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번 글을 통해 아주 어마어마한 것을 고백하려고 한다. 이것은 온 지구가 뒤집어질지도 모를 엄청난 비밀이다. 나는 이 고백으로 가족을 잃게 될지도 모르고, 친구와 멀어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모든 것을 잃고 지구상에 혼자 남겨질지도 모른다. 그것은 완전한 고독.
때는 2000년대 초반, 10박 11일짜리 농활 중이었고 우리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마을 회관 2층의 빈 방을 숙소 삼아 지냈다. 사양하지 않았다면 마을 분들은 매일 저녁 밥도 해다주실 마음이었으나, 그렇게 얻어먹는다면 그건 농활이 아니라 민폐일 것이었다. (물론 저녁밥을 얻어먹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의 존재가 민폐가 아니었을리는 없다) 마을 형님들은 서울에서 온 청년들을 예뻐라 하셔서 자주, 넘치게 많은 술을 가져다 주셨다. "밥은 알아서 해먹는다고? 그럼 술이라도 대야지!" 어떤 날은(아마 일정이 유난히 고된 날이었으리라 짐작한다) 숙소에 찾아오셔서 우리와 둥그렇게 앉아 막걸리에 사이다를 '태워서' 한 잔씩 나눠주기도 하셨다. 몸을 쓴 날은 술로 달래고 자야지. 형님들은 서울 청년들은 막걸리를 그냥 못마신다면서 꼭 그 비싼 사이다를 '태워' 주셨지만, 몇 시간 후에 찾아올 우리의 두통은 생각을 못하셨던 것 같다.
그 날도 사이다를 태운 막걸리를 (상하기 전에)다 마신 후였고 몇 명의 사람들만 살아남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담배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가 졸지에 이상한 아이가 되었고, 술은 그렇게 많이 마시면서 담배는 안 피우는 게 균형이 맞느냐는 얼토당토 않은 억지에 못이겨
뻐끔, 담배를 피워보았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완전한 비흡연자가 아니다. 내 폐에는 담배 연기가 들어갔던 적이 있다. (사실은 겉담배여서 미처 폐까지 전해지지는 못했을 확률이 크다) 지구는 무사한가? 나는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버림받지 않았나? 완전한 고독은 결국 나를 또 빗겨갔나?
나와 담배의 인연은 여기까지다. 물론 현재까지는, 이라는 단서가 붙겠지만 아무튼 담배와 나의 인연은 그리 깊지 않다. 커피라면 이야기가 좀 남아 있지만, 이러다가는 작가의 책에 대해 한 줄도 언급할 틈이 없을 것 같아 이만 오지랖을 줄이겠다.
이 얇은 책에, 커피와 담배라는 두 단어에서 피어오르는 그의 이야기가 촘촘히 들어차서 읽는 내내 자꾸만 심호흡을 하게 됐다. 작가는 자신을 위로할 줄 모르던 과거를, 사랑에 서툴던 모습을, 세상에 혐오를 느끼던 순간을 커피와 담배에 기대서 겨우 살아왔다고 고백하고 있다. 거기에는 순간 순간의 연민이나, 애틋함이 묻어나고 때로는 스스로를 향한 날카로운 반성의 말도 들리지만 그 모든 것이 은은한 커피 향처럼, 혹은 구수한 담배 향처럼 과하지 않다.
인생에 서론이 어딨냐며 그저 본론-본론-본론이라고 볼 멘 소리를 하면서도 "작은 변화를 미리 감지하는 사람, 더 크게 확장하여 느끼는 사람들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예민한 감각을 유지하려면 배낭에서 짐을 버리는 작업을 정신적인 면에서도 해야 한다는 걸 차츰 깨닫게 되었다."는 사람. 사랑에 실패한 것을 두고 "이제는 너무 늦은 얘기가 되어버렸지만, 그를 제대로 아는 게 존중이 아니라 그가 나를 제대로 알도록 해주는 게 존중이라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그가 가진 것을 내게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닌 것을 온전한 형태로 그가 받아볼 수 있도록 전달하는 섬세한 마음, 그 정성이 존중인 것 같다."고 자신의 성장통을 묵묵히 고백하는 사람. 어딘가 단단히 잘못돼버린 세상을 바라보며 "각자 나름의 어려움이 있는 법이고, 누구도 잘못한 사람이 없는데도 모두가 서로에게 잘못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순간들이 분명 있다."고 울먹이는 사람.
나는 커피도 담배도 잘 모르면서 자꾸 그의 다음 얘기가 궁금해진다. 고작 술 기운에 한 번 뻐끔거려본 게 다인 흡연을 고백하면서도 온 우주를 들먹거리는 소심쟁이지만, 이런 나도 그 이야기에 끼워줄 거냐고, 치대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