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 꼭 나쁜 걸까? 결혼도 하나의 관계일 뿐인데"
10명이 결혼하면 6명은 이혼한다는 요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0명이 다시 결혼하는 사회에, 그런데도 여전히, 이혼은 '나쁜 것' 혹은 '실패'라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에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
소장각 드라마라는 입소문을 듣고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설 때쯤부터 보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그야말로 역주행의 아이콘인 셈이다.
각자의 상처를 가진 드라마 속 네 명의 남녀는 그 상처를 다 치유하지 못한 채, 혹은 상처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결혼한다. 하지만 깊은 관계에서는 '나 아닌 나'를 연기 할 수 없는 법.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는 상처와 그로 인해 불거지는 갈등 때문에 그들은 이혼을 결심한다.
극 중 휘루(배두나)는 너무 털털해서, 유영(이엘)은 너무 조심스러워서 힘들다. 휘루의 속내는 석무(차태현)를 깊이 사랑하지만 그의 섬세하다 못해 비판적이고 짜증스러운 성격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사사건건 자신을 질책하는 석무가 과연 자기를 사랑하는건지 의심스럽다. 유영은 장현(손석구)에게 사랑받고 싶지만 사랑받길 원하는 여자는 약하다는 삐뚤어진 관념 때문에 바람피우는 장현에게 한 마디 화조차 내지 않고 "괜찮다"는 말 뒤에 숨는다. 아직 자신의 상처 조차 보듬지 못해 그를 깊이 볼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서로를 통해 자신들의 문제를 바라보고, 서로의 방식을 배워 자신의 상처를 치유한다. 석무는 좁은 방안에 갇힌 것 같은 자신의 비판적인 성격을 고치려 노력하고, 장현은 버림 받을지 모른다는 공포로부터 벗어나 유영에게 헌신하자고 선택한다. (장현을 보며 바람둥이도 언젠가 자신의 여자에게는 잘 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시길. 대부분의 바람둥이는 그냥 바람둥이일 뿐.) 휘루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용기를 내고, 유영은 장현에게 사랑받길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받아들인다. 나아가 장현이 변하길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걷기로 마음 먹는다.
결국 그들이 다시 사랑하고 다시 결혼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나지만 드라마는 세상에는 n개의 사랑과 n개의 관계가 있음을 잊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그들의 사랑의 방식이 정답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우리만의 사랑을, 우리만의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얘기다.
유영과 장현의 결혼식 날, 할머니의 주례사는 이런 드라마의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자신은 오래 전에 이혼 했지만, 괜찮다고. 결혼의 모양은 아니지만 다른 모양의 가족이 생겼다고. 우리 모두는 다양한 관계를 맺었다, 헤어졌다 하며 살아가고, 결혼도 그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맞다. 결혼은 하나의 제도로 시작됐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개념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물론 사회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제도를 적절히 이용하고 혜택도 누리면 좋겠지만, 제도가 감정을 결정해주지는 않는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상대를 사랑하고 곁에서 챙겨주고 싶다는 나의 감정과 선택이 먼저이고, 때마침 그런 선택에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 결혼이라는 제도를 '이용' 한다는 접근이면 어떨까. 훨씬 가볍지 않나.
우리 부부는 가족들과 아주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해 조촐하게 결혼식을 치렀다. 그 후 혼인 신고를 하러 가자는 남편에게 며칠만 기다려 달라며 차일피일 미뤘던 기억이 난다. 얼떨결에 결혼식은 치렀지만 남편과 나 사이에 어떤 감정적 변화도 없어서 나는 좀 놀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편도 나도 그런 뜻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사랑을 혼인 신고라는 제도로 증명해야만 하는 것 같아 나는 괜한 심술을 부렸었다. 결혼을 했으니 더 사랑하게 된다거나 혼인신고를 했으니 없던 책임감이 생길리는 만무한 일 아닌가. 그럼 대체 왜 해야하지? 라는 질문이 내 안에 남았던 거다. 물론, "자기나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서로의 법적인 보호자가 아니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남편의 말에 설득돼 결혼식 후 일 년 만엔가, 혼인 신고를 했지만 말이다. 내가 지나치게 현실적인 건가. 남편의 말은 나에게는 혼인 신고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결혼 5년 차에 접어든 내 생각은 이렇다. 제도든, 가족이든 상관 없이 오롯이 서로에게 집중하며 둘 만의 이야기를 단단하게 꾸려갈 때,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니라, 당신과 내가 만드는 사랑이라는 울타리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철학자 강신주가 말했듯, 사랑이라는 무대에 그대와 나 아닌 다른 누구도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이 우리의 사랑을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덧.
극중 바람둥이 역할로 나온 손석구씨 정말 매력적임. 말도 안되는 행동만 하는 캐릭터가 때때로 이해되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조금 안쓰러워지더니 섹시한데다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오 마이 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