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넘어 우리를 생각할 차례
<이끼>를 보고 받았던 문화적 충격이 떠오른다.
만화 문외한이던 내가 만화를 좋아하게 되었고,
윤태호 작가가 보여주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에 감격하던 순간이었다. 그 뒤로 웹툰을 즐겨보게 되었고 '이야기'를 전하는 매체는 좋고 나쁨도, 높고 낮음도 없음을 다시 한 번 느꼈었다. 결국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 하느냐의 차이일뿐.
미생 역시 연재될 당시부터 좋아했었다.
대학원 다니면서 행정조교로 일할 때였는데, 조직 사회에 대한 이해부족과 피로감 누적, 나에 대한 이해부족이 겹쳐 꽤나 고생하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한편 한편이 아프게 때론 화나도록 공감됐었다.
드라마 미생은 오과장과 장그래, 그리고 영업3팀을 축으로 일에 대한, 조직에 대한 결국은 이 삶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오과장은 수년 전 자신이 대리이던 시절에 계약직 직원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부채감을 안고 살아가던 중 장그래를 통해 다시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는 '죄책감' 때문에 '어려운 일'을 고집하고 승진에 지나치게 무감한듯한 모습을 보인다. 장그래에게도 처음에는 마음을 열지 않다가 장그래의 '양과 질이 다른 노력'에 다시 한 번 자신을 내던져 그를 지켜내리라 다짐하게 되는 인물이다.
최전무와 오과장의 대립각을 통해 선악 구도로 흘러가는 듯 보이던 드라마는 장그래의 실수, 최전무의 좌천, 오과장의 퇴사로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은 채 마무리된다.
그렇다면 드라마가 말하고자한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오과장이 '비현실적인' 캐릭터로 보일 만큼 스스로의 죄책감과 부채감에 힘들어하는 모습이 이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내 것'만을 챙기는 시대에 '네 것'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비춰지는 것은 자연스러울지는 모르겠으나 슬프다. 공존보다는 경쟁이 자연스럽고, 죄책감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오과장을 병이라 느끼는 게 자연스러운, 그럼에도 모두가 오과장 같은 상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랄 만큼 힘든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미생을 제작한 김원석PD는 고령화 사회에서 이미 사회에 자리잡은 나이 많은 사람 모두가 갑이 되고 이제 사회에 나서야 하는 나이 어린 사람 모두가 을이 돼버린 사회 구조를 지적한다. 서로가 서로를 이기고 넘어서야만 살아남게된 구조 속에서 '우리'는 온데간데 없다. 그래서 선차장이 아파서 못하게된 파키스탄 담료 수출건을 오과장의 지휘 아래 신입들이 모여 밤새 진행하고 우정을 나누는 장면은 따뜻하고 의미심장하다. 나아가 장그래의 재계약 성사를 위해 경쟁 관계에 갇혀있던 신입사원들이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을 해나가는 과정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미안함, 죄책감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미생 열풍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하는건, 드라마속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 중 절대 다수가 장그래에게 감정이입하고 있었다는 점이 아닐까. 그리고 그 수많은 현실 속 장그래들이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서로를 '우리'라는 틀로 묶는다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