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또에 대하여

서귀포 시골개 엉또에 대하여

by 서귀인


엉또에 대하여 쓰려고 한다.




1. 엉또에 대하여—


정확히 말해서는 내 개는 아니다.


차도 근처의 감귤밭에 묶여있는, 시골 개이다. 다만 정기적으로 주 1~2회 정도 가서 사료를 잔뜩 부어주고 특식으로 고기를 삶아다주고, 간식을 주고, 두시간 정도 산책을 시키고 있다.




2. 이름에 대하여—


엉또는 지명 이름이다.


서귀포에는 엉또폭포 라는 곳이 있다. 제주 방언이었는데 뜻은 기억은 안난다.


여튼 그 근방에 있는 아이라서 그렇게 부른다. 이름을 짓는데 큰 고민은 안했다.


이젠 그 이름을 부르면 내게 달려온다.


그 순간이 무척이나 행복하다.




3. 물론 주인의 허락은 받았다.(아마도)


어느 토요일날 모처럼 엉또를 보러 갔는데 주인분이 계셨다.


“자꾸 오시는 분이죠?” 하셔서


“맞다. 개랑 좀 놀아도 되냐” 여쭈니까 웃으면서 그냥 (개를) 가져가라고 했다.


그건 어렵고 자꾸 가고 있다. 나는 상기의 대화를 엉또와의 만남 및 산책에 대한 허락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4. 관계에 대하여—


엉또를 보러간지는 4개월 차가 되었다. 매주 최소 1회, 많을 때는 5일연속으로 간 적도 있어서,


대충 따져보니 서른번은 만나러 갔다.


나는 엉또의 주인은 아니다. 그저 엉또가 꽤나 좋이하고 의지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나에게도 엉또는 그런 존재다.


내가 좀 더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5. 생김새에 대하여—


엉또는 굉장히 귀엽고 착하게 생겼다. 그리고 잘 웃는다.


털은 누렁색이 섞여있고 귀는 쫑곳하고 꼬리는 통통한데


기분이 좋으면 그 꼬리가 쪼륵 말려올라간다.


코는 분홍색이다.


엉또의 왼쪽 눈에는 눈물이 자주 흐른다. 그래서인지 (조커처럼) 눈물 자국이 나있다.


몇번 지워보려했는데도 안 지워진다. 이또한 야생마다운(?)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6, 성격에 대하여ㅡ


엉또는 애교가 많다. 신체의 한 부위가 꼭 나의


일부에 붙어있어야 한다.


나는 엉또를 무력화 시키는 법을 안다.


엉또의 귀에 후-하고 바람을 불면 엉또는 발라당 하고 배를 보이고 눕는다.


매번 할때마다 어김없이 발라당 한다.


자꾸 내 입에다가 뽀뽀를 시도한다. 찝찝해서 구충제를 정기적으로 먹이고 있다.




7. 호불호에 대하여ㅡ


호: 엉또는 산책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초창기 산책 훈련이 지금보다도 덜 되었을 때는 시도때도 없이 힘으로 줄을 당기고, 길을 걸을 때도 Z자로 걸었다.

그런 날이면 녹초가 되어 엉또를 보고 집에 돌아와서는 씻을 힘도 없어 방바닥에 널브러져 당분을 마구 섭취했다.

지금도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요즘은 집에 돌아오면 씻고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을 힘이 남아있다.




불호: 엉또는 보기와 다르게 아주 예민한 구석이 있다.


일단 입이 매우 짧다. 자기가 먹어 본 것이 아니면 잘 먹지 않는다. 시저를 안 먹는 개는 처음 봤다.


그리고 자기 밥그릇을 원래 있던곳에서 옮기면 어김없이 와서는 밥그릇에 영역표시를 한다.


지 좋으라고 더 좋은 자리에 옮겨주는건데 이보다 더 예민할 수가 없다.




8. 나에 대하여ㅡ


엉또를 본건 출근길이었다.


나는 출근길 버스 창문으로 엉또를 처음 보았다.


처음에는 시선을 길게 두지 않았다. 시골에서 방치되다시피 키워지는 개에게 시선을 오래 머물수록 힘들어지는건 나니까. 근데 어느 추운 겨울날 밥그릇이 엎어져 있는걸 보았다.


그리고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밥그릇이 그 자리에 그대로 엎어져있었다.


더는 모른척 할 수가 없어서 바로 그날 퇴근길에 먹을걸 사들고 엉또를 보러갔다.


엉또는 처음본 나를 경계했고 멍멍 짖었지만 손에 먹을걸 보여주자 받아먹었다.


그 후로 딱 세 번 더 보러 갈때까지만 엉또는 나를 보고 짖었다.




이후에는 내가 가면 꼬리를 흔들고 발라당 누워보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내가 제주에 머무는 한 엉또를 계속 챙겨주기로 다짐했다.




9. 앞으로에 대하여ㅡ


엉또를 위한 10킬로짜리 사료포대가 도착했다.


두번째 구매이다.


엉또와 함께하는 시간이 내게도 무척이나 소중하다.


생물학적으로 서로 다른 종이 서로에 대한 호의와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쌓아간다는건 신기하고도 아름다운 일이다.


이번 주말에도 먹을걸 바리바리 싸들고 엉또를 보러 갈 예정이다.


언젠가는 엉또에게 꼭 바다를 보여주고 싶다.


그때까지 엉또가 지금처럼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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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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