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그런 타임 슬립 드라마라 생각했다. 그런데 '김혜자 연기가 장난 아니라던데?', '남주혁 눈빛 봤어?' 들리는 소문에 스리슬쩍 보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월요일만 되면 혜자를 만날 생각에 설렜다.
우리 혜자는 평범한 아이다. 아나운서가 될 만큼 똑똑하지도, 야무지지도 못하지만 솔직하고 씩씩하다. 사랑 앞에서는 늘 박력 있고, 누구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는 햇살 같은 마음도 가졌다.
그래서였을까. 준하는 똑똑하고 야무지지만 늘 외로웠는데, 혜자는 그런 준하를 듬뿍 사랑하게 된다. 그의 불우한 가족사도, 가난한 형편도, 혜자에게는 아무런 방해물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들이 불행을 겪어야 할 어떤 이유도 없다는 것을. 준하는 이미 충분한 불행 속에 살아왔고, 혜자 역시 그를 보듬어 가정을 꾸린 것에 만족하며 행복하다. 하지만 삶이란, 언제나 우리가 예상치 못한 질곡을 숨겨둔다.
혜자는 준하의 아픔까지도 사랑했기에 준하에게 닥친 아픔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한다. 혜자는 준하를 보내는 바닷가에서 말한다. "평생 외로웠던 사람, 혼자 가게 해서 미안하다." 고. 혜자에게는 준하를 사랑하는 일이 곧 숨이고 삶이었기에, 준하가 떠나간 혜자의 삶은 그저 의무고 굴레가 돼 버렸다. 준하의 깊은 아픔을 치유해주었던 그들의 소박하고 반짝반짝한 가정은 마치 바싹 마른 나무 덩쿨처럼 바래간다.
알츠하이머를 앓으며 자신의 괴로운 삶의 궤적을 지우게된 혜자는, 스스로 아들 부부의 딸이 되어 그들에게 못다한 사랑을 준다.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도, 차마 전하지 못했던 사랑도 남김 없이 쏟아낸다. 드라마 초반, 아빠를 살리기 위해 갑자기 50년을 늙어버리고도 혜자가 어쩌면 저렇게 효녀일까 생각했는데, 그건 엄마인 혜자가 아들에게 주는 사랑이었다.
그렇게 알츠하이머가 선물해 준 한바탕 꿈에서 깨어났을 때, 혜자는 다시, 젊은 날의 자신과 마주한다. 어쩌면 혜자의 마음은 준하를 잃고 어린 아들의 손을 잡은 채 바닷가에 서 있던 그 날에 멈춰버렸는지 모른다. 그 자리에서 딱딱하게 돌처럼 굳어서 가라앉아버렸을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필코, 주어진 생을 버티고 살아낸 혜자는 준하를 보냈던 그 바다, 그 자리에서 비로소 과거의 자신과 다시 마주한 것이다. 두려워서, 괴로워서, 참고 참기만 했던, 마치 죽은 것처럼 살았던 고통 속의 자신과 마주 선 것이다. 정말 아픈 것은 과거의 혜자일까, 지금의 혜자일까.
그리고 마침내 나지막히 읊조린다. "내 인생이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고, "하지만 기억을 잃게 된 지금, 그 모든 순간들이, 불행했던 기억마저도 소중했음을 알게 됐다." 고 말이다. "그러니 지금 괴로워도 우리 모두는 자신 앞에 주어진 생을 눈이 부시게 살아갈 자격이 있다." 고. 알츠하이머라는 질병 조차도 혜자에게는 그녀의 삶을 완성하게 해 준 계기일 뿐이었다. 굳어버린 줄 알았던 그녀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뜨거운 사랑이 숨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혜자의 삶을 통해 누구도 운명처럼 다가오는 고통을 피할 수는 없으며, 결국 그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삶을 충분히 살아가는 것만이 자신의 운명을 끌어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삶의 길에, 들꽃처럼 손을 흔드는 사람들이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버텨낼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잘나지 못해서 오히려 서로의 아픔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 혜자의 곁에는 못난 점도 부끄러워할 필요 없는 친구들과, 다시 태어나도 또 사랑하고 싶은 가족들, 그리고 죽음이라는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함께 하는 요양원 동료들이 있다. 그들과 함께여서 혜자는 마지막까지 혼자가 아니다.
기어이, 눈 오는 날 길을 쓸며 아들의 마음 속 깊이 자리한 아픔까지 따뜻하게 품어준 혜자는 이제 미련 없이 이 생의 삶을 떠나 준하에게 향한다. 서로가 가장 애틋했던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기다렸다는 듯, 잘할 줄 알았다는 듯 준하는 두 팔 벌려 혜자를 반긴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삶도 사랑도 완성된다. 고마운 시간이었다.
덧. 웃음의 하드캐리 BJ 영수. 알츠하이머인 혜자가 25살인줄 알 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은 바로 당신, 바보 오빠였다. 바보 오빠 앞에서 혜자는 가장 혜자다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