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명광 Jul 04. 2016

취준생은 어쩌다 계륵이 되었나?

기업이 취준생에게 숨기는 비밀 21

청년 실업률이 10%를 넘나들고 있다. 실질 실업률은 25%에 이른다는 설도 있다. 취준생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일까?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게 아니라면 누구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나서야 하는 시기가 청년시절이다. 어떤 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어떤 이는 대학을 나와 누구나 부러워할 직장에 들어가고자 한다. 어떤 이는 취업보다는 창업을 하겠다고 길거리로 달려 나간다. 이도 저도 못하는 이들은 취포생이라 불리며 방바닥을 긁고 있다.

취업이 힘든 세상이다 보니 취준생은 무슨 죄인도 아닌데 얼굴을 들고 다니지도 못하고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는 곳에 가지도 못하고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 모임에는 선약이 있다며 거절해야 하는 것인가?

<신규인력 채용율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출처 : 경총, 이데일리>

취준생은 취업준비생의 약자로 취업준비생이란 경제생활 영위를 위해 직업을 갖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을 총칭한다. 취준생의 본질은 취업을 위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와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맞추어 자신의 스펙을 준비하고 사회와 기업이 원하는 모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취준생의 본질은 매우 자연스러운 자연인의 신분이다. 학교 교육을 마치고 사회로 나가야 하는 당연한 본질을 가지고 있는 자연인이다. 그 자연인이 취업이 되면 직장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취준생의 본질에서 취업이란 무엇인가? 취업이란 업을 취한다는 뜻으로 좁혀서 보면 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즉 직장을 갖는다는 뜻이다. 반대로 취업이 힘들다면 기업이 채용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채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량의 취준생을 생산한다는 의미와 같다. 기업이 취준생을 채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취준생은 죄가 없다는 것이다. 취준생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당연히 거쳐가야 할 시기에 맞이하는 이름표일 뿐이고 그 이름표는 취업이 되면서 다른 이름표 즉 직장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는 것이다.

<직장인이라는 이름표 하나 달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출처 : ban8.co.kr>

그런데 취업을 못하는 것이 꼭 취준생이 무엇인가를 잘못하는 것처럼 비치고 있다. 취준생들은 자신이 능력이 부족하다는 자기 비하를 하며 스펙을 하나라도 더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경험이 부족하다며 봉사며, 인턴이며 닥치는 대로 달려들고 있다. 누구보다 현재를 열심히 살고 있는 취준생의 존재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것은 취준생이 아니라 사실 기업과 사회인 것이다.

취준생의 존재는 어쩌다 계륵(鷄肋)이 되었나? 계륵 즉 닭갈비인데 먹을게 별로 없는 부위다. 먹자니 먹을 것도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존재다. 한국이 취준생들은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에 갖쳐 점차 계륵이 되어가고 있다. 어떤 구조적 요소들이 취준생들을 죄인으로 만들고 있을까?


1. 대한민국 경제 성장률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급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이러한 경제성장의 성과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있겠지만 그중에서 제일은 당연히 근면성실 그 자체였던 국민들의 힘이 컸다. 물론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정부나 기업들의 역할이 적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성장이 현재 취준생들에게는 독이 되고 있다. 저상장시기에 기업들은 채용을 늘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경제성장은 영원할 수 없다.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경제성장률은 정체하락하기 마련이다. 이제는 경제성장에 매달리는 정책으로는 제대로 된 해법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도입해도 늦을 시점에 여전히 정부나 기업들은 경제성장이 발전이라는 구시대적 유물에 집착하고 있다. 성장률이 낮아진 것이 취준생들의 잘못도 아니고 이제는 새로운 정책과 기술을 통해 성장해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저성장의 해법을 인건비 절감에서나 찾고 있다.

