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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희 Apr 29. 2021

고레에다 히로카즈, <키키 키린의 말>


그러니까 나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그 어떤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면 우선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미간을 딱 찌푸리면서 "그만하지" 이럴 사람들이고, 칭찬을 하려고 들면 마치 공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얼굴이 굳어지며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이고, 당신의 행동이 어떤어떤 이유들로 의미가 있고 대단하다 이렇게 추켜세우면 "아, 실은 그때 내가 돈이 필요했어" 라든지, "나한테도 이익이 있으니까 한 것 뿐" 혹은 "내가 선량해서 그렇게 한 건 아냐"라며 자신을 별 것 아니라고 포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굳이 한 카테고리로 묶으려는 내 시도를 알면 그들은 분명 반쯤은 나를 비웃는듯 "사람은 그렇게 일반화되는 존재가 아냐"라고 정곡을 찌를 게 뻔하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런 사람들을 (어려워하면서도) 좋아하고 (때론 불편해하면서도) 원하는가.








영화 속에서 그녀는 언제나 주인공 뒤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주인공 곁에서 걸어가거나 주인공 옆에서 밥을 먹으며 말을 거든다. 그녀는 할머니도 되었다가 엄마도 되었다가 친구도 되었다가 한다. 뭔가를 맛있게 먹으며 동시에 더 맛있게 대사를 하는 것이 주특기인 그녀는 분장 대신 자세를 바꿔서 배역에 맞춘다. 예를 들면 노인 역할을 위해서 등을 잔뜩 구부려 몸을 작고 굽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마치 지금 저 집에서 진짜 살다 나온 것처럼 연기하는 비결에 대해 묻자 "평범한 대목의 평범한 움직임을 봐주는 게 배우로서 굉장히 기쁘다"고 칭찬을 칭찬으로 갈무리하는 그녀.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역할이나 때로는 괴팍한 인물을 자주 연기하는 그녀지만 의외로 그녀를 기억하고 좋아하는 이들은 많다. 왜냐하면 그녀는 꼭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누군가가 되기 때문에. 그 장면에서 주인공이 내뿜는 에너지를 받아내는 일, 불분명하게 표현될 뻔한 영화의 감정선을 좀 더 분명하게 다듬는 일, 진지하고 긴장되기만 하는 이야기 속에서 호흡을 가다듬게 하는 일을 그녀는 부담 없이 해낸다. 꼭 필요한 그 만큼만.


나는 이러한 섬세함이 비단 연기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가 평소 삶에 대해 얼마나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가의 문제랄까. 가령,

"오후나의 이모할머니 입장에서는 "그 애한테 죄는 없지만, 그런 과거를 걔가 짊어지고 있다는 건 잊지마." 하는 거지. 아무리 어린 애라도, 혹은 어른이라도 '없었던 셈 치는' 건 그 사람의 인생이 시시해진다는 뜻이거든요."

같은 말을 들려주는 것이다. 그녀가 바라보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때문에 그녀는 삶의 국면을 재현하는 영화 속에서 언제나  필요한 어떤 부분을 기꺼이 연기할  있는  아닐까. 설사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더라도 (그건 분명 아쉬운 이지만) 그것은  자리에 있으므로 그녀는 주저없이 그것을 연기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그런 시선을 알아보고 그것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감독이 반갑지 않을  있을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까봐" 더는 가까이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새침떼기면서도 나보다 돈도 많이 받고 훨씬 유명한 배우라서 괜히 가까이 가기 싫었다고 말하며 그건 "내 비뚤어진 부분"이라고 콕 집어 말하는 그녀는 매력적이다.


모두가 위선을 가장해서라도 굳이 '나쁜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기어이 '나쁜 사람'의 역할을 도맡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때로는 그 용기를 닮고 싶어지는 것이다. 가감 없이 솔직하게 내 속내를 그대로 말해버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그녀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그녀의 팬을 자처한다. 그는 그녀가 연기하는 것을 알아보는 몇 안 되는 감독으로 키키 키린이 아무 말 없이 동작으로 표현하는 감정까지도 훌륭히 파악하고 카메라에 담는다. 어쩌면 두 사람은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 삶에서 없어도 되는 부분은 없다는 데 동의하는 비슷한 사람은 아닐까.






"모두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말을, 이렇게 키린 씨가 해줄 때가 가끔 있다. 미움받는 역할을 자진해 맡는 사람이 있다는 구실로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제대로 된 인간인가 싶지만, 웬만해서는 키린 씨처럼 후련하고 예리하게 말하지 못하니 역시 맡겨두는 게 정답이었을지도 모른다."


키키 키린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겠지만, 나는 때로 그녀가 좀 외로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 이 할머니는 없어도 돼요." 라는 말로 감독이 허전해할 미래까지 챙기고 보듬느라 정작 자신을 챙겨달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모두에게 필요한 말, 혹은 모두가 기다리는 어떤 말을 해내는 사람만이 가지는 성숙한 외로움이 있을 터.


그래서일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그녀의 행동과 말에 담긴 속내에 대해 각주를 달듯이 이번 책을 쓴 것에 인간적인 뭉클함을 느꼈다. 이 책은 마치 언제나 조금은 오해를 받아온, 때로는 스스로가 오해를 자처한 그녀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가 보내는 공감과 이해의 편지 같았다. "난 네 맘 알 것 같아"


두 사람은 보여주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생각한대로 연기하는 그녀였지만, 그래서 더욱 그녀의 생각과 연기를 있는 그대로 알아봐주는 사람의 존재가 소중했다는 것. 어쩌면 우리 모두 나를 알아봐줄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런 사람이 없어도 나는 내 삶을 살아가겠지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자체로 기적이라는 것.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기뻐하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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