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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May 28. 2016

"이 별을 만난 건 나에겐 행운이었죠."

'저러다가 무대 뒤로 뛰쳐나가는 게 아닐까?'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문득 든 생각이었다.


극도의 예민함, 희다 못해 투명한 피부와 금발의 파리한 커트머리, 눈을 감고 들으면 마치 cd를 재생시킨 것 같은 완벽한 음색. 뭔가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은 조합. 가수가 관객의 취향에 맞추기보다는, 관객이 가수의 컨디션과 감정에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조심하는 느낌. 때로는 컨디션 조절에 실패해서 갖은 악플이 달리고, 어떤 날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게 최고인 노래를 부르는, 그야말로 제멋대로인 복불복 아티스트.


그녀의 노래는 내 음악 재생목록에 늘 한 두곡씩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고 음반의 모든 노래를 줄줄 꿸 정도는 아니다. 공연 가기 전에 노래 좀 들어둘까 하면서 이번에 처음 듣게 된 노래도 있다. (2004년에 발매된 6집 중 <시시콜콜한 이야기> 라는 노래다. 가사가 참 슬프고, 멜로디는 더 처량하다. 그런데 그 와중에 맑고 청량한 느낌이 들어서 구질구질하지 않다.)


하지만 처음 '봄' 공연에 갔을 때, 큰 무대 한 가운데 앉아서 오롯이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던 그 감성을 잊을 수 없다. 음색이, 노랫말 하나하나가 내 가슴 속에, 그것도 정해진 자리에 꽂히는 느낌.


<바람이 분다> 는 이제 거의 '명곡' 수준, 혹은 한 편의 '시' 로 해석되곤 한다. 이처럼 그녀의 노래들은 주로 사랑이야기였고, 대부분은 이별의 슬픔에 대한 노래였다.


더 외로워 너를 이렇게 안으면
너를 내 꿈에 안으면 깨워줘
이렇게 그리운 걸 울고 싶은 걸
난 괴로워 네가 나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만
웃고 사랑을 말하고 오 그렇게 싫어해 날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요 몇 년 사이에 그녀의 관심은 '개인에 대한 사랑' 에서 '삶' 이나 '존재' 에 대한 사랑으로 옮겨오고 있는 것 같다. 최근의 음반에서는 자신의 인생이나 이 우주에 대해 자주 노래하고 있다.


함께 우주에 뿌려진 우린 수많은 별
그 중에 처음 마음 내려놓을 곳 찾아 헤매었죠
이 별을 만난 건 나에겐 행운이었죠
한 번 스치는 별 아니 뭔가 다르게 더 이끌렸죠
한 때 우주에 뿌려진 나는 수많은 별
그 중에 나의 노래 놓을 곳 찾아 헤매였죠

<track 11>


5년 만에 준비했다는 '봄' 공연은, 한 마디로 여전했다. 그녀의 데뷔 년도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부부와, 컵라면으로 저녁을 떼우며 공연 시간을 기다리는 앳된 얼굴의 소녀까지- 한 인간이 스스로의 감성을 통해 시대와 연령을 뛰어넘어 타인을 설득하고 감동마저 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시간이었다. 게다가 내가 본 공연의 바로 전날 공연에서는 컨디션 난조로 노래 중간에 기침을 하거나 스스로가 우울해져서 공연을 이끌어가기 힘들어했다는 리뷰들까지. 관객을 곤란하게, 때로는 답답하고 실망스럽게 만드는 것까지 여전했다.


세상에는, 양립하기 힘든 가치들이 있다. 예민한 사람이 관대하기 어렵고 이성적인 사람이 낙관적이기 힘들다. '이소라' 는 그녀 스스로도 말했듯이 '저 사람처럼 하면 안되겠구나' 싶은 행동도 하지만, 그녀가 가진 풍부한 감성과 예술적인 능력만은 남다르다. 가전제품을 만지다가도 전류가 느껴져서 괴롭다는 사람에게, 농담처럼 '집 밖은 위험하다' 며 몇 년씩 방송활동도 없이 칩거하는 사람에게, 여느 사람들처럼 부드럽고 편안한 무대 매너를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그녀가 가진 강렬하고 독특한 감성과 표현력은 그 예민함에서 온다.


그래도 초대가수를 불러 그와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공연 중간중간에 자신의 일상을 들려주는 모습이 5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이었다. 우리에게는 사소해보이는 일들을 하는데 그녀는 몇 년이 걸렸다. 참 별나게도 군다는 말보다는, 오히려 유들유들하게 굴면서 노래는 형편없어지는 모습을 보는 게 훨씬 더 괴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내 선택은 여전히, 그녀의 노래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하고
당연한 고독 속에 살게 해

Hey you, don't forget
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
매일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흘러가

<track 9>

나이를 더 먹고 좀 늙더라도, 그 감성만은 여전히 그대로이길. 그래서 좋아하는 노래를 오래도록 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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