 히브리어로 아다마(Adamah)와 하와(Hawwah)인데 각각 '땅'과 '생명'을 의미한다. 이들의 이름에는 각자가 받은 벌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아담은 평생 땅을 일궈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노동의 벌을 이브는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의 고통을 겪어야 하는 벌을 받게 되었다.

지금도 아담과 이브의 후예들은 그 벌을 충실히 받고 있다. 다만 그 형태나 모습은 많이 변했지만 원형은 그대로다. 한 가지 크게 변한 것은 여자들이 생명의 잉태와 출산의 고통뿐만 아니라 땅을 일구는 노동의 벌도 현재는 같이 받고 있다는 것이다. 여자가 더 억울한 듯 하니 남자들은 가만히 있자.

아담의 원죄에 부여된 벌(罰)을 현대적 용어로 해석하자면 생산(production, 生産)이다. 생산이란 생활에 필요한 직간접적 물자이나 용역을 만들어 내는 행위인데 이 생산이 현대에 오면서 원형과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었다. 모두가 학교에서 배운 생산의 3요소는 토지, 노동, 자본이다. 세 가지 요소 중에 노동은 원형의 모습이지만 토지와 자본은 새로운 요소인데 이 두 요소는 안타깝게도 아담의 것이 아니다. 아담이 토지와 자본이 있었다면 굳이 노동을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 토지와 자본을 가진 자들은 유전자가 다르다. 아담의 후예 중에 유전자 변이가 나타나면서 X맨들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들의 이름은 자본가였다. 이 자본가들은 아담의 순수 혈통을 가진 노동자를 다스리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아담의 비극이 다시 시작된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X맨에게 감시 당하는 찰리 채플린, 출처 : channelawesome.com>

아담의 원죄에 대한 벌(罰)인 노동을 생업으로 하는 아담의 후예이자 노동자의 대표 격인 직장인의 원죄는 무엇일까?

직장인의 원죄는 No Money다. 자본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쫓겨 나왔을 때 알몸이었다. 빈털터리였다는 말이다. 결국 가진 것은 몸뚱이였으니 평생 노동을 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했다. 직장인들도 알몸이다. 가진 것이라곤 건강한 신체뿐이다. 이 몸뚱이 하나 바쳐서 원죄에 해당하는 벌을 받아야 하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다. 돈 없이 태어난 원죄를 가진 직장인들은 이 원죄에 따라 어떤 벌(罰)을 받고 있을까?

1. 육체노동

그 벌의 첫 번째는 육체노동이다. 건강한 몸을 바쳐서 일을 해야 하는 벌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 벌의 문제가 초기 건강하던 몸이 시간이 갈수록 더러운 몸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이런 더러운 몸을 만들어 가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초과근무다. 주 40시간 근무라는 율법서가 있기는 하나 높은 산에 있다 보니 현실에 작 적용이 되지 않는다. 아침 점심 오후에 그리 보이지 않던 팀장은 갑자기 퇴근시간이 돼서야 나타나서 종이 조각 하나를 던진다. '내일 아침까지 대책 브리핑하도록 준비해봐 봐..' 이런 욕 나온다. 같은 직장인인데 자본가의 총애를 받아 직장인이 아닌 척하는 무리들이 있으니 임원과 팀장들이다. 이들은 육체노동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감시하고 채찍질을 한다. 이들의 감시하에 40시간을 일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육체노동으로 인한 더러워진 몸을 더욱 더럽게 만드는 것이 있으니 회식이다. 물론 직장마다 부서마다 회식문화가 다르다. 다만 임원이나 팀장이 술을 좋아한다면 그곳의 회식문화는 명약관화하다. 1차는 가볍게 고기로 소주와 함께, 2차는 가볍게 어묵탕과 노가리로 맥주와 함께, 3차는 더욱 가볍게 정예 멤버들만 모아서 과일안주로 양주와 함께 한다. 4차는 상상하기 바란다.

이 외에도 육체노동을 채찍질하는 것들이 있으니 목줄이라고 불리는 이름표다. 이 이름표는 제목만 이름표일 뿐 사실 채찍이다. 출퇴근 시간을 1초 단위로 감시하고 점심시간을 정확하게 체크한다. 아이러니 한 것은 출근시간은 칼같이 체크하는데 퇴근시간은 그리하지는 않는다. 요즘은 점심시간을 없앤 기업도 있다는데 점심시간이 없으면 퇴근이 한 시간 빨라진 건가? 점심시간 없는 풍경 중에 걱정되는 그림..

'이 대리 어디 갔지?'

'네 점심 먹으러 갔는데요.'

'언제 갔어?'

'한 10분 되었는데요'

'급한 일이니 전화 좀 해봐'

<점심시간이 없는 직장인의 삶이란 팥소없는 찐빵이지 않을까? 대한민국에서는. 출처 : www.seoul.co.kr>


2. 감정 노동

육체노동과 함께 수반되는 것이 있는데 그 두 번째 벌인 감정노동이다. 감정 노동은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하여 일률적인 모습으로 정의하기도 힘들다. 그리고 개인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육체노동보다 강도가 셀 수도 있다. 육체노동 이상으로 몸을 더럽게 만들 수도 있다. 감정노동자라는 말로 일부 서비스 종사자들을 한정 짓기도 하는데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모든 직장인들은 감정노동자라고 볼 수 있다.

