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책>이라는 제목과 걸으며 시를 쓰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책이다. 어떤 말을 더 보탤 것도, 보태서 더 좋으리라고 생각하기도 어려운, 잘 정돈된 언어들. '책을 덮고 나면, 아름다운 시들만이 발자국처럼 남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미 내 마음에 시로 와 닿은 말들. '앞으로는 나를 뺀 이야기를 계속 써나가고 싶다.'는 바람을 기대하게 되는 글들. 더해지는 모든 말이 오지랖일 뿐이라서(서평이라는 게 원래 좀 그런 장르이지만) 망설이다가, 그래도 그냥 보내기 아쉬워서, 가슴이 뭉근할 정도로 공감됐던, 어쩌면 꼭 내 마음 같다고 느꼈던 구절들을 몇 가지만 골라서 옮겨 보겠다. 물론 이건 나의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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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고통 위에도 계절이 지나간다. 계절마다 다른 모자를 쓰고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는 어쩌면 바뀌는 모자를 알아채주는 정도의 일만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가 쓴 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느 모자를 쓰든 그녀의 아름다움은 훼손되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나 더 흐르든 "이제 모자를 좀 벗는 게 어때?"라고 말하지 않기. 그 응시와 침묵이 내 편에서의 유일한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바라보고 묵묵히 살아내야만 하는 것들이 분명 있다. 그가 아무리 큰 모자를 쓰고 있어도 그의 아름다움은 사라지지 않음을 알아보는 일, 그 모자를 벗으면 더 아름다울 거라고 나의 욕심을 부리지 않는 일, 그런 응시와 침묵만이 가능한 일들이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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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불행이 작정하고 이들에게 덤볐다고 오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내가 배운 것은, 비정상적인 외모가 흉함을 만들지 않고 불행이 인간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 겉으로 드러나는 조건에 무너지지 않고 마음의 격을 지킨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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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봉지에서 포도 한 송이를 꺼내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더 주어도 괜찮지만, 매번 주고 싶은 만큼보다 덜 주는 것이 내 식의 배려였다."
남김 없이 주고 싶은 것이 사랑이라면, 매번 주고 싶은 만큼보다 덜 주는 것은 배려다. 그러니까 모두 주고 싶은 마음과 주고 싶은 만큼보다 덜 주려는 애씀 사이의 공간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부드럽고 온화하게 만든다. 내가 내어줄 수 있는 것을 전부 주고 나면, 나는 마치 당신을 나에게로 바짝 붙여 앉히는 기분이 된다. 당신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어버리는 것 같달까. 내가 준 것들로부터 도망치지 못하게 만든달까. 언젠가부터 주면서도 안 준 척, 다 준 것 같지만 실은 다음에도 줄 수 있는 걸 조금씩 남겨두게 된다. 당신이 그걸 받고도 언제든 나를 잊어도 미안하지 않게 하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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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등을 돌려 멀어지자 아저씨는 쌓아둔 상자 쪽으로 절룩이며 걸어갔다. 상자에서 참외를 하나씩 꺼내 어둑한 알전구 밑에서 꼼꼼히 돌려 보고는 봉지에 넣었다. 여섯 개를 넣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러고는 내게 내밀며 말했다. "좋은 것만 줬어요."
알이 더 실하고 먼지가 덜 쌓인 것을 주려고 일부러 수고하는 마음. 그것을 씹어 먹으며 허기진 날들을 순하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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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겪고서 아무 일도 없는 듯 살 수는 없어, 그건 거짓된 삶이야, 하지만 이제 볕이 보이네, 라고 생각했다. 아니, 거의 중얼거렸다.
다시 이전과 같이 나의 미래를 낙관하고 마음을 활짝 열어 사랑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해도 끝과 죽음을 먼저 고려하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늘 속에 몸을 둔 채로 볕을 보는 사람, 내 몫의 볕이 있음을 아는 사람, 볕을 벗어나서도 온기를 믿는 사람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뭔가를 겪고(그건 대부분 아픈 일들이겠고) 달라져버린 자신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어떤 것도 부정하지 않고 어떤 것에도 취하지 않는 지점까지 다시 한 번 자신을 밀어 올려야 한다. 그 일이 지나버렸어도 어쩌면 나는 아직 그 일을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그 일이 남긴 것들까지 모두 겪어낸 다음에야 비로소 그의 말처럼 '국경에 거의 다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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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였을 때 꿈결에 걷곤 했다. 몸은 이불을 차고 일어나 방을 나왔지만, 실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마루를 맴돌 때도 있었고, 아예 집을 벗어날 때도 있었다.
작은 몸이 거대한 어둠 속을 유령처럼 떠도는 것. 잠옷에 차가운 밤이슬을 묻히고 다니다 부모의 손에 몸이 들려 다시 이불 속에 눕혀지는 것. 그런 이미지들은 꿈인지 현실인지 따져볼 수 없는 채로 나에게 남았다. 몽유병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겪지는 않아도 어떤 아이들은 겪고서야 자라는 병"
어릴 때의 나도 꿈결에 걷는 아이였다. 방에 재워둔 아이가 마당에 나와 놀고 있기도 하고 골목을 지나 큰 길가의 쌀집에 가 있기도 했다. 자고 일어나면 내가 걸어다녔던 걸 기억하지 못했다. 동네 작은 의원에 나를 데려가 넌지시 이야기를 건네니,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은 "똑똑한 아이라서 그래요. 걱정 마세요. 자라면서 지나갑니다." 하셨다. 엄마의 얼굴이 잠깐 밝아졌다. 엄마에게 내 병은 꼭 불우한 가정 환경이 빚은 것처럼 여겨졌을 테니까. 소리지르고 부수고 때리는 걸 봐야해서 내가 밤 중에도 어딘가를 헤매이는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은 저 말 한 마디로, 나와 엄마 두 명의 마음을 치유했다. 명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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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잠은 표면적인 것과 멀어지므로 필연적으로 깊이를 얻는다(그것은 힘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동시에 무게도 얻는다. 내가 무게를 느낄 때를 곰곰이 따져보면, 거기에는 늘 지나친 자애와 자만이 숨어 있었다. 나를 크게 만들려고 하다 보니 우울해지는 것이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 나의 느낌이나 존재를 스스로 부풀리고 싶어 하지 않는지 잘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