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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Feb 03. 2020

들어가며

그건 일종의 '행복'에 대한 강박이었다. 내 삶에 더이상은 불행이나 고통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오기나 집념 같은 것. 그러나 슬프게도, 삶에서 일어나는 일의 대부분은 사실 '내 손'에 달려 있지 않았다. 그저 일어나버리는 일들, 그냥 나타나는 불행,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고통. 더구나 이 사회에는 부조리와 슬픔이 너무나 많다. 


은유는 "불행에 삶의 자리를 내어주자 싸우지 아니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적었다. (은유,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서해문집) 이 문장을 몇 번이고 곱씹는다. 글자들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불행이란 단어에 움찔하고 내 심장이 아파오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불행에게 내 삶 속으로 들어오라고 완전히 자리를 내어주지는 못한 것 같다. 지금도 때때로 울컥하고 분노하고 힘들어하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렴풋이 불행과 행복은 공존할 수 있다고, 삶에는 뻔한 선택지 말고 언제나 새로운 선택지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그건 오기나 집념이 아니라, 내 자신을 속이는 정신 승리가 아니라, 내가 건너온 수많은 일들이 나에게 말해주는 응원 같은 것이다. 나의 과거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따뜻한 위로 같은 것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결국 

일상이라는 범위 안으로

흡수되고 만다. 


삶이란 일상이라는 권태를 견디는 일. 


존재가 죽음이라는 궁극으로 소멸하지 않는 한,

아니 소멸해버린다 해도,

결국은 그 사실 마저도 일상 안에 흡수되고 마는 잔혹한 질서. 


이는 삶의 허무를 견디기 위해

선지자들이 고안했을

아름다운 비극, 

혹은 고약한 핑계.


부단히 날을 세우고

갈고 닦지 않는다면

슬픔이나 불편함쯤은

얼마든지 일상으로 치부되고 말 것이므로, 


사려 깊게 말하고

오래도록 바라보는 일을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고 들춰보는 일을 멈춰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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