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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이별의 푸가>

by 이상희

만약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어떤 사람이 나이는 먹어도 마음은 늙지 않고 '세상이 원래 그래'라며 늙은이처럼 뻔한 소리를 늘어놓지 않고 인연의 맺음과 헤어짐을 처음처럼 대한다면. 그러면서도 언제나 책읽기를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세상과 사람을 사유한다면. 그 사람이 글을 쓴다면, 이 책이 아닐까.


그는 이미 세상에 없는데, 책 날개에 붙은 사진 속에서 그는 이미 늙어버렸는데, 왜 그의 글에는 소년이 혹은 청년이, 그런데 늘 고민하고 생각하는, 그래서 마치 수 백년은 살아온 것 같은, 하지만 분명히 소년이고 청년인 누군가가 버젓이 살아 있는가.


내가 '겪어 본'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라고, 나도 이렇게 사랑하고 헤어진다고, 산다는 게 끊임 없이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고, 그러다 헤어지고 또 사랑하기를 반복하는 일일 뿐이라고, 그러니 너무 괴로울 때면 너무 괴로워하라고, 나도 그러겠노라고.


이 가슴 절절한 연서에 굳이 <이별의 푸가>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훌쩍 떠나버린, 책 안의 모든 이야기가 마치 그의 부재로 완성되는 것 같은 신비로운 경험. 딱딱해지지 않고 고정돼버리지 않고 그래서 다치고 아프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아름답게, 그렇게.




그러나 두 번 다시 해후할 수 없는 이별도 있다. 그때 추억은 매복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우리를 습격한다. 어느 거리, 어느 장소, 어느 소리, 어느 물건 속에 숨어 있다가 급습한다. 그리고 육체의 어느 한 곳에 적중한다. 우리는 고통으로 허리를 굽히고 쓰러진다.

적중당하는 육체의 부분은 저마다 다르다. 통점도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가슴을 움켜쥔다. 누군가는 편두통이 오고 누군가는 어금니가 아프다. 그러면 나는? 나는 몸속의 한 곳에 매듭이 묶인다. 가슴이 아니라 창자들이 있는 어느 한 곳이 질식당하는 목처럼 졸린다. 추억의 아픔은 나에게 창자가 단단한 매듭으로 꼬이는 통증이다. -김진영, <이별의 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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