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안데르스 에릭슨(1만시간의 법칙 원조)
책을 정성스럽게 읽는 경우는 몇 가지가 있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가 쓴 글이거나, 너무나 재미있어서 또는 내가 관심 갖는 분야인 경우 등등이다.
안데르스 에릭슨의 <1만 시간의 재발견>은 그 몇 가지 경우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성스럽게 읽어내려간 이유는 서평을 부탁 받아서다(서평에 대한 대가는 책 1권 뿐이다^^). 내가 서평을 쓸만큼 잘 이해하고 쓸수 있을까 고민하다보니 책을 받고 시간이 좀 지나버렸다. 평소에 잘 사용하지도 않던 형광펜을 손에 들고 중요하다 싶은 내용에 밑줄을 긋고 거기가 어딘지 알 수 있도록 페이지를 접어두는 노력을 기울이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서평이란 것이 독후감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니 더욱 그럴 수 밖에...
이 책을 읽기 위해 한국에 1만 시간 신드롬을 몰고 온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읽을 수밖에 없었다. 제목이 1만 시간의 재발견인데 <아웃라이어>를 읽지 않고 어찌 서평을 쓰겠는가?
책을 출간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작가가 누군지,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겠지만 사실 독자들에게 말초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제목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원제인 <PEAK>를 버리고 <1만 시간의 재발견>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신의 한수이며 비즈니스북스 마케터의 수많은 고민의 흔적이다. 분명히 원제를 유지했다면 미디어에서 흥미를 갖지 않아 홍보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서점에서도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을 거 같다.
한마디로 이 책을 정리하자면 1만 시간으로 대표되는 전문가의 성공을 위한 노력도 시간 투자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성공을 위한 목적의식과 그에 맞는 의식적인 연습 그리고 마음으로 그려내는 심적 표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 <1만 시간의 재발견>과 <아웃라이어>의 공통점이라면 성공을 위한 길에 어떤 것들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것이다. 소위 좋은 직업을 갖고 그에 대한 많은 보상을 받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성공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에 대한 분석인 것이다.
물론 말콤과 안데르스의 접근방법은 다르다. 그것은 두 사람의 직업의 차이이기도 하다. 말콤은 저널리스트이고 안데르스는 심리학자다. 직업의 차이만큼 글을 풀어내는 방법과 성공에 대한 관점도 다르다. 또한 <아웃라이어>가 성공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환경과 그에 따른 기회의 포착이라면 <1만 시간의 재발견>은 목적의식과 의식적인 연습 그리고 훌륭한 선생님이다. 읽기 난이도도 다른데 저널리스트인 말콤은 호기심이 발동되는 많은 사례를 중심으로 성공에 대해 말하고 있다면 심리학자인 안데르스는 임상실험의 결과들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고 있다. 읽기가 편한 것은 <아웃라이어>고 설득력이 강한 것은 <1만 시간의 재발견>이다.
어쩌다 보니 서평 두 개를 하고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다시 <1만 시간의 재발견>으로 돌아가 보자. 이 책의 부제는 노력은 왜 우리를 배신하는가이다. 그 의미는 노력을 해도 성공하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이다. 안데르스는 성공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많은 시간의 노력 속에 세 가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인 다음 세 가지다. 의식적인 연습, 심적 표상, 목적의식 있는 연습.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콤 글래드웰이 잘못 인용하였다며 쓴 성공의 잣대가 되어버린 1만 시간의 법칙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다.
책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나중에 읽을 독자들을 위한 모독이지만 책 안 사서 볼 사람들을 위해 위의 세가지만 간단하게 설명하고 가보자.
1. 의식적인 연습(Deliberate Practice)
인류 역사의 모든 부분에서 백 년 새에 학습을 통한 많은 발전이 있었는데 이 배경에는 효과적인 연습이 있었고 이러한 연습은 본질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데 그것은 작가가 1990년대에 정한 '황금 기준'인 '의식적인 연습'이다. 이 의식적인 연습이 없으면 1만 시간도 헛되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방법들인 집중 연습과 컴포트 존(인간이 편안함을 느끼는 상태)을 벗어나는 훈련으로 일정한 향상이 가능하지만 개인의 잠재력에 도달하는 것이 전부이고 최고에 이르는 경지에는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의식적인 연습'이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는 것인데, '의식적인 연습'이란 개인의 잠재력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력을 개발하고 만들어내 이전에는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의식적인 연습'인가?라고 묻지 말고 방법론이 궁금하다면 책을 읽으면 나온다.