직무에 따라 다르겠지만 협력관계의 회사와의 문제에서 오는 감정노동도 있고(이를 전문용어로 갑질이라고 하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고객과 만나는 부서들은 블랙컨슈머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도 있을 것이다. 또한 직장 내에서 다양한 관계에서 오는(상사나 부하직원, 선후배, 남녀 간, 부서 이기주의, 개인 이기주의) 다양한 감정노동들이 있다. 아담의 첫 번째 감정적 스트레스는 알몸이었다는 것이다. 알몸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손으로 주요 부분을 가리기 시작했다. 직장인들의 감정노동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고객 앞에서 갑질 하는 협력사 앞에서 상사나 선배 앞에서 알몸으로 서있는 듯한 모욕감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감정노동자인 것이다.

감정노동이 육체노동보다 심각한 이유는 정신적 손상뿐만 아니라 육체적 손상을 동시에 유발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권력 앞에서 지록위마(指鹿爲馬)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 폐해는 상상 이상일 것이다.

<심장은 터질것 같고 뇌는 바스러질 것 같은 직장인의 삶. 출처 : goalsmantra.com>

이러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초월케 하는 곳이 있으니 에덴동산이다. 

에덴동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싸움이 없는 평화와 온화한 기후, 풍성한 먹을 것으로 배고픔이 없는 인간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많은 회사들이 에덴동산을 표방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세계적인 기업도 있고 우리나라의 중소 소프트웨어 회사는 회사에 수영장이 있는 회사로 꿈의 회사가 되기도 했다. 심지어 주 4일 근무제를 하는 회사도 있고, 모든 직원의 연봉이 8천만 원 이상인 회사도 있다. 직장인의 에덴동산이라 할만하다.

에덴동산의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회사는 진급을 선풍기에 날려 하기도 하니 싸움이 없을 것이고 온화한 기후인 땅에 회사를 짓기도 하고, 식당에는 매일 음식들이 넘쳐나기도 한다. 외형적인 조건만 보면 정말 에덴동산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이런 회사를 꿈꾼다. 다만 꿈은 꿈일 뿐이다. 이런 꿈의 회사들은 전체 회사들의 0.1%도 되지 않을 것이다. 회사에 먹을 것이 많다고 좋은 회사도 아니고 수평적 조직문화가 정착되었다고 좋은 회사는 아니다. 사실 회사라는 것이 꿈을 이루는 곳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월급을 받고 생활을 하는 곳이다. 취업 전부터 직장인의 모습에 대한 환상을 깨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상적인 접근은 더욱 실망을 크게 만든다. 좋은 회사란 자기가 만든 주관적 판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 주관에 맞는 회사를 골라 가는 게 에덴동산으로 가는 길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취업 전에는 직장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고 한다. 2011년 취업포탈 사람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칼퇴 후 자기계발이나 여유로운 취미생활을 하겠다는 환상을 가졌다고 한다. 왜 이런 대답이 1,2위였을까? 환상은 깨지기 때문이다. 12년 취업포탈 커리어 조사에  따르면 그 이유가 고스런히 나타난다. 환상과 다른 부분이 자기계발을 할 시간이 없고 취미생활을 못한다는 것이다.

 <환상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깨지지 않는다. 출처 : www.datanews.co.kr>


그렇다고 꿈의 회사를 지향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런 꿈을 지향하는 사람이 직장인이 아니라 자본가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가들도 원죄는 노동이다. 자본으로 노동을 샀다고 해서 원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니 자본가들이 Good Company를 넘어 Great Company를 지향해야 직장인들의 환상이 깨지지 않는 회사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물론 조직원으로서 직장인들도 지향하는 방향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직장인들의 원죄는 No Money인데 돈만 쫒지 않는다면 좀 더 에덴동산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예전에 직장인을 묘사해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낭떠러지에서 나뭇가지를 잡고 매달려 있더란다. 어느 날 도인이 나타나 구해주지는 않고 꿀물 한 방울을 입에 떨구어주고 가더란다. 매달림의 힘듬이나 떨어질 두려움도 있고 그 달콤함에 취해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다시 자신의 현재를 자각하고 힘들어하다가 또 어느 날 도인이 나타나 꿀물 두 방울을 주고 가서 더욱 취해 있는데 서서히 몸이 더 무거워지는 것을 느껴 밑을 내려다보니 여자 한 명과 아이 두 명이 달려 있더란다. 언제 또 도인이 나타나 꿀물을 주려나 생각하면서 계속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이 매달린 이는 직장인이란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라는 꿀물에 잠시 취해서 살아갈 뿐 낭떠러지에 나뭇가지를 잡고 있는 사람이 직장인인 것이다. 너무나 현실의 무게가 많은 이야기이지만 직장인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어쩌면 직장을 갖는다는 것은 에덴동산을 떠나오는 것일지 모른다. 세상에 발가벗은 채로 내던져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직장인들이 에덴동산으로의 복귀를 꿈꾼다. 많은 기업과 직장인들이 내가 있는 직장이 에덴동산이 되도록 원죄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꿈은 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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