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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Mar 25. 2021

김겨울, <책의 말들>


책을 읽고 있지만 막상 책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별로 없다. 책을 읽는다는 건 책 안에 담긴 이야기를 읽는 것이므로 책을 읽는다는 건 적확하다기 보다는 편의상의 표현이라는 생각이다. 한참동안 이야기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문득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책에 대한 책을 찾곤 한다. 책이라는 근원에 다가가고 싶다는 뜻일텐데, 그러면서도 다시 책이 아니라 책에 대한 이야기에 빠져들고 만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뭔가를 겪는 중일 때는 도저히 그 일 자체를 알 수 없는 것처럼 책을 읽는 동안은 오히려 책에 대해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책에 대해 생각하려면 책을 읽지 않고 바라보거나, 구경하거나, 전시하면서만 가능한 걸까.


실로 오랜만에(어쩌면 처음으로) 책 자체에 대해 잠깐이라도 생각을 이어가본다. 나는 언제 처음 책이라는 물성을 접했었나. 책에 매료된 건 언제였나. 책을 멀리했던 시간은 얼마나 되었고, 다시 책으로 돌아온 사연은 무엇이었나. 하아. 이봐. 결국 나는 책 그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결국 다시 책에 얽힌 나의 사연 팔이로 돌아오고 말았다. 정신을 집중하자. 할 수 있다.


이건 마치 불교에서 얘기하는 어떤 수련처럼 느껴진다. "원숭이에 대해 생각하라."고 말하면 수도자들은 절대 원숭이에 대해 생각할 수가 없다. 자꾸 원숭이 말고 다른 것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어제 먹었던 저녁 반찬의 맛, 오늘 새벽 기도를 나올 때의 공기, 어릴 적 추억, 기도 시간은 대체 언제 끝나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그건 반대의 상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원숭이에 대해 절대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내내 원숭이만 떠오르는 것이다. 아무리 다른 걸 생각하려고 해도 원숭이만 주구장창 떠오른다. 원숭이의 하트모양 얼굴, 빨간 엉덩이, 독특한 울음소리, 긴 꼬리. 그렇다면 나에게도 방법이 있다. "책에 대해 생각하지 말자." 과연, 책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성공했을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다. '책 읽기란 얼마나 비효율적인 행위'인지. 책을 읽는다고 세상의 어떤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다. '세상은 지치지도 않고 다가'오고, 우리는 그저 '손목을 붙잡힌 채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무릎이 까지고 발목이 꺾이는' 채로 살아간다. 그럴 때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책이란 '안정, 삶, 집'과도 같은 의미라는 것을. 책은 아무 것도 해결해줄 수 없지만, 늘 곁에 남아 있는 친구와도 같다. 멀리서 고된 삶을 살다가도 문득 돌아가서 '나 어떡하지.' 푸념을 늘어놓을 수 있는. 때로는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나도 잊고 있던 내 모습을 되살려주는. 그 친구는 답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그 친구 곁에서 나는 답을 찾을 만한 힘을 얻곤 한다.


작가는 <책의 말들>이라는 이름 아래에 자신이 책과 어떻게 관계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유머러스하고 동시에 진중하게 들려주고 있다. 탁월한 완급조절로 진심과 농담의 경계를 넘나들고 때론 경계를 허문다. '그러니까 물리학이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먹어야 하고 자야 하고 언젠가는 죽기도 해야 한다. 내 고통에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신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는 이상 알 길도 없다. 결국 내 삶은 내가 사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정말 지치는 일이네.' 같은 문장으로 독자를 울리기도, 웃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중간 중간 아주 진지한 얼굴로 묻는다. '나는 사회에서 규정한 '낭비'의 개념으로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을 그만두기 위해 나를 여러 번 타일러야 했다' '삶은 너무 끔찍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해야만 하는 일을 말할 수 없게 만들고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일만 말할 수 있게 허락한다. 말해야만 하는 일을 말하고 나서 제 삶을 침범당하는 기막힌 사태에 슬퍼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예술 하는 사람은 자신을 견디기 위해 예술을 하지만 종내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타인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아이러니에 빠진다'


그녀는 예술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삶에 대해, 그리고 그 삶과 함께 굴러가고, 때로는 그 삶을 규정하고 때로는 그 삶을 억압하는 사회에 대해, 자신이 하는 일이 예술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가볍지 않은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래놓고는 '굳이 답하려고 하지 마세요. 부담 드리려는 건 아닙니다.'라며 능글맞게 웃는다.


글을 다 마치고 나서야 아주 약간의 힌트를 내놓는다. 자신이 책 속에서, 책과 함께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지. 어딘가에 완전히 소속되지 않는, '고향 없는 인간'이라는 위치 선정은 애초에는 주어진 조건이었다가 이제는 그녀 스스로가 다듬어 가는 자신 만의 자리라고 고백한다. 고향 없는 인간의 서러움보다는 '차라리 모든 곳이 고향인 코즈모폴리탄'이 되어, '말해야만 하는 말'을 하고, '이질적인 것들이 역동하며 새롭게 열어젖히는 세상을 바란다'고 말한다. 그녀의 이 말들은 '쓸모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말로 들린다. 그녀가 말했듯 '더 나은 삶을 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쓸모와 아름다움) 둘 중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덧. 나는 결국 '책'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고(실패하고), 다시 쓸모 있고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기로 한다. 아마 나보다 더 나은 누군가가 이미 책 자체에 대해 생각하는데 성공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럼, 세상에 똑똑한 사람이 얼마나 많다구! 물론, 굳이 그 누군가를 찾아볼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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