2. 목적의식 있는 연습(Purposeful Practice)
'목적의식 있는 연습'이 '의식적인 연습'으로 가는 중간 단계라고 말하고 있다. '목적의식 있는 연습' 개인의 컴포트 존을 벗어나되 분명한 목표, 목표에 도달할 계획, 진척 정도를 추적 관찰할 수단을 가지고 집중하여 매진하는 것, 그리고 동기부여를 유지하는 방법을 갖는 것이다.
'목적의식 있는 연습'이란 더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3. 심적 표상(Mental Representation)
심적 표상이란 사물, 관념, 정보, 이외에 구체적이든 추상적이든 뇌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에 상응하는 심적 구조물이다. 간단한 예가 시각 이미지다. 어떤 이에게는 매우 간단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매우 복잡하다.
이러한 심적 표상은 수행능력을 키우려고 연습하는 모든 활동에서 활용이 가능한데 더욱 효과적인 심적 표상을 만들어내고 발달시키려는 노력이 '의식적인 연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설명하니 어려운데 자주 듣는 말로 '이미지 트레이닝'이라고 생각하면 쉽겠다.
위의 세 가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1만 시간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작가는 '1만 시간의 법칙'을 둘러싼 오해라는 주제를 통해 말콤 글래드웰이 최고 수준의 실력자가 되기 위해서 작가의 실험을 인용하여 1만 시간이라는 인상적인 구호를 제시했는데 몇 가지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1만 시간이라는 숫자는 특별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언급한 1만 시간은 바이올린을 전공한 20세까지의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로 최고로 가기 위한 중간단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둘째, 1만 시간은 실험 참가자의 평균일 뿐이라는 것이다. 모든 바이올린 연주자의 누적 시간이 1만 시간이 넘는다는 잘못된 주장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말콤 글래드웰은 '의식적인 연습'과 '연습'을 구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결론은 '의식적인 연습'이 있어야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데 말콤 글래드웰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특정분야에서 1만 시간만 보내면 누구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두 권의 책을 다 읽어보지 않는다면 누구나 들은 풍월로 대략 그렇게 해석하지 않을까 싶다. 대략 두 사람의 글을 나름 정리해 보면 아래 표와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생긴다. 한 사람은 김연아,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그의 엄마, 그리고 김연아의 스승인 브라이언 오서와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이다. 아마도 책 내용을 가장 정확하게 현실에 그려낸 사람들이다.
김연아의 꿈은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이런 정확하고 구체적인 목적의식이 김연아의 현재를 만들었다. 또한 김연아의 연습을 뉴스를 통해서 살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녀는 많은 부상과 어려움 속에서도 수많은 기술을 체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훈련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님은 웬만한 코치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자식의 집중교육에 힘썼다. 잠재력이 터지는 순간 오서와 윌슨을 만나 잠재력을 더욱 키워지고 발전시켜졌다.
<1만 시간의 재발견>을 읽는 동안 고수는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절감하면서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수많은 시간과 정성 그리고 목적의식 없이 현재에 대해 불평하지는 않았나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재능이나 천재성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에도 어느 정도 동의하게 되었다. 다만 모든 이에게 적용될까라는 의문은 여전하다. 안데르스는 천재성이나 재능에 대한 믿음은 오류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여전히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연습하는 인간, 호모 엑세르켄스는 능력을 개발하는 데 있어 타고난 자질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재능은 의식적인 연습을 통해서 개발이 가능하고 누구나 제대로 설계된 방식으로 훈련하면 최고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누구나 제대로 된 설계된 방식의 훈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콤 글래드웰의 성공에서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녀를 둔 많은 부모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416페이지에 담긴 많은 글들은 시간 없는 부모들에게는 목적의식이 있어야 다 읽을 수 있을 거 같다.
정상에 오르려면 보통 사람은 산은 보는 것이다라는 통념을 버려야 하고 정상에 오르려면 피땀어린 훈련이 필요하고 정상에 오르려면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정상은 보이지만 아무나 갈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