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어려운 시기가 오래 지속되고 있다. 나는 대단한 여행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행을 두려워하거나 어렵게 생각하는 편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축인데, 막상 여행이 어려워지다보니 불쑥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그 감각을 가지고 '내가 여행을 좋아했었다'고 나도 모르는 나를 재창조해내지는 않는다. 그저 낯선 도시의 낯선 공기가, 밤거리가 그리울 때면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여행기를 슬쩍 꺼내 읽어보곤 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라고 쓰고 나니 인간이란 참으로 부족함이 많은 동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다 든다) 익숙한 곳에서는 대체로 익숙한 생각만을 하게 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멀리 떠나거나 전혀 다른 길을 걷거나, 완전히 낯선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한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던 것들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존재. 그래서 우리는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전혀 낯선 곳에 나를 내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하는가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이라는 건 매일 여행하며 살 수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여행의 대체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책을 통해 지구 반대편을,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일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앉은 자리에서 어디든 갈 수 없다면,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인거라고. 뭐, 대충은 이해하는 바다. 어떤 여행, 어떤 낯섦은 '내'가 그곳에 있다는 자의식만 가득 키워주기도 하니까. 내가 떠났던 첫 여행처럼.
내가 처음으로 혼자 떠났던 여행지는 경주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경주라는 도시를 좋아한다. 경주 터미널에 내리면 한 눈에 시내가 다 내다보인다. 고도제한으로 건물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람들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듬성듬성 천 년도 더 된 유적들이 서 있는 모습은 몇 번을 봐도 묘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역사라는 게 '실재'했었다는 걸 믿지 못하던 나는 경주를 다녀온 후, 어쩌면 신라라는 나라는 정말로 존재했을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위대한 역사학자들과 저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 . 죄송합니다. 제가 의심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초겨울이었고, '미세먼지' 같은 단어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나는 아직 이십대였고, 어쩌면 꽤 풋풋했다. 초보 여행자는 '여행'이라는 행위에 과도한 의미부여를 한채로, 그래서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채로, '나 혼자 서울에서 여행 왔습니다.'라는 팻말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붙인채로 3박 4일을 헤매었다. 저녁이면 '첨성대 찜질방'에서 가족 단위 손님들 틈에 끼어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보았다. 이상하게도 3일 내내 대형 티비에 그게 틀어져 있었다. 여차저차 아무튼, 구준표가 짠 하고 나타나면 "엄마야, 진짜다." 하며 옆에 있는 사람의 어깨가 빠지도록 두드리던 아주머니들 틈에서 묘하게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잠이 들곤 했다.
첫 여행에서 내가 느낀 건 뭐랄까, 그냥 어딜 가도 '나는 나'일 뿐이라는 거였다. 엄청난 깨달음이나 삶을 뒤바꿀 만한 로맨스 같은 건, 없었다. 문무대왕릉이 있는 감포 바다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구불구불 아름답기도한 길을 왕복하며 텅 빈 버스에 앉아 있으면,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배는 왜 이렇게 고픈가' 그런 생각들만 들었다. 잘 모르는 그 누군가의 말이 맞았다. 앉은 자리에서 어디든 갈 수 없다면,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인거다.
그래서 정말 아무 것도 남지 않았느냐 묻는다면, (거 참 답답하구만) 아까 말했듯 '나는 나'일 뿐임을 알게 되었고(궁색하다), 혼자 여행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두 가지면 충분하다고 늘 생각해왔다. 뭐 어쩌겠나. 그게 진짜인걸.
"오히려 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모두 서울에 있었다. 전광판을 보며 나는 지난 세월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편안한 집과 익숙한 일상에서 나는 삶과 정면으로 맞장뜨는 야성을 잊어버렸다. 의외성을 즐기고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한 자신을 내려다보며 내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즉각적으로 감지하는 감각도 잃어버렸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나날들에서 평화를 느끼며 자신과 세계에 집중하는 법도 망각했다. 나는 모든 것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골똘히 생각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본문 중)
작가는 자신의 삶이 변하리라 예감한 순간에(혹은 변화시키리라 마음먹은 순간에) 아내와 함께 시칠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그는 특유의 관찰력과 필력으로 자신의 내면과, 삶과, 여행지에서의 순간순간을 버무려 스스로의 삶이 변화한(혹은 삶을 변화시킨) 그 시절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여행기로 완성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금 그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15분 만에 완성 가능한 요리 목록을 선보이고, 길냥이부터 집냥이까지 여러 고양이들의 집사를 자처하며, 코로나19가 끝나면 만나자는 약속은 꼭 '혁명정부의 채권'같지 않냐면서도 독자들과 유쾌하게 그런 약속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가 만약, 그 때, 시칠리아로 떠나길 선택하지 않았다면, 분명 그는 지금의 그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 우리는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이런 순간에는 한 번쯤, 내 발걸음이 운명을 만들어가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꽃보다 남자와 첨성대 찜질방과 감포 바닷가와 석굴암을 오르던 그 언덕 길이, 내 삶을 조금은 바꿔놓았던 건 아닐까. 달라진 것도 얻어온 것도 없다고 투덜거렸지만, 실은 내 안의 어느 한 조각은 그 여행으로 인해 뒤바뀌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그 작은 조각들이 모여서 지금의 내가 된 건, 아닐까.
아무튼, 코로나19가 끝나면 나도 꼭 여행을 떠나겠다는 혁명정부의 채권 같은 다짐을 발행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