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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Jan 21. 2019

내가 바보 같을 때

맘에 들지 않는 내 모습, 어떻게 해야할까?



결혼을 하고 첫 시댁 행사. 남편과 잘 차려입고 어색한 마음으로 부산역에 내렸어요. 태생이 집순이인 저는 부산에 처음 가보는 거였는데요. 남편의 사촌형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나선 길이었죠. 웨딩홀을 앞에 두고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누가 제 어깨를 톡톡 두드려요. '설마...' 했는데, 역시는 역시에요. 저에게 길을 물어보시는 아주머니! 심지어 부산 사투리를 정확히 구사하시는 분인데, 서울을 떠나 살아본 적 없는 제게 길을 물어보시네요. 네, 저는 그 유명하다는 '세상 편한 얼굴' 을 가졌어요.


심지어 외국에 나가서도 내비게이션인양 중국어에, 일본어로 길을 물어보는 사람을 만나는 저는 전천후 만능 얼굴을 가졌어요. 동네 아기들은 저희들 친구라도 만난 듯 저에게 옹알이로 말을 건네고, 크기가 아주 작은 강아지도 무서워하는 저에게 동네 강아지와 개들은 사정 없이 애정을 표하죠. 얼굴만 편해보이는 건 아닌가봐요. 사람 이야기 듣는 것도 좋아하고 마음도 약해서 누가 힘들다고 하면 앞도 뒤도 없이 일단 상대방이 이해돼버리니, 얼굴도 마음도 접근하기 좋은 사람인 거죠.


이런 제가, 막상 이런 제 자신을 좀 부담스러워했다면 이상한가요?






저는, '누구도 '천사'는 아냐', 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살피고 돌보게 되는 제 자신이 불편했어요. '아닌데 나 되게 시크한데, 나 남한테 관심 없는데, 난 나밖에 모른다고!' 20대의 대부분을 저렇게 나 자신과 싸우는데 썼어요. 저는 누구든 상처 주기도 싫고, 이해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요. 그 말의 숨은 뜻은, '나는 상처 받기 싫고, 이해받고 싶다'는 의미였어요. 하지만 막상 '나'는 없이 '너'만 있는 것처럼 행동해왔던 거에요. 그러니 관계들이 점점 부담스럽게 느껴졌어요. 상대를 이해하고도 바보같았다고 자책하는 제가 피로했구요. 저는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매일 남만 이해해주는 나, 남에게 상처주지 않으려고 내가 힘든 걸 몰라라하는 나였으니, 제 자신이 저를 예뻐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수없이 자신과 싸우며 저는 조금씩 저를 받아들이게 됐어요. 특히, 작은 말과 표현에도 상처받는 나를, 한 없이 약해져서 누구에게든 이해받고 싶은 나를, 어쩌면 상처 받았을, 어쩌면 이해 받지 못했던 기억에 힘들어 하고 있을 나를 제약 없이, 한계 없이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다른 누구에게도 그 이해와 사랑을 바라지 않고, 우선 내가 그 애정을 나에게 주기로 했죠. 그렇게 비로소 저와 대화하는 방법을 배웠고, 한 걸음씩 자신과 '함께' 살아가기 시작했죠. 나와 잘 살아가는 법을 익히자 많은 갈등이 자연스럽게 해소됐어요. 가장 큰 변화는 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제 애정을 바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는 거에요. 애정이야말로 무조건적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상대도 나도 함께 행복할 수 있어야 진짜 의미가 있는 거죠. 더이상 저의 애정을 싼 값에 베풀지도, 물론 상대방의 애정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도 않게 됐죠. 마치 제 마음 안에 아주 민감한 경보장치라도 생긴듯 마음을 주고 받는 일에 더욱 세심해졌어요.






시크한 내가 되는 것도, 도도하다 못해 차가워서 누가 쉽게 길조차 물어보기 어려운 인상을 갖고 싶은 것도 여전히 제 로망이지만, 뭐, 이번 생에 이뤄질거라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아요. 저는 여전히 저이고, 제 얼굴과 인상도 여전해서요.


대신 저는 시크할 정도로 길을 정확히 안내해주고, 도도하다 느껴질 만큼 저 자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그것도 가장 약한 제 모습 그대로요. 그리고, 놀랍게도 이것으로 충분하네요.




이런 질문을 마주했다면, 어디를 걸어도 좋겠죠.
이미 내 마음 속을 걷기 시작했다는 뜻이니까요.

저는 지하철보다 버스를 좋아해요.
같은 코스라도 오늘은 버스를 타보는 건 어떨까요?
덜컹거리는 버스의 리듬에 몸을 맡긴 채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저절로 나를 사랑하게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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