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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Oct 14. 2020

김진영, <이별의 푸가>

만약 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어떤 사람이 나이는 먹어도 마음은 늙지 않고 '세상이 원래 그래'라며 늙은이처럼 뻔한 소리를 늘어놓지 않고 인연의 맺음과 헤어짐을 처음처럼 대한다면. 그러면서도 언제나 책읽기를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세상과 사람을 사유한다면. 그 사람이 글을 쓴다면, 이 책이 아닐까.


그는 이미 세상에 없는데, 책 날개에 붙은 사진 속에서 그는 이미 늙어버렸는데, 왜 그의 글에는 소년이 혹은 청년이, 그런데 늘 고민하고 생각하는, 그래서 마치 수 백년은 살아온 것 같은, 하지만 분명히 소년이고 청년인 누군가가 버젓이 살아 있는가.


내가 '겪어 본'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라고, 나도 이렇게 사랑하고 헤어진다고, 산다는 게 끊임 없이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하고, 그러다 헤어지고 또 사랑하기를 반복하는 일일 뿐이라고, 그러니 너무 괴로울 때면 너무 괴로워하라고, 나도 그러겠노라고.


이 가슴 절절한 연서에 굳이 <이별의 푸가>라는 이름을 붙여놓고, 훌쩍 떠나버린, 책 안의 모든 이야기가 마치 그의 부재로 완성되는 것 같은 신비로운 경험. 딱딱해지지 않고 고정돼버리지 않고 그래서 다치고 아프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아름답게, 그렇게.




그러나 두 번 다시 해후할 수 없는 이별도 있다. 그때 추억은 매복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우리를 습격한다. 어느 거리, 어느 장소, 어느 소리, 어느 물건 속에 숨어 있다가 급습한다. 그리고 육체의 어느 한 곳에 적중한다. 우리는 고통으로 허리를 굽히고 쓰러진다.

적중당하는 육체의 부분은 저마다 다르다. 통점도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가슴을 움켜쥔다. 누군가는 편두통이 오고 누군가는 어금니가 아프다. 그러면 나는? 나는 몸속의 한 곳에 매듭이 묶인다. 가슴이 아니라 창자들이 있는 어느 한 곳이 질식당하는 목처럼 졸린다. 추억의 아픔은 나에게 창자가 단단한 매듭으로 꼬이는 통증이다. -김진영, <이별의 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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