<한국은 저성장 시대로 진입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출처 : 한국은행 / 한경>


2. 대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

취업준비생들의 대기업 선호는 40%를 넘나들고 있지만 실질적인 대기업 취업률은 10%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준생들이 대기업에 올인하는 이유는 임금격차와 복리후생이다. 한국은 압축 경제성장 과정에서 대기업에 많은 특혜를 주었고 그 과실을 온 국민과 나누었느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이다. 현재의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는 경제의 활력을 잃게 만들고 있다. 대기업은 여전히 총수일가에 과도한 배당을 하고 있고 현금보유액은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국내 투자는 안중에도 없고 해외 투자만 지속하고 있다. 대기업의 내부자 거래는 여전하고 상장기업 1500여 개 중 1400개 이상의 기업은 부채총계보다 현금유보율이 높다.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이 줄어드는 이유는 과도한 아웃소싱과 원가절감 정책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취준생이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가고 싶어요 할지 의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중 9명이 경제구조가 대기업에 편향되어 있다고 응답. 출처 : 중소기업중앙회/KBIZ뉴스>


3. 온국민 대졸자 시대

대한민국처럼 고등교육 비중이 높은 나라가 있을까? 2015년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한국의 고등교육 비율은 68%로 7년째 1위를 기록하고 있고 평균보다 27%나 높다. 고졸 학력자 10명 중 7명 이상이 전문대 졸이상 이라는 의미다. 과거 한 부모들의 교육열이 성장의 밑바탕이었다면 현재의 교육 과잉이 취업대란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교육당국의 고민 없는 교육정책도 한몫하고 있다. 이름만 대학교인 부실 학교가 넘쳐나고 있고 학생들의 교육비 부담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양극화 현상도 한몫을 하고 있다. 교육이라도 받지 않으면 생활이 되지 않는 현실을 지켜본 부모들의 희망을 탓할 이유는 없다. 양극화를 방치한 정책당국에 더 큰 책임이 있다. 취준생의 절반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나라, 환경미화원 뽑는데 박사도 지원하는 나라, 공장이나 농촌은 이미 해외 근로자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나라, 온국민 대졸자 시대의 그림자다.

<국민의 10명중 7명이 대학생이라는데 왜 이리 많아야 하나? 출처 : KBS>


4.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의 종말

현재 한국의 양극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양극화의 주범들은 자기들은 범인이 아닌 듯이 양극화 해소를 외치고 있다. 법적으로는 평등이 보장된 사회이나 경제적으로 신분이 다시 나뉘고 있는 현실이다. 정치는 정치대로 경제는 경제대로 사회적 계급의 대물림 현상이 심각하다. 과거 불타는 교육열의 기저에는 신분상승의 기대가 있었다. 지금의 교육열은 사교육으로 대변되고 있고 경제적 강자들만이 사교육을 받고 있다. 사교육은 부의 대물림을 위한 하나의 통로로만 활용되고 있고 공교육은 그 힘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소위 SKY라는 국내 최고학부에는 일반고 학생의 비율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특목고 자사고 학생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특목고 자사고는 이미 경제적 강자들의 학교로 퇴색하였다.

<개천에서 원래 용이 나긴 힘들었다. 하지만 그 빈도는 더욱 줄것이다. 출처 : www.donga.com>

이러한 구조적 문제의 틈바구니 속에서 취준생들은 자신들이 어떤 길을 걸어온지도 모른 채 인생 실패자 같은 느낌으로 오늘도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기업이 채용을 줄이는 것이 기업의 탓만은 아니다. 이러한 현실을 만든 기성세대 모두의 잘못이다. 취준생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현명한 해결책이 지금 당장은 힘들지도 모른다. 지금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던 시대처럼 농업적 근면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따질 때도 아니다. 어느 시대보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시대를 앞서 나가는 정책과 투자가 선행되어야 하는 때다. 취준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희망 섞인 미래설계를 제시해야 할 때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부끄러움이 아닌가 싶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는 도덕적 부끄러움은 무시되고 내 이익을 위해서라면 남의 불편함은 안중에도 없고,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무시하고 덮어버리는 것이 통하고 경제적 약자들은 안하무인으로 홀대하고 강자들은 어디서나 호위 호식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전혀 부끄럼 없는 이상한 사회가 현실이다. 길가에 나가면 법규도 무시하고 법을 만들고 지키는 사람들의 일탈이 비일비재한 부끄러움 없는 사회가 취준생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취준생들은 여전히 열심히 노력하면 성과가 보일 것이라는 희망에 살고 있다. 그 희망을 꺾지 않는 사회를 기대하는 것은 요원할까?

<"A sense of shame is not a bad moral compass.”— Colin Powell>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인의 원죄와 에덴